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뉘였다. 프랑스길(Camino de Frances) 시작점인 생장 피에드포르(Saint jean pied de port)로 가기 위해선 파리를 거치는 게 최선이었다. 마침 도착한 저녁 다음 날이 생일이라 내심 설렜다. 특별한 생일을 맞고 싶었다.
걱정도 컸다. 정말 걸을 수 있을까? 저지르긴 했는데 준비된 건 없었다. ‘하~’ 안도와 긴장이 미묘하게 섞여 한숨이 흘렀다. 그래도 가진 건 몸뚱어리뿐. 어떻게든 될 거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여정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연료를 충분히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행기가 한 시간 넘게 뜨지 않았다. 다음 비행기가 문제였다.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예프에서 갈아타야 하는데 환승 시간이 한 시간밖에 없었다. 승객들이 불안해하자 기내 승무원은 “다음 비행기는 당연히 잡아둘 거예요. 걱정 마세요”라며 두 번 세 번 안심시켰다.
“오늘은 여기서 주무셔야 해요. 미안합니다. 휴게실은 따로 없어요. 저쪽에 의자에서 자면 돼요.”
키예프 보리스필 공항에 도착했을 땐 이미 모든 환승 비행기가 떠난 뒤였다. 런던으로, 암스테르담으로, 파리로 갔어야 할 승객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핏대 세워 항의했지만 동유럽권 특유의 무심함을 맛봐야 했다.
승객들은 재발급 받은 항공권을 손에 쥐고 공항 의자에 자리 잡았다. 몸에 담요를 칭칭 감고 가방을 베개 삼아 모로 누웠다. 어쩌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꼭 패잔병 무리 같았다. 알 수 없는 동질감에 위로받았지만 이 상태로 15시간을 갇혀 있어야 한다니 울고 싶었다. 난 항상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지? 그냥 돌아가라는 뜻인가? 차디찬 공항 의자에 누워있자니 한숨이 푹푹 나왔다.
“미리 생일 축하해요, 앞으로 세 시간 남았네요.”
고개를 돌려보니 항공권 재발급 할 때 옆에 있던 스페인 여자였다. 지상 승무원이 내 여권을 보더니 생일이냐고 물은 걸 들은 모양이다.
“지금이 최악이라고 여겨진다면 너무 낙담하지 마요, 이제 최고의 일이 생기겠죠.”
“고맙다”고 간단히 답례했지만 큰 힘이 됐다. 그 말이 없었더라면 파리 구경을 끝으로 한국으로 오려고 했다. 돌이켜보니 그 말 덕분에 산티아고 순례자 길을 완주 할 수 있었다. 말 한마디의 힘은 그렇게 크다. 그렇게 난 특별하게 스물여섯 번째 생일을 맞았다.
# ‘꿈의 도시’ 파리, 왜 불안하지 않지?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하니 찌푸려졌던 미간이 사르르 풀렸다. 한때 프랑스 유학을 꿈꾸며 불어를 배울 정도로 파리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그곳에 도착했다니 감개무량했다. 열 일 제쳐두고 에펠탑으로 향했다. 샤를 드골 공항에서 RER B를 타고 나와 샹드 마흑스 뚜 헤펠(Champ de Mars Tour Effel) 지하철역을 찾아가면 된다.
에펠탑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웃음이 흘렀다. 유려한 유선형과 고운 직선이 조화를 이룬 철제 구조물에 마음을 뺏겼다. 에펠탑을 실제로 보고 실망했다는 사람이 많아 기대감을 낮추고 있던 터였다. 에펠탑을 보기까지 우여곡절이 없었더라도 똑같았을까? 순례자 길을 걸으러 가는 길에 에펠탑을 ‘보너스’로 본 것이 아니라면? 나 역시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경험은 단편적 이미지가 아닌 이야기의 결과물이었다.
