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단단히 긴장해야겠다. 세계 경제를 불확실성으로 몰아넣고 있는 미국·중국의 무역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여서다. 두 나라 정상은 정치적 리더십을 보여야 할 시점이라 한 치의 양보 없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물론 물밑접촉도 벌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은 8일(현지시각) 조만간 284개 품목, 160억 달러(약 18조 원)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밝혔다. 340억 달러(약 38조 원) 규모, 818개 품목에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1차 조치 이후 이틀 만이다. 2차 관세 부과 대상은 반도체 장비와 플라스틱·구조용 철강·전기모터·배터리 등이다. 중국의 주력 수출품이자 첨단제조업 육성책인 ‘중국 제조 2025’ 관련 제품군이다.
1·2차 관세 대상 품목은 총 500억 달러 규모로 중국의 대미 수출액 4300억 달러의 11.6%에 해당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8일 보고서에서 미국이 중국 제품의 25%의 관세를 물리면 중국의 대미 수출은 23.4%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에도 관세를 물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경우 한국과 일본은 유럽연합(EU)까지 무역전쟁에 휘말리게 돼 세계 경제에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중국도 이에 질세라 대두·수수·밀 등의 미국산 곡물에 마찬가지 관세를 적용할 계획이다. 중국은 앞으로 미국이 관세 대상을 확대하면 이에 상응하는 수준의 관세를 물려 맞대응한다는 계획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은 전 세계 경제에 큰 손실을 줄 것이란 전망이 일반적이다.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는 현재까지 나온 ‘관세폭탄’만으로도 글로벌 무역이 약 2조 달러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요국들은 무역전쟁이 끝나기를 강하게 희망하지만 강대강의 대립은 쉽사리 끝날 것 같지 않다. 국내의 중요한 정치적 일정이 맞물려 있어서다.
우선 미국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올해로 임기 2년차를 맞은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중간평가의 성격이 짙다. 공화당 내 지지기반이 취약한 트럼프 대통령은 물갈이론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이번 선거를 반드시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가시적인 성과를 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
관세 대상 품목만 봐도 트럼프 대통령이 표심을 염두에 두었음을 읽을 수 있다. 철강은 미국의 대표적인 공업생산지이자 ‘러스트벨트’ 중 하나인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의 주력 생산품이다. 러스트벨트란 철강·석탄 산업으로 부흥했지만 현재는 경제적 기반이 취약해진 지역으로 백인 노동자들의 밀집 지역이다. 지난 대선 때 트럼프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 ‘트럼프 컨트리’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올 3월 치러진 펜실베이니아주 연방하원 18선거구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승리하는 이변이 발생했다. 연방하원 선거지만 중간선거의 표심을 읽을 수 있는 선거라 공화당으로서는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다나 피터슨 씨티그룹 이코노미스트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미·중 간 보복관세 부과 품목 중 80%가 공화당 지지 주에서 생산한다. 이에 비해 민주당 지지 주는 10%만 관련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중국도 미국의 표심을 이용해 공세에 나서고 있다. 대미 관세 첫 번째 품목으로 대두를 선택한 것도 전략적 판단이다. 미국의 농업지역인 ‘팜벨트(farm belt)’는 일리노이·아이오와·노스다코타·사우스다코타 등 10여 개 주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일리노이·미네소타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50% 이상 득표했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대두 생산국이다. 지난해 228억 달러어치를 생산했고, 중국 수출액은 약 120억 달러다. 중국이 미국산 대두에 25%의 관세를 물리면, 브라질·아르헨티나·파라과이 생산 대두보다 30% 가까이 비싸진다. 미국 대두 생산 농가에 적지 않은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정치적인 부담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11월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한 수 접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무역전쟁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만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것은 아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노심초사하긴 마찬가지다. 시진핑 주석은 국내 정치적 리더십 확보와 외교적 외연 확대라는 두 가지 숙제를 안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3월 개헌을 통해 시진핑 주석에게 사실상 영구집권의 길을 열어줬다. 실제 종신집권 가능성은 낮지만, 시진핑 주석은 개헌 체제에서 정치적 리더십을 확보하려면 국내 경제 활성화와 새로운 비전 설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진핑 주석의 정책 방향은 정보통신(IT) 강국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IT 제품에 고율 관세를 매기는 한편, 미국 기업에 투자를 제한하면서 개헌 넉 달 만에 경제정책에 제동이 걸렸다.
공산국가인 중국의 분위기는 미국에 비해 외부로 잘 전해지지 않는다. 때문에 최근 무역전쟁에서 미국은 시끄러운 데 비해 중국은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경기선행지수인 주가지수가 지난 6개월 새 17.9% 폭락하고, 달러화 대비 위안화 가치도 3.6% 절하되는 등 동요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중궈몽·中國夢)을 비전으로 제시한 시진핑 주석이 2012년 집권 이후 가장 큰 도전을 맞고 있다”고 평가했다.
시진핑 주석은 또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함께 대응하자며 주변국들의 지지를 호소했지만, 반응이 뜨겁지는 않다.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을 즈음한 지난해 1월부터 세계경제포럼(WEF) 등에 참석해 중국이 자유무역의 첨병임을 자임했다. 무역전쟁이 터진 뒤에도 리커창 총리가 불가리아 보이코 보리소프 총리와 회담을 갖는 등 적극적으로 우군 확보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먼저 가격했다’는 정당방위 논리로 설득하는 중이다. 중국은 유럽연합(EU)에 반미 연합을 결성할 것을 제안했다. EU는 이를 보류하면서 세이프가드 등 자체적인 보호에 발동을 걸었다. 중국이 우군을 확보하기에는 아직 미국에 비해 외교적 역량이 부치는 모습이다.
시진핑 주석이 난관을 완만하게 넘기지 못하면 중국 인민들은 물론 공산당의 신임을 일찍 잃을 수도 있다. 미국과 중국의 혼란스러운 정치적 상황 속에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도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대립으로 몰리고 있는 셈이다. 두 나라가 쉽게 무역전쟁의 타협점을 찾지 못할 수도 있는 이유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클라스업]
반바지와 폴로셔츠, 여름 멋쟁이가 '진짜'
·
'홍준표의 LCC' 남부에어 사실상 좌초 위기
·
[부동산 인사이트] 입지 프리미엄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
[리얼 실리콘밸리] 베조스는 아마존의 효율성을 어떻게 구축했나
·
무역전쟁 촉발한 미국의 이유 있는 치킨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