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6월 29일 도쿄 신주쿠에서 열린 롯데홀딩스 주주총회. 한국과 일본 언론들은 이날 주총 결과에 주목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이사직 해임안이 안건으로 걸려있어서다. 주주총회 결과에 따라 경영권이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으로 넘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결과는 ‘부결’. 일본인 주주들이 신 전 부회장의 편을 들어 안건을 통과시킬 것이란 관측은 빗나갔다. 신 전 부회장은 롯데홀딩스의 대주주인 광윤사(지분율 28.1%)의 지분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일본 주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왔다.
그럼에도 일본 주주들은 이번 주주총회에서 신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신 회장과 함께 해임이 건의됐던 쓰쿠다 다카유키 부회장 이사직 해임안도 부결시켰다. 쓰쿠다 부회장은 신 회장 계열. 경영 복귀를 노리던 신 전 부회장의 이사 선임안 역시 처리하지 않았다. 한국 롯데를 지배하고 있는 롯데홀딩스가 신동주 대신 신동빈을 롯데의 경영자로서 공식 인정한 셈이다.
일본 주주들의 선택을 받을 거라 자신했던 신 전 부회장으로선 최후의 보루까지 빼앗기고 말았다. 일본 주주들은 왜 신동빈 체제에 손을 들어줬을까.
일본 주주들이 명분보다는 실리를 따랐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롯데그룹은 투자회사는 일본에, 실제 돈을 버는 사업회사는 한국에 있는 이중 구조다. 그런데 신 회장은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 호텔롯데를 상장해 롯데그룹을 일본롯데에서 분리해 오롯이 한국 회사로 만들려는 계획을 내세웠다. 일본 롯데 주주로서는 한국 롯데가 분리될 경우 배당수익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기업 가치가 떨어져 실질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한국 롯데는 해외에서만 연 11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데 비해 일본 롯데는 신주쿠 등지 부동산 투자를 통해 거둔 수익이 매출의 거의 대부분이다. 당장 한국과 일본 롯데의 관계가 끊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이번 주주총회에서 신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롯데그룹의 한 관계자는 “2015년 신동빈 회장이 한일 통합 경영을 시작한 뒤로 일본 투자를 늘리는 등 일본 주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공을 많이 들였다”며 “신 회장 취임 이후 인수·합병을 통해 기업 규모를 키우며 경영 능력에서도 인정받은 분위기”라고 전했다.
롯데홀딩스 주요 주주는 광윤사(28.1%), 종업원지주회(27.8%), 관계사(13.9%), 가족 및 기타(7.3%), 임원지주회(6%) 등이다. 광윤사는 신 전 부회장이 대주주다. 광윤사는 신 전 부회장을 지지했지만, 그를 제외한 대다수 주주들이 신동빈 회장의 편에 섰다고 볼 수 있다.
일본 롯데 임직원회 역시 롯데그룹이 경영에서 정상화되길 바라는 분위기다. 2015년 이후 표 대결만 다섯 번째며 양측 간에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빨리 타파하기 위해서는 신 회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셈이다.
사실 명분상으로는 신 전 부회장이 우위에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차기 후계자로 지목받았고 일본 롯데의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또 신 회장이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구속 상태가 이어진다는 점도 신 전 부회장에 힘을 실어주는 듯 보였다.
그러나 신 회장이 2015년 경영을 시작한 이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판을 조금씩 흔든 것이 경영권을 차지한 근본적인 원인이다. 신 회장이 승리를 굳히기 위해 2015년부터 꾸준히 일본을 찾아 일본 주주들을 설득한 점도 주효했다. 2016년 검찰 수사가 시작됐을 당시 미국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일본에 들러 주주들을 만나고 다녔을 정도다. 황각규 부회장도 일본에 상주하다시피하며 신 회장을 지원했다.
일본 롯데 주주들이 한국 롯데에 대한 경영 간섭을 강화하기 위해 신 회장을 지지했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신 전 부회장에 비해 신 회장이 일본 주주 장악력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투자·배당 등 한국 롯데의 경영에 입김을 강화할 목적에서 신 회장의 손을 들어줬을 것이라는 정치적 관점이다. 신 회장은 지분율이 떨어짐에도 일본 주주들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인수·합병(M&A)이나 고용, 해외사업 진출 등에서 일본 주주들의 눈치를 봐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총수 일가의 강력한 리더십에 일본 주주들이 한국 투자 등 경영에 크게 간섭하지 않았다”며 “다만 형제의 난으로 균열이 생기면서 일본 주주들이 캐스팅보트를 쥐었다. 일본 주주들의 입김이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신 전 부회장은 신 회장의 비서팀장을 역임한 류 아무개 전무를 1100억 원대 횡령 혐의로 고소하는 등 경영권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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