꿈꾸던 장면을 이룰 차례였다. 에펠탑 잔디 광장에 누워 샌드위치 먹기. 나는 19kg 배낭을 메고 있었고, 광장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검색대를 통과해야 했다. 이미 핫도그를 사서 손에 쥐고 있었지만 짐을 모두 풀어서 확인해 봐야 들여보내 준다는 말에 ‘쿨’하게 포기했다. 다음에 또 오지 뭐. 이제 와 깨닫지만 다음은 잘 없다.
루브르 박물관, 노트르담 대성당. 파리 시내를 걷고 또 걸었다. 여행했던 어떤 도시보다 아름다웠다. 누가 왜냐고 물으면 왜라고 답하긴 어려웠다. 건축 전문가는 아니지만 여느 유럽 도시와 건축 양식이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의문이었지만 일단 기분을 만끽했다. 그냥 좋은걸 뭐. 해가 뉘엿뉘엿 저물 때쯤 바를 찾아 스프릿츠(Spritz) 한 잔을 내게 선물했다.
바욘(Bayonne)으로 가는 12시간짜리 야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바욘에서 생장 피에드포르까지 기차로 한 시간 거리다. 피곤했다. 눈이 스르르 감기는 데 든 생각. ‘왜 불안하지 않지?’
# ‘프랑스의 보석’ 바욘, 현재에 집중하면서 찾게 된 평온
바욘은 3세기 고대 로마 도시로 만들어졌다. 아두르강과 니브강이 만나는 이베리아반도 교통의 요지로 번영을 누렸고 바스크(Basque) 문화의 상징으로 불린다. 화려한 중세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바욘 대성당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혹시 바욘 대성당 어떻게 가요?”
평소 쓴 걸 못 먹지만 프랑스 온 기분에 에스프레소를 한잔하려고 카페에 들렀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건너편 여자에게 물었다.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여자였다. 여자는 긴 팔을 쭉쭉 뻗어가며 길 설명을 했다. 내 흔들리는 동공을 두어 번 살피더니 “어차피 가는 길이니까 이따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여자는 오렌지 주스가 담긴 유리잔을 건배하듯 들어 보였다. 나도 그사이 나온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넘겼다. 쓰지 않고 부드러웠다. 프랑스 여자의 친절 때문인지 남다른 커피의 풍미 때문인지 모를 일이었다.
“스페인어 할 줄 알아요? 엄마가 스페인 사람이라 영어는 잘 못 해도 스페인어는 잘해요.”
“아뇨, 영어만 조금…. 그럼 3개 국어를 해요?”
“프랑스어, 스페인어, 영어, 바스크어 이렇게 4개 해요.”
“바스크어요?”
“네, 여기가 예전 나바라 왕국이에요, 아직 학교에선 바스크어를 배워요.”
여자는 바욘에서 나고 자랐다고 했다. 옛 왕국 언어를 배운다는 게 흥미로웠다. 동시에 스페인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나바라 왕국이라니. 날 성당까지 데려다주고선 “좋은 하루를 보내”라는 말과 함께 멀어지는 여자의 미소가 참 깨끗했다.
"순례자예요?"
바욘 대성당 내부는 천장이 높고 화려하면서도 차분한 기운이 감돌았다. 성당에 매료돼 고개를 휘적거리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 물었다. 한 여자가 서 있었다. 햇빛에 얼마나 그슬렸을까. 뚜렷한 구릿빛 피부가 눈에 들어왔다. 안쓰러울 정도로 말라 있었지만 그녀의 초록 눈동자에서 단단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녀는 막 순례를 끝낸 참이었다.
이제 순례를 시작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그녀는 날 성당 한쪽에 마련된 책상으로 이끌었다. 카르덴시알(Caredencial)이라는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찍는 곳이었다. 순례자는 자신의 순례를 증명하기 위해 특정 장소에서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찍으면서 걷는다.
"저는 이렇게 갔다가 이렇게 돌아왔어요."
