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KDB산업은행의 생명보험 계열사 KDB생명이 지난 5월 2억 달러(약 2250억 원)어치, 30년 만기, 연 7.5% 금리 조건으로 해외 영구채(신종자본증권)를 발행했다. 금리 7.5%는 지난해 7월과 11월 영구채를 발행한 교보생명(3.95%), 흥국생명(4.475%), 그리고 지난 4월 한화생명(4.7%)에 비해 무려 3%포인트나 높은 수준이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최근 미국의 기준금리가 한국 기준금리를 역전하면서 미국 채권 금리도 크게 상승했다. 따라서 국내 금융회사들은 투자가들에게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채권을 성공적으로 발행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해도 투자은행(IB) 업계 일각에서는 KDB생명의 영구채 금리 7.5%는 너무 높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산업은행이 금호생명을 인수해 2010년 출범한 KDB생명이 재무건전성 개선과 자본 확충이란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는 해석도 나온다.
영구채는 발행회사가 부도 날 경우 다른 채권보다 상환 순위가 밀려나는 고위험 채권이다. 이런 위험성으로 인해 이자가 상대적으로 높은 고수익 채권이다. 영구채는 만기가 정해져 있지만 발행회사의 결정에 따라 만기를 연장하는 것도 가능해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된다.
KDB생명이 발행한 2억 달러 규모 영구채의 이자 7.5%는 미국 국채(5년물) 2.85%에 가산금리 4.66% 더해 정해졌다. KDB생명이 영구채 발행 이후 만기까지 30년간 투자자에게 지급해야 할 총 이자만 원금의 225%인 4억 5000만 달러이며 만기 이후에는 원금인 2억 달러까지 상환해야 한다.
이 영구채의 연간 이자는 170억 원에 육박하며 분기로 환산하면 42억 원에 달한다. KDB생명이 경영 악화로 인해 7분기 만에 흑자를 낸 올 1분기 당기순이익 규모는 35억 원에 머문다. IB업계 일각에서 영구채 이자 부담이 과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KDB생명 관계자는 “미국 채권 금리 인상 영향에 따라 영구채 금리가 높게 책정됐다. 면밀한 내부 검토 결과 영업력 회복과 실적 개선이 이뤄지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판단했다”며 “금리가 외관상 7.5%지만 당사는 환 헤지(환 위험 방어)를 통해 실제 금리는 5.65% 수준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KDB생명은 자본 확충을 위해 올 3분기 최대 2500억 원 규모로 10년 만기의 후순위채도 발행할 계획이다. 금리는 최소 연 5% 중반을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KDB생명보다 신용등급이 한 단계 낮은 롯데손해보험이 2017년 11월 후순위채 600억 원 규모를 5.32% 금리로 발행했기 때문이다. 자본 확충 차원이지만 KDB생명의 재무 부담은 영구채에 이어 가중될 전망이다.
사실 KDB생명은 자본 확충이 시급한 상황이다. 올해 초 대주주 산업은행의 유상증자 참여로 3000억 원의 자금을 수혈했고, 연내에 영구채와 후순위채를 발행해 자체적으로 4300억 원 이상의 자본을 더 확충한다는 방침이다.
2021년 보험 부채를 시가로 평가해야 하는 새 보험업 회계처리기준(IFRS17)이 시행되면 보험사들의 부채 증가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보험사들에게 미리 자본을 쌓아 지급여력비율(RBC)을 끌어올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RBC는 보험계약자가 일시에 보험금을 요청했을 때 보험사가 지급할 수 있는 능력을 산정한 것으로, 보험사의 재무건전성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지표다.
보험사의 RBC는 반드시 100% 이상을 유지해야 하며 금융당국의 권고치는 150% 이상이다. KDB생명은 지난해 말 기준 RBC가 108.5%까지 하락하면서 금융당국의 권고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국내 생명보험사 최하 수준의 RBC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국내 생보사 평균 RBC는 267.6%이었다.
