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이 전문 경영인 CEO(최고경영자)를 교체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보통은 앞선 CEO가 일정 기간 회사를 안정적으로 이끈 공로로 더 중요한 자리에 오르거나 명예롭게 은퇴하면서 후임이 결정된다. 반대로 실적 부진이나 예상치 못한 사고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문책성 교체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이외에도 신사업 개척을 위한 전략이나 회사가 인수 합병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교체되기도 한다.
농심켈로그는 매우 비극적인 이유로 CEO가 최근 교체됐다. 세간의 존경을 받으며 지난 4년간 회사를 이끌던 한종갑 전 대표가 지난 5월 해외출장 중 갑작스러운 심장 이상 증세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향년 54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로 당분간 회사를 계속 책임질 것으로 기대됐던 고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농심켈로그 전 직원은 물론 식품업계 전체가 충격을 받았다.
급작스러운 경영 공백이 발생한 농심켈로그는 서둘러 후임 CEO를 물색했다. 약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기대 이상의 인물을 영입했다. 바로 김종우 전 웅진식품 대표다.
아침식사 대용으로 먹는 시리얼 판매가 주력인 농심켈로그는 농심 계열사가 아니다. 지난 1980년 농심과 미국 켈로그가 합작투자를 통해 설립됐지만, 현재는 켈로그의 지분이 90%에 달하고, 농심은 8.26%에 불과하다. 그래서 사실상 외국계 기업으로 분류된다.
김종우 신임 대표 역시 웅진식품 대표를 맡기 이전 필립모리스, 디아지오 등 외국계 기업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특히 디아지오코리아 대표 및 북아시아 총괄을 6년간 맡으면서 공격적인 마케팅과 유통 확대 전략으로 위스키 시장 점유율 1위를 탈환하는 등 눈부신 성과를 거둔 것으로 유명하다.
디아지오를 그만둔 김 대표는 이후 커리어 최초로 외국계가 아닌 웅진식품의 대표이사를 맡는다. 다만 웅진식품에서는 임기 2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그만뒀다. 구체적인 사임 배경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불명의 다른 회사로 이직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시 외국계 기업인 농심켈로그 CEO로 복귀한 김 대표의 새로운 도전 분야는 ‘시리얼’이다. 농심켈로그는 국내 시리얼 시장 점유율 2위 기업이다. 1위는 근소한 격차로 ‘포스트’ 브랜드를 소유한 동서식품이다.
그렇다고 해서 농심켈로그가 그간 부진했다고 보긴 어렵다. 매년 10% 성장을 거듭하며 지난 2017년에는 매출액 1500억 원을 돌파했다. 최근 급성장하는 시리얼바를 비롯해 스낵시장 전반에 걸쳐 수익다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아이들 간식에서 다이어트 식사 대용품으로 소비자 인식 확대를 꾀한 ‘스페셜K’와 ‘그래놀라’가 일등공신으로 거론된다.
김 대표는 취임과 동시에 많은 과제를 떠안았다. 한종갑 전 대표 시절 성장세를 이어가야 하는 것은 물론, 동서식품과의 경쟁에서도 승리해 1위를 탈환해야 한다. 마치 수입면허 취소로 무너진 ‘윈저’를 다시 국내 위스키 시장 1위로 올려놓은 것처럼 말이다.
그간 담배, 술과 같은 성인용 기호품 비즈니스를 해온 김 대표가 건강식으로 인식되는 시리얼 비즈니스를 맡았다는 점이 다소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혼밥족’으로 대표되는 간편식 시장이 최근 고공 성장하는 가운데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는 김 대표의 동물적인 사업 감각이 필요한 시점. 위조방지 기술로 소비자 신뢰를 얻어 위스키 시장의 판도를 바꾼 김 대표가 이번에는 과연 어떤 카드를 보여줄지 기대된다.
대한민국 경제의 기틀을 일군 기업들은 창업 1~2세대를 지나 3~4세대에 이르고 있지만 최근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되면서 가족 승계는 더 이상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치·사회적으로도 카리스마 넘치는 ‘오너경영인’ 체제에 거부감이 커지고, 전문성을 바탕으로 담당 업종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경영인’ 체제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늘고 있다. 사업에서도 인사에서도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전문경영인이며 그 자리는 뭇 직장인들의 꿈이다. ‘비즈한국’은 2018년 연중 기획으로 각 업종별 전문경영인 최고경영자(CEO)의 위상과 역할을 조명하며 한국 기업의 나아갈 길을 모색해본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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