여자는 책상 위 지도를 가리키며 자신이 걸은 길을 설명해줬다. 지도 위 그녀의 손가락은 프랑스길을 따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서 멈췄다가 다시 북쪽길(Camino de Norte)을 따라 바욘으로 돌아왔다. 1600km를 걸은 셈이었다. 그녀의 담담함이 무섭게 다가올 정도였다. 범상치 않은 내공이 느껴졌다.
벌어진 입을 다물고 정신을 차렸다. 기차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자리를 뜨기로 했다. 여자는 교회 밖까지 나와 내게 손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인사했다.
“부옌 카미노(좋은 길 되세요).”
왠지 마음이 말랑말랑해져 계획보다 늦은 기차표를 샀다. 동네 빵집에서 초코맛 마카롱을 사서 니브강가의 벤치에 앉았다. 큰 개 한 마리가 주인 눈치를 보며 다가왔다. 킁킁거리며 마카롱을 탐냈다. 평온한 순간이었다.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켜니 다른 세계에 온 듯 행복했다. 불과 이틀 전만 해도 머리를 쥐어뜯던 내가 떠올랐다.
작은 누나에게 카톡을 보냈다.
"누나, 프랑스 나한테 잘 맞는 갑다, 되게 좋은데?"
"뭐가 좋은데?"
"어… 그걸 모르겠다, 내가 봤던 유럽이랑 그리 다를 건 없는데, 그냥 좋은데?"
"니 신분이 달라서 그런 거 아이가."
맞다. 내 신분은 여행자. 공부하지도, 일하지도 않아도 된다. 끄덕끄덕하면서도 이상했다. 그 전에도 공부도, 일도 제대로 안 하긴 마찬가지였다. 미래가 불투명한 것도 그대로다. 바뀐 건 미래 걱정을 잠시 넣어두고 현재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커피 한잔, 술 한잔, 마카롱 냄새를 맡는 개, 상대의 미소, 말 한마디. 하루 만에 떠나기 아쉬울 정도로 오밀조밀한 매력이 있는 바욘이 니브강에 비쳐 찰랑거렸다.
# 드디어 생장, 걷기 하루 전
기차역에 내렸다. 사람들 뒷모습에 설렘이 묻어났다. 얼마간 걸으니 마을이 나왔다. 순례자 사무실에 들러 카르덴시알을 먼저 발급받았다. 알베르게(Albergue)라는 순례자 전용 숙소에 들어가 짐을 풀고 5유로를 기부하고 챙긴 조개껍데기를 가방에 달았다. 정말 순례자가 됐다.
사흘째 ‘노 샤워’ 상태를 벗어난 뒤 가방을 정리했다. 순례자 사무실에서 자원봉사자가 일러준 가방 무게가 있었다. 몸무게 15%가 적당, 20%를 넘어가면 무리. 몸무게가 75kg이고 가방이 19kg이니까 이미 20%를 훌쩍 넘었다. 몇 가지 짐을 덜어내자 15.5kg. 여전히 무거웠지만 ‘에이 난 젊잖아’하고 호기를 부렸다.
생장으로 오는 기차 안에서 봤던 한국인 형님 둘과 저녁을 먹었다. 나이는 40대 중반, 30대 후반이었다. 전체, 메인, 후식이 나오는 순례자 메뉴를 해치우고 마을을 한 바퀴 둘러봤다. 생장은 12세기 말 건설된 나바라 왕국의 도시다. 피레네산맥을 가로지르는 언덕의 자락에 있어 주요 군사적 거점으로 활용됐다. 성곽 요새, 성당, 다리가 오랜 멋을 더했다.
“뭐 해 먹고 살지 모르겠어요. 답답해서 왔어요.”
“나이 들어도 똑같아. 답은 없더라.”
30대 후반 영하 형님과 함께 마을을 내려다봤다. 영하 형님은 일을 그만두고 왔다고 했다. 이직할 곳을 마련하다간 못 올 것 같았다고. 해가 저물면서 마을을 더 강하게 내리쬈다. 내일부터 정말 걷는구나.
박현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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