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점으로 꼽히는 종합부동산세 개편안 밑그림이 공개되면서 시장 셈법이 더욱 복잡해졌다. 집값 전망도 불투명한 데다 세금 부담까지 맞물리면서 집주인과 실수요자 모두 단순한 덧셈 뺄셈이 아닌 ‘고차 방정식’을 풀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종부세 개편의 다른 축인 재산세 개편과 공시가격 현실화 등의 논의도 하반기에 이어질 것으로 예고된 만큼, 연말까지 관망세만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가 지난 6일 확정 발표한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개편안의 핵심은 간단하다. 부동산 시장에 “재산이 많은 사람은 세금도 더 많이 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낸다는 취지다. 정부 개편안에 따르면 내년부터 소유한 집이 비쌀수록, 3채 이상일수록 세금 부담이 늘어난다.
정부 개편안은 지난달 말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재정특위)가 내놓은 권고안보다 강도도 높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과세표준 6억~12억 원을 넘는 주택의 종부세율을 기존 0.75%에서 0.85%로 올릴 계획이다. 재정특위는 정부 개편안보다 0.05%포인트 낮은 0.8%로 올릴 것을 권고했었다.
부담할 세금이 늘어날 과세표준 구간 대상자는 1주택자의 경우 주택 가격이 시가로만 23억~33억 원인 사람들이다. 다주택자는 총 주택 가격 시가 합계 19억~29억 원이다. 정부 개편안을 보면 시가 10억 원 아파트를 3채 보유했다면 약 500만 원의 세금을 낸다. 재정특위 권고안을 따르면 100여만 원이다. 시가 30억 원대 주택을 소유한 1주택자는 100만 원가량의 세금이 부과된다. 재정특위 권고안대로라면 약 51만 원이다.
다주택자는 세금을 추가로 더 낸다. 과세표준 6억 원을 넘으면서 주택을 3채 이상 보유한 경우 0.30% 포인트의 추가 세율을 부과하기로 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그동안 1.00%의 세율을 적용받던 과세표준 20억 원인 4주택자의 경우 내년부터 1.50%의 세율이 적용된다.
다만 정부는 실수요자 보호를 위해 속도를 조절했다. 재정개혁특위는 공정시장가액비율을 내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5%씩 100%까지 인상하라고 권고했지만, 정부는 단계적으로 90%까지 인상하기로 했다. 우선 10%포인트를 올려본 뒤에 추가 인상을 검토할 방침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세율을 올리면 원가 상승, 임대료 전가 등의 우려가 있다. 재정개혁특위에서 나왔던 소수의견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정부가 고가 주택 또는 3주택 이상 다주택자를 주요 타깃으로 삼고 확실한 신호를 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증권사 부동산 연구원은 “세율 인상폭이 과거 정부가 대폭 완화했던 수준을 회복한 정도라 이번 개편안이 약하다는 반응도 있지만, 정부는 세금부담을 급격히 올리기보다 점진적으로 강화하는 방안을 선택했다”며 “지난해부터 정부는 일관성 있게 다주택자들에게 불리한 정책을 통해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투기성이 짙은 투자용으로 부동산을 구입하지 말고, 실거주자만 시장에 들어오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개편안 발표 이후 부동산 시장은 ‘갈팡질팡’
정부 개편안 발표 이후 부동산 시장은 더욱 분주해졌다. 집주인들은 물론 수요자들까지 발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리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게 부동산 시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서울 강남의 한 공인중개사는 정부 개편안 발표 이후 분위기를 묻는 질문에 “이번 개편안 하나가 시장에 준 충격은 크지 않다. 일부 지역은 오히려 집값이 오르기도 했다”면서도 “다만 내년까지 개편안을 중심으로 한 세제 개편 논의가 계속 이어질 전망이라, 세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각자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주택자들의 셈법이 특히 복잡하다. 부담이 늘어날 종부세를 ‘임대사업자 등록’으로 피할 수 있지만 선택은 어렵다. 단순 계산으로는 임대소득세가 종부세보다 높을 수 있지만, 부양가족, 소득 규모 등 경우에 따라 세액 공제 등 혜택이 있어 계산이 복잡해진다. 내년 세법개정안에서 임대소득세제 개편이 예고된 점도 변수다.
