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토마 피케티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소득 분배를 실증적으로 추적함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환기했다. 바로 구조적인 불평등 문제다(‘21세기 자본’, 주로 2부 6장 참조). 케인스가 말했듯이 장기(長期, Long-Run)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고, 또 단기(短期)는 미래를 설계하는 바탕으로 삶기에는 너무 짧으므로, 경제 현상을 살필 때 요점은 중기(中期)의 추세다.
피케티가 제시하는 자료는 상당히 절망적인데, 1980년대 이래 지금까지 소위 선진국들에서 자본이 가져간 몫은 15~25%에서 25~30%로 늘어났다. 노동자는 상대적으로 더 가난해진 셈이다. 한국도 비슷한 추세다. 하지만 이 자료로도 이 땅의 불평들은 다 설명할 수 없는데, 비교적 안정적인 노동자(정규직)와 불안정한 노동자(비정규직) 사이의 불평등이 커지고, 자본소득자는 아니지만 소위 ‘중산층’으로서 경영에 참여하는 집단과 하위직 노동자 사이의 불평등도 크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의 비정규직-하위직 노동자나 생계형 자영업자의 상황을 엄밀하게 분석한다면 ‘레 미제라블’의 권수를 수십 배로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중요하므로 이번 회에서는 핵심만 짚고 나중에 다시 검토해보자. 레비 스트로스는 “여성의 교환”으로 인해 성의 불평등이 고착되었다고 말한다. 원시 사회에서 여성은 가장 귀중한 “선물”이었기에, 혼인(즉 여성의 교환)은 사회 집단끼리 맺는 가장 고도의 계약이었다. 그러나 교환되는(“시집 가는”) 여성은 기반을 잃어버리므로 구조적인 불평등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오늘날 노동자는 팔려야 하므로, 꼭 그때의 여성들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평등이 고착화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교과서와 달리 기본적으로 완전경쟁 시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악화된다. 고급 정보는 아래로 흐르지 않고(정보의 비대칭), 경쟁자의 부상을 막으려는 담합(독과점)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한국사회에서 불평등의 복마전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이 재벌들의 상속 활극이다. 최근 유행하는 ‘흙수저’와 ‘금수저’의 비유는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이들이 느끼는 출발점의 차이를 서글프게 상징한다.
지난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한국 사회는 두 명의 지대추구자(Rent-Seeker)를 선택했다. 한 명은 아버지 시절 얻은 정치권력을 통해 획득한 부동산으로 지대를 얻은 이요, 한 명은 노동자에서 출발했으나 부정하게 획득한 정보를 활용하여 얻은 부로 지대를 추구하던 사람이다. 이들은 생산성 향상에 존재 기반을 둔 산업자본가도 아니다. 이렇듯 불로소득자 집단의 대표들에게 국민경제를 총괄하는 직책을 부여한 것이 어쩌면 최근 우리들의 ‘중기’ 시대정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들 둘은 모두 ‘삼성’이라는 집단과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맺었고,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상속과 후속체제의 보장이 핵심이었다. 그 편법이 얼마나 도를 넘었는지, 성실히 세금을 내고 규정을 지키며 성장하고자 하는 자본가들까지 억울해할 판이 되었다.
모든 것을 구매해야 하는 사회에서 돈 없는 사람이 느끼는 상실감은 막대하다. 20세기 역사는 그 상실감이 도를 넘으면 사회가 전복됨을 보여주었다. 전복은 완전한 상실을 의미하기에, 가진 것이 많은 이들이 이 사실을 더 깊이 인지해야 한다.
엄밀히 말해 상속은 전(前)근대 사회의 속성이다. 생산성 향상을 지상 과제로 생각하는 근대적 자본가라면 능력 없는 자식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랄 만큼 무능한 2, 3세들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그 중 가장 문제적인 자본가 집단은 삼성가로 보인다. 그들이 정당할 길을 가게 하면 상당수의 병폐는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불평등의 구조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 권력의 역할은 지대하다. 전근대적 특성을 가진 사회에서는 큰 것(紀綱, 기강, 으뜸이 되는 중요한 규율과 질서)을 당기면 작은 것은 따라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법은 공정해야 하므로, 삼성을 표적으로 삼을 필요 없이 그들에게도 ‘흙수저’에게 적용되는 기준을 적용하면 된다.
옛날 춘추전국시대, 남방의 초(楚)나라와 북방의 진(晉)나라는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해가 멀다 하고 싸웠다. 당시 싸움에서는 말과 전차의 품질이 성패를 좌우했다. 그런데 초나라 귀족들은 자기들이 오르내리기 편하고자 전차를 낮게 개조했다. 말은 이 앉은뱅이 수레를 끄느라 힘들었고, 전투가 벌어지면 이 수레를 전차로 쓸 수가 없었다. 그러니 귀족들의 편법으로 소위 ‘국가경쟁력’이 위협을 받게 된 셈이다.
그러나 귀족 하나하나의 풍조를 교정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조정의 고민이 커갈 때 재상 손숙오가 내놓은 개혁은 간단했다. 그저 마을로 들어가는 문의 문지방을 조금 높이는 것이었다. 낮은 수레가 높은 턱을 넘지 못하니 귀족들은 매번 수레에서 내려 평민처럼 걸어 문지방을 넘어야 했다. 그것을 도저히 못하겠던지 그들은 더 이상 전차를 낮게 개조하지 않았다고 한다.
문지방은 모두에게 적용되는 기준이다. 오늘날도 가진 이로서 수레를 타고 다니고 싶다면 최소한의 기준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불평등을 해결할 방안은 많겠지만, 출발점은 가진 이들도 모두에게 적용되는 단순한 기준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
공원국 작가·‘춘추전국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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