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간된 책 ‘투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읽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미국에는 자동차망이 잘 갖춰져 전국적으로 거대한 모텔 체인이 존재하는데, 모텔의 3분의 2 이상을 ‘파텔’이라는 성을 쓰는 사람들이 차지하더라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인도 현대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라비아를 따라 위치한 (인도) 구자라트는 길고 아름다운 해안선과 여러 개의 천연 항구를 갖추고 있다. (중략) 파텔의 유래는 ‘파티다르(patidar)’로, 번역하면 ‘지주’라는 뜻이다. (중략) 파티다르, 즉 파텔은 대개 대가족이어서 아들들은 작게 분할한 토지를 나누어 가졌고, 따라서 농사를 지어 돈을 벌기는 갈수록 어려워졌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사이 수많은 구자라트 출신 파텔들은 동아프리카 우간다로 이주했다. -책 27쪽
마하트마 간디의 전기를 읽으면서 인도 사람들이 남아프리카에 살았던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우간다까지 이주했다는 것은 이 책 덕분에 처음 알았다.
1972년 이디 아민 장군이 우간다의 권력을 잡고 독재에 나섰다. 그는 “아프리카는 아프리카인을 위한 것이다”라고 선언하며 그 외의 사람들은 모두 아프리카를 떠나라고 선포했다. 인도 사람들은 이미 여러 세대에 걸쳐 우간다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고향이 없었다. 사업체와 재산도 모두 우간다에 있었지만 아민 장군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간단한 문제였다. 아프리카는 오로지 아프리카인을 위한 땅이었다. -책 28쪽
당시 인도가 해외에서 쫓겨난 동포를 챙길 여력이 없었기에, 우간다에 살던 파텔들은 어쩔 수 없이 세계 각지로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최초로 미국에 들어온 몇몇 파텔들은 모텔 사업에 뛰어들었다. 나중에 들어온 수천 명의 파텔들도 개척자들의 선례를 따라 모텔을 운영했다. 왜 모텔이었을까? 모두가 사실상 동일한 업종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외국으로 이주한 소수민족의 역사에서는 일정한 유형이 관찰된다. 시카고에서는 아일랜드에서 온 초기 이민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경찰관이 되었고, 가정부는 대부분 폴란드 출신이었다. (중략) 이렇게 특정 직업에 특정 소수민족이 집중되는 이유는 역할 모델이 직업 선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와 생김새가 비슷하고 성장 과정이 비슷하며 같은 종파에 속하고 비슷한 학교를 다닌 사람이 돈벌이가 좋다면 이는 개인이 평생의 천직을 결정하는 데 당연히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책 29~30쪽
이는 한국 사람도 마찬가지다. 미국에 이민 간 사람들의 상당수는 세탁소나 식료품점을 경영했고 지금도 이 분야에 한국인들의 비중이 높다. 그런데 ‘파텔’이라는 성을 쓰는 사람들이 모텔 사업에 뛰어들고 또 이 업계를 장악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1973년 발생한 석유위기는 미국 경제를 깊은 불황으로 몰아넣었다. 경기가 나빠졌음에도 휘발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모텔 입실률이 크게 하락했다. (중략) 1973년 우간다에서 추방당한 파파 파텔은 아내와 세 아이를 데리고 미국에 난민으로 정착했다. (중략)
최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하던 그는 객실이 20개인 작은 모텔이 매물로 나온 것을 알게 되었다. 가격이 굉장히 싸다고 생각한 그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보았다. 자신이 그 모텔은 인수한다고 하면 매도에 적극적인 소유주 혹은 (주거래) 은행이 매수 가격의 80~90%를 융자해줄 가능성이 있다. 더 나아가 가족들은 모텔에서 살면 되니 따로 임대료를 지출하지 않아도 된다. -책 30~31쪽
파텔들 대부분이 대가족을 이루고 있으니, 모텔을 청소하고 운영하는 데 가족을 활용할 수 있어 모텔사업은 실업과 주거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좋은 방편이었던 셈이다.
파파 파텔의 가족은 채식주의자로 외식을 나가도 먹을 데가 없다. (중략) 낡은 자동차가 한 대 있을 뿐 주택담보대출이나 임대료 공과금 등도 나가지 않고 휴가나 오락활동에 대한 지출도 전혀 없다. 이렇게 파파 파텔의 가족은 1년에 5000달러가 안 되는 돈으로 문제없이 꾸려 나간다. (중략)
객실이 20개인 모텔을 5만 달러라는 헐값에, 그것도 현금은 5000달러만 들이고 나머지는 대출로 조달해 인수한다면 1박당 숙박료(12~13달러)와 평균 입실률(50~60%)만 가정해도 연간 5만 달러의 매출을 창출할 수 있다. (중략)
파텔은 연간 대출에 따른 이자비율 5000달러(10% 가정), 원금 상환 5000달러. 그리고 모텔 비품 구입 등 유지 보수 등에 5000달러에서 1만 달러를 지출한다. 그러므로 총지출은 2만 달러 미만이다. 여기에 생활비로 5000달러에서 1만 달러를 지출한다고 가정해도 그는 1년에 약 1만 5000달러 이상을 손에 쥐는 것이다. -책 32~33쪽
투자 원금이 5000달러였는데, 연 소득은 1만 5000달러 이상이니 연 수익률은 무려 300%인 셈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해피엔드로 끝나지만, 파파 파텔이 실패할 위험도 존재한다. 그러나 파파 파텔이 실패한다 해도 개인 파산을 신청한 후 다시 최저임금 직장에 복귀하면 그만이다. 따라서 파파 파텔은 모텔사업을 안 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이는 우간다에서 탈출한 또 다른 파텔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 대목에서 ‘투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저자, 모니시 파브라이가 하려는 말은 분명하다. 파파 파텔이 모텔 사업에 뛰어들던 1973년처럼, 경기가 극단적으로 나빠져 손실은 제한되는 반면 수익이 엄청난 사업을 시작하라는 이야기다. 물론 필자도 다음 번 불황이 왔을 때 파파 파텔처럼 전재산, 아니 다른 친척들에게 빌린 돈을 전액 투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주식시장이라는 대안이 존재한다. 사업에 뛰어들기 어렵다면, 파텔의 모텔사업 같은 기업을 매수하면 된다.
주식시장은 항상 출렁거리기 마련이며, 잠재력을 보유한 주식이 헐값에 거래되는 일이 허다하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그때 파파 파텔의 모텔을 한번 떠올려보면 어떨까?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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