KDB생명은 산업은행의 유상증자 참여로 올해 1분기 말 기준 RBC 가 154.5%로 높아졌다. 지난 5월 KDB생명은 영구채 발행으로 2분기 말 기준 RBC를 190%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끌어 올렸다. 아울러 3분기 후순위채 발행을 통해 RBC를 200% 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신용평가기관들이 최근 KDB생명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연달아 강등하고 있어 향후 자본 확충 문제는 여전히 녹록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국신용평가(한신평)는 지난 4월 KDB생명의 후순위 무보증 회사채 신용등급을 ‘AA-’(부정적)'에서 ‘A+’(안정적)로 한 단계 하향조정했다. 나이스신용평가도 지난 6월 KDB생명의 보험금지급능력등급과 후순위채 신용등급을 ‘AA-’와 ‘A+’로 한 단계 강등했다.
한신평은 “KDB생명이 올해 초 3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와 영구채 발행으로 건전성 지표인 RBC를 높였지만 그 유지에 불확실성이 상존한다”고 평가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KDB생명의 자본건전성은 개선됐지만 영업 채널 약화로 수익성 회복에 시간이 걸린다”고 봤다.
KDB생명은 전신인 금호생명 시절에 홈쇼핑과 방카슈랑스 채널에서 강점을 가진 우량한 생보사였다. 하지만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난으로 금호생명을 산업은행이 인수, 2010년 KDB생명으로 출범하면서 부실한 중소 생보사로 전락했다. 산업은행은 금호생명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 설립한 두 사모펀드를 통해 KDB생명 지분 85%를 보유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현재까지 지분인수에 5500억 원, 올 초 유상증자 3000억 원 등 KDB생명에 8500억 원을 투입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자본은 공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KDB생명은 실적을 달성해 시장에 높은 가격으로 매각돼야 하는 당위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KDB생명의 경영실적은 좋지 않다. KDB생명은 2016년 당기순손실 101억 원을 기록하며 적자로 돌아선 후 지난해 767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RBC가 금융당국 권고치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2017년 5월부터 한동안 시중은행을 통한 보험상품 판매를 중단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KDB생명은 희망퇴직 등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해 비정규직을 포함해 2016년 916명에 달하던 직원 수가 올해 1분기 638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173개의 지점도 99개로 통폐합됐고 설계사 수도 35%나 줄어든 2400여 명으로 감축되는 등 영업력이 축소됐다.
산업은행은 KDB생명을 2014년 4월과 같은 해 8월, 그리고 2016년 12월 등 세 차례 매각을 시도했으나 시장의 저조한 관심 속에 실패하면서 ‘악성매물’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이러한 중차대한 상황에서 지난 2월 21일 KDB생명 사장으로 보험 현장 경험이 전무한 정재욱 세종대학교 교수(경영학)가 취임했다. 정재욱 사장은 보험개발원,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등을 거쳐 보험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만 현장 경험이 없어 향후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KDB생명 노동조합은 정 사장 취임을 낙하산 인사로 규정하고 반대의 뜻을 밝혔다.
KDB생명 노조는 “현재 당사의 위기는 경영진의 방만한 경영과 이를 산업은행이 승인하고 묵인하는 과정에서 누적된 결과다. 산업은행은 KDB생명을 매각하기 위해 보여주기식 실적 향상을 꾀하면서 고이율 저축성 상품 판매를 늘리고 회사의 흑자를 유지하기 위해 KDB생명이 가진 우량채권을 매각하면서 회사가 부실해졌다”고 꼬집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KDB생명에 투입한 8500억 원은 당행이 자체적으로 조달한 자금이며 외부로부터 수혈한 게 없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당행이 설립한 두 사모펀드를 통해 KDB생명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며 “KDB생명은 매각에 앞서 경영정상화를 통해 매각 가격을 높이는 게 최우선이다. 매각과 관련해 아직 구체적인 일정은 잡혀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KDB생명 관계자는 “당사는 자본 확충을 통해 RBC를 높여 투자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 나갈 방침이다. 구조조정에 따라 현재 영업력이 축소된 것은 사실이나 단계적으로 영업력을 확대해 수익성을 높여 나갈 계획”이라며 “보험 전문가인 정재욱 사장이 당사의 정상화와 관련해 다양한 해법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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