횡령·배임·탈세 등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거나 형사재판이 진행 중인 재벌그룹 총수들이 등기이사직을 연달아 사임하고 있다.
효성그룹 총수일가는 이와는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오는 21일 열리는 ㈜효성의 정기주주총회 안건을 보면 효성그룹은 8000억 원 대의 횡령·배임·탈세를 저지른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 조석래 회장 체제를 확고히 하는 내용들로 구성돼 았다. 사내이사 5명 중 총수일가가 3명이며, 사외이사 6명 중 조 회장 경기고 동문을 4명을 포진시키는 게 안건의 골자다.
효성그룹은 조석래 회장 등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며 아직 유무죄 여부가 가려지지 않은 상황이어서 주총 안건들이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효성그룹의 입장은 조 회장과 비슷한 사례인 CJ그룹 이재현 회장과는 정반대 양상을 보이고 있다. 1657억 원의 탈세·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은 이재현 회장은 지난 달 즉각 항소해 법정 공방이 진행 중이다. 조 회장 일가와는 달리 이 회장은 3개 주요 계열사들의 등기이사 직을 내려놓겠다는 입장이다.
재계에선 그밖에 이 회장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린 4개 계열들사에 대해서도 사임이 유력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여론의 뭇매에 손을 든 것으로 보인다.
효성측은 조 회장 등이 유죄판결을 확정 받아도 등기이사 해임안건과 관련한 임시주주총회 소집 여부도 결정된 게 없다고 밝히고 있다.
◆ 총수일가 체제 굳히기 나서
검찰은 조석래 효성 회장에 대해 8000억 원 대의 횡령·배임·탈세 범행을 저지른 혐의로 지난달 불구속 기소했다.
또한 조 회장 측근 이상운 부회장에 대해선 수천억 원대의 분식회계를 통한 조세포탈과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조 회장 장남인 조현준 사장에 대해서도 효성의 법인자금 횡령과 조세포탈의 혐의가 있다고 보고 각각 기소했다.
이러한 가운데 이달 열리는 효성 주총 안건들이 논란이 되고 있다. 안건을 보면 조석래 회장과 장남 조현준 사장, 이상운 부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안이 올라 있다. 아울러 조 회장의 삼남 조현상 부사장의 신규 사내이사 선임안도 있다.
하지만 효성 사내이사 5명 중 조석래 회장, 조현준 사장, 조현상 부사장, 이상훈 부회장 등 4명이 현재 또는 과거 불법행위와 연루돼 있다. 나머지 한 명의 사내이사인 정윤택 사장 역시 효성의 재무본부장으로서 분식회계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내이사 신규 선임 안에 이름을 올린 조현상 부사장은 형사사건 피의자는 아니다.하지만 조 부사장도 외국환 거래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이력이 있다.
아울러 이번 주총 안건인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의 사외이사 선임 안건과 현대엘리베이터 한민구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 안건도 뒷말이 무성하다.주총 안건이 모두 통과될 경우 효성의 이사회는 사내이사 5명, 사외이사 6명으로 구성된다. 사내이사 5명 중 총수일가가 3명이며, 사외이사 6명 중 조 회장 경기고 동문이 4명이나 돼 조 회장 친정체제가 더욱 굳어질 것으로 분석된다.
효성 측은 “주총 안건과 관련해서는 이사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한 사안”이라며 “조 회장 등에 대해선 재판이 진행 중이다. 범죄 혐의 사실관계에 대해서도 다툼이 있다. 글로벌 경영능력을 갖춘 대주주가 등기이사를 맡아 책임감을 갖고 중장기 투자 등을 결정하는 것은 기업과 국가경쟁력에도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제개혁연대는 효성이 이사 및 감사위원 선임 안건 전부를 즉각 철회하고,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이사회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국민연금 13% 지분을 보유한 만도의 주총에서 신사현 만도 대표의 연임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기금의 안정적 운용을 위해 주주 가치에 반하는 행위를 한 임원에 대해 반대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시했다. 효성의 주총에서도 국민연금을 포함해 일반 기관투자자와 소액주주들 역시 안건 부결과 관련한 의결권 행사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효성의 지분은 지난 달 현재 조석래 회장(10.32%)를 비롯해 총수일가와 특수관계인 지분이 30.12%를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 3.91% 등 소액주주의 지분은 50%를 넘고 있다.
◆ 유사한 악재 빠진 다른 재벌 총수들은
효성그룹의 경우 유사한 악재에 빠진 다른 재벌그룹들의 사례와는 차이가 크다.
최근 배임 혐의로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을 시작으로, 유죄판결을 받거나 형사재판이 진행 중인 재벌 총수일가의 계열사 이사직 사임이 본격화 되고 있다.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은 지난 달 27일 대법원에서 각각 징역 4년과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은 후 이달 4일 모든 계열사 등기이사직 사임 의사를 밝혔다.
특히 효성 조석래 회장처럼 재판이 진행 중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3개 주요 계열사의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기로 방침을 굳혔다. 이 회장은 지난달 1심 재판에서 탈세·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받은 징역 4년을 선고 받았고 같은 달 항소했다.
이밖에도 재계에선 이 회장이 등기이사를 맡는 CJ와 CJ제일제당, CJ대한통운, CJ시스템즈 등 나머계열사에 대해서도 임기가 끝나는 대로 재선임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임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CJ그룹은 “이 회장은 이달 21일 열리는 주총에서 임기가 만료되는 CJ E&M, CJ CGV, CJ오쇼핑 등 3개 계열사들의 등기이사에서 사퇴한다. 그외 4개 계열사들의 등기이사 사임 여부는 아직 결정된 게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