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패션 산업은 경기 변동에 가장 민감하다. 여타 산업에 비해 시장 진입 장벽이 낮아 브랜드 간의 경쟁도 치열하고, 소비자의 요구 및 구매 패턴의 변화에 따라 매출폭도 급격하게 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2월 취임한 정수정 이랜드월드 대표이사는 강력한 수익 개선 작업을 통해 이랜드월드 패션사업부의 연매출을 1조 원대로 끌어올려 화제를 모았다. 이랜드그룹의 전문경영인 정 대표가 ‘치어리더 출신’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직 많지 않다.
# 치어리더 출신 ‘정수정 장군’
이랜드그룹에 입사한 그는 숙녀복 브랜드 로엠의 부산 지역 영업 담당으로 배치됐다. 이랜드그룹 대리점주와 영업부 직원 간의 마찰이 끊이지 않아 ROTC 출신의 남성 직원만 내려 보냈던 부산지역으로 소위 ‘기 센 여장군’을 출격시킨 셈이다. 정 대표는 “여성 사원이 부산 지역 영업담당으로 배정된 건 내가 처음이었다”며 “내부에서는 얼마나 버틸지 내기라도 거는 것 같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랜드그룹의 판단은 옳았다. 그가 부산 지역으로 내려온 후 대리점주와 영업담당 간의 마찰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 대표는 “넘치는 끼와 여성 특유의 감성으로 대리점주를 설득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불만이 사라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이랜드그룹에 입사한 지 7년 만인 2003년 이랜드월드 로엠 브랜드장으로 승진했다. 2008년 이랜드차이나 로엠 브랜드장, 2013년 이랜드차이나 글로벌 미쏘 브랜드장, 2014년 이랜드월드 글로벌 미쏘 BU 본부장을 거치면서 경영전략과 노하우를 습득했다.
10년여 전 이랜드차이나 로엠 브랜드장이던 시절, 그는 중국 전역의 지사장들과 함께 경영계획을 수립하면서 매출 목표를 전년 대비 2배 성장으로 내세웠다. 지사장들은 “불가능하다. 매출 목표를 낮추자”며 만류하고 나섰지만, 그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정 대표가 세운 목표가 관철됐고, 1년 후 그의 계획대로 이랜드차이나의 연 매출이 2배 이상 성장했다. 정 대표에게는 ‘여장부’도 아닌 ‘장군’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 수익성 향상 위해 경영시스템 개선
그는 지난해 2월 이랜드그룹 최초 여성 CEO(최고경영자)로 발탁됐다. 당시 “여성이 이랜드그룹을 대표하는 법인을 이끌 수 있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정 대표는 대대적인 사업부 개편을 통해 의구심을 말끔히 날려 보냈다.
정 대표는 취임하자마자 중·소형 매장 위주로 운영되던 아동복 브랜드 9개를 이랜드리테일로 영업양수했다. 그리고 이랜드월드 SPA 브랜드를 대형화하고, 저수익 브랜드와 적자 매장을 철수하는 등 경영 시스템을 개선해나갔다. 이에 이랜드월드는 지난해 아동복 매출이 빠졌음에도 연매출이 1조 5000억 원을 넘었으며, 영업이익률도 5%대를 유지했다.
취임 1년 만에 높은 성과를 불러왔지만 정 대표는 “이랜드가 운영하는 사업 70%가 여성에게 선택받는 서비스로 이뤄져 있다”며 “직원 대다수가 여성의 안목으로 사업을 설계하고 추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이랜드만의 기업 문화 덕분이라 설명했다.
정 대표는 여성 사원들의 육아휴직을 적극 권장한다. 2000년대 초반 사회적 분위기상 장기간 육아휴직이 힘든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원 신분으로 육아휴직을 마음 편히 다녀왔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임신 초기 유산기가 있어 퇴사를 고민했다. 사업본부장이 이 사실을 알고 ‘마음 편히 쉬고 오라’며 다독여줬다. 아직도 육아휴직을 받아준 회사에 감사하다”며 “이랜드에서 일하는 직원 대다수가 여성이다. 임신 및 육아 문제로 재능을 펼치지 못한 채 퇴사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익성 향상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영시스템을 개선한 정 대표는 지난해보다 올해 기대치를 더 높게 잡았다. 중화권 시장의 확대와 글로벌 이커머스와의 제휴를 통한 채널 강화 등으로 스파오, 미쏘, 후아유 등의 SPA 브랜드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게 그의 계획이다.
정 대표는 “이랜드월드의 성장 주축은 스파오, 미쏘, 후아유 등의 SPA 브랜드”라며 “상품기획에서부터 생산, 판매에 이르는 수직계열의 구조가 SPA 브랜드를 글로벌로 성장시키는 주춧돌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대한민국 경제의 기틀을 일군 기업들은 창업 1~2세대를 지나 3~4세대에 이르고 있지만 최근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되면서 가족 승계는 더 이상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치·사회적으로도 카리스마 넘치는 ‘오너경영인’ 체제에 거부감이 커지고, 전문성을 바탕으로 담당 업종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경영인’ 체제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늘고 있다. 사업에서도 인사에서도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전문경영인이며 그 자리는 뭇 직장인들의 꿈이다. ‘비즈한국’은 2018년 연중 기획으로 각 업종별 전문경영인 최고경영자(CEO)의 위상과 역할을 조명하며 한국 기업의 나아갈 길을 모색해본다.
유시혁 기자
evernuri@bizhankook.com[핫클릭]
·
[CEO 뉴페이스] 해운재건 맡은 '문재인 친구' 황호선 한국해양진흥공사 사장
·
[CEO 라이벌 열전] '삼성-현대차 대리전' 제일기획 유정근 vs 이노션 안건희
·
[CEO 핫패밀리] '기내식 대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일가
·
[CEO 라이벌 열전] BNK 가족, 부산은행 빈대인 vs 경남은행 황윤철
·
[CEO 뉴페이스] '롯데 패션' 휘날려라, 설풍진 롯데GRF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