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작가들은 빈 캔버스로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설렌다고도 한다. 작품을 구상하고 완성한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작품 제작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다. ‘한국미술응원 프로젝트’ 시즌4를 시작하는 마음도 같다. 초심으로 새롭게 정진하려고 한다. 미술 응원의 진정한 바탕을 다진다는 생각으로 진지하고 외롭게 작업하는 작가를 찾아내 조명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미술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경향을 더욱 객관적 시각으로 조망해 한국미술의 미래를 보여주려는 노력도 병행할 것이다.
회화는 정해진 평면에 작가의 생각을 점, 선, 면을 이용한 형태와 색채로 나타낸 예술이다. 그래서 회화를 보는 사람들은 작가의 생각보다는 그림으로 나타난 결과물을 먼저 보게 된다. 사람들이 그림을 좋아하게 되는 것도 작가의 생각보다는 회화라는 결과물이다. 사실 작가의 생각은 보는 이들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림으로 드러난 회화의 결과물은 그대로 전달된다. 그래서 현대미술에서는 표현의 다양성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회화로 드러나는 결과물이자 이는 곧 표현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표현 형식은 20세기 초 추상미술이 등장하고 나서부터 다양하게 발전하게 됐다. 새로운 형식의 개발이 회화의 주된 목표가 됐기 때문이었다. 특히 추상미술이 새로운 돌파구로 찾아낸 추상 이미지의 표현은 다양한 방법론을 개발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이를테면 인간의 감정이나 생각 같은 추상적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작가들은 여러 가지 기법과 재료를 이용해 표현의 방법으로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중 추상회화의 획기적인 방법으로 떠올라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다양한 방향의 회화가 등장하는 데 바탕을 제공했던 기법이 있다. ‘드리핑’이다. ‘뚝뚝 떨어진다’는 의미의 이 기법은 추상표현주의 회화의 대표적인 방법이다. 액션페인팅 작가 잭슨 폴록이 개발한 기법으로 우연의 효과를 극대화해 본능적 감정을 담아내는 데 제격이다. 그래서 무의식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통한다.
박정선의 회화도 드리핑 기법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이 기법에서 보이는 추상적 요소나 운동감 혹은 우연성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다. 계획적으로 구성한 추상화 같은 평면성이 두드러진다. 마치 숲 같기도 하고 나무를 소재로 한 구상 회화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꼼꼼히 들여다보면 붓으로 그린 부분이 없는 작업이다. 그리는 방법의 회화가 아니라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시트지에 드리핑 기법으로 물감을 혼합하고 점과 선이 얽혀서 만들어지는 우연에 의한 문양을 만든다. 이렇게 나온 흔적을 보고 칼로 오려서 이미지 파편을 만들고, 이를 캔버스에 콜라주 기법으로 붙여서 자신이 생각한 이미지로 발전시키는 방법으로 회화를 제작한다.
그것은 평면화된 숲의 이미지 같기도 하고 여러 가지 꽃이 흐드러진 들판 혹은 산의 한 부분을 가까이 다가서 바라본 풍경 같기도 하다. 작가는 자신의 회화가 대상을 보고 표현한 구체적 이미지는 아니라고 말한다. 보는 이의 상상에 맡기는 심상적 이미지이기를 바란다.
이런 기법을 통해 그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삶은 우연과 필연이 엮어내는 옷감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다. 드리핑 기법으로 끌어낸 무의식적 표현이 우연을, 콜라주 기법으로 뽑아낸 계획적인 화면 구성이 필연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한데 엮은 그의 회화가 어떤 이미지로 보이는지는 우리의 인생이 그렇듯 단정하기가 어렵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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