임대소득에 관심이 없는 일부 다주택자는 증여를 고민하기도 한다. 서울의 한 세무사는 “부동산 증여 관련 문의가 최근 많이 들어온다. 집을 여러 채 보유한 경우 세금 부담이 적은 1채만 남기고 나머지는 증여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라며 “증여세가 보유세보다 부담이 더 클 수도 있지만 집을 계속 보유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세금이 늘어날 가능성도 높아 증여를 고려한다”고 말했다.
수요자들의 고민도 깊다. 집값이 떨어질 것이란 기대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금 집을 사야 할지 기다려야 할지, 산다면 어느 지역의 어떤 집을 사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부동산 시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여기에 최근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나오는 신규 분양 단지들도 늘면서 매매시장에 관심을 계속 둬야 하는지도 실수요자들의 고민 중 하나다.
# “종부세 개편, 끝이 아닌 시작” 하반기에도 세제 개편 논의 줄줄이
집주인과 실수요자의 고민은 하반기에 더 깊어질 전망이다. 재산세 인상과 공시가격 현실화가 추가로 논의될 예정이다. 정부는 이번 개편안에서 재산세 인상과 공시가격 현실화는 일단 제외했다. 재산세 개편에 따른 파장이 상당해서다. 종부세는 주택 기준 공시가격 6억 원 이상(1주택자는 9억 원 이상)에만 세금이 부과되지만, 재산세는 집을 보유한 사람 모두 부담해야 한다.
정부는 이르면 연말에 재산세 조정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력한 방안은 종부세와 비슷하게 재산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공정시장가액비율 조정은 정부의 시행령 개정만으로 가능하다. 정부 입장에선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하는 세율 조정 방안보다 부담이 적다.
공시가격 현실화는 최근 가시화됐다. 국토교통부의 과거 정책들을 다시 검토하고 있는 관행혁신위원회는 지난 10일 “부동산 공시가격 책정 정책을 잘못 운영했다”며 공시가격의 형평성과 현실화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부동산 가격 공시제도를 개선하라는 내용의 권고안을 내놨다. 국토부는 구체적인 목표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관행혁신위의 권고에 따라 올해 안으로 개선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공시가격은 매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주택의 적정 가격을 조사해 4월 30일 공시하는 제도다. 국토교통부가 고시하고 감정원이 산정한다. 그동안 공시가격에 대한 지적은 끊이지 않았다. 시세와 비교해 공시가격이 50~70%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까지 가격 산정 시 실거래가 자료가 중심이 됐는데, 가격이 비싸 거래가 적다는 이유로 실거래가 자료가 부족한 고가주택일수록 현실화율이 낮았다. 집값이 비쌀수록 공시지가가 더 낮았다는 얘기다. 정확한 시세 파악이 어려우면 가격 왜곡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다만 공시가격 인상은 앞서의 종부세나 재산세보다 파급력이 훨씬 크다. 종부세부터 각종 연금, 건감보험료 산정 등 각종 세금 부과의 기초자료로 쓰이는 등 총 61가지 행정목적에 공시가격이 활용돼서다. 즉, 공시가격이 오르면 다른 세금도 함께 오른다.
종부세 개편안에 각종 변수가 줄줄이 예고되어, 당분간 부동산 시장은 관망세가 짙어질 전망이다. 실제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7월 첫째주 매매건수(신고일 기준)는 1100여 건이다. 지난해 7월엔 1만 4461건이 거래됐다. 올해 7월 전체 거래 건수가 집계돼도 지난해 수준에서 대폭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른 증권사 부동산 연구원은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형성되지만, 가장 큰 변수는 정부 정책이라고 봐야 한다”며 “집값이 큰 폭으로 떨어지는 일은 없겠지만, 최대 내년까지 각종 세제 개편 논의가 이어지는 만큼 거래가 활발히 진행되는 것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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