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전쟁과 굶주림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하고 싶은 것이지만 인류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전쟁을 해왔고, 또 인위적인 기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위 성인군자들은 현실을 한탄하면서 희망사항을 피력했지만 그들의 염원은 종종 이뤄지지 않았다. 예컨대 맹자는 이렇게 주장했다.
“살인을 즐기지 않는 이가 천하를 통일할 것이다(不嗜殺人者能一之).”
당시 전국시대 중국의 군주들이 모두 살인을 즐기니, 살인을 즐기지 않는 군주가 나타나면 백성들은 살고자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그 아래로 모일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살인을 가장 많이 한 진(秦)이 전국을 통일했다. 그래도 맹자의 추론 가운데 반은 맞았는데, 천하 사람들은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살고자 가장 강한 나라에 항복했다.
이 칼럼에서 ‘땅(地)’을 이야기할 때는 대상은 주로 중국이다. 오늘날 중국이 강한 나라라는 것은 기정 사실이고, 또 그 나라가 살인을 즐기지는 않더라도 성인군자가 염원하던 그런 부류도 아님이 점점 확실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는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실력을 기르자(도광양회·韜光養晦)던 그들이 이제는 신(新)중화질서니 일대일로(一帶一路)니 하는 구호를 들고 세계를 선도하려 한다. 그러니 사업가부터 정치가는 물론, 보통 시민들까지 중국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이번에는 가장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에서 중국을 마주하는 현실을 묘사하고자 한다.
싸울 수는 없으니 문제는 어떻게 공존하느냐인데, 먼저 관념상의 오해를 하나 정리할 필요가 있다. 어떤 이들은 중국은 땅이 크고 자원도 많고 인구도 많으니 산업의 각 방면에서 절대우위(Absolute Advantage)가 전부 뒤집힐 것이라고 두려워한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가능하지 않은데, 사실 우위의 척도인 생산성은 국내 자원의 총량은 물론 일인당 가용자원의 함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상적인 경제주체라면 모든 분야에서 우위를 확보하고자 하는 불가능한 목표를 위해 비교우위(Relative Advantage)의 이점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개별 기업들은 피 나는 경쟁을 하겠지만 세부 집중 분야는 다를 것이고, 결국 전체적으로 중국의 성장은 한국에게는 비교우위 분야의 시장 확대를 의미한다.
문제는 △거대 시장을 보유한 중국이 독점적 수요자·공급자로서 권력을 행사할 때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 △우리는 어떤 분야에 비교우위가 있는가를 판단하는 일이다.
중국이 어떤 재화의 공급과 수요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모두 중국에서 정부가 기업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 때문이다. 전가의 보도처럼 써 먹는 여행금지 조치나 정치적 사안에 대한 경제적인 보복은 정부의 장악력이 작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또 핵심 기술을 개발하는 비용이 증가하는 현실에서 배후에 정부를 둔 중국 기업들이 유리한 것도 사실이니, 중국을 상대하는 경제주체들은 마치 기울어진 운동장에 들어선 느낌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큰 행정력에 딸려오는 불필요한 비용이 있고,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비용이 오히려 증가하는 산업 분야가 있다. 문제는 상대를 대하는 자신감이다.
작은 나라로 큰 나라를 치러 가면서 제갈량이 군주에게 “망령되게 스스로를 변변치 않다고 여기지 말라(不妄自菲薄)”고 당부했다. 큰 나라는 큰 나라의 고민이 있다. 수많은 강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중국은 거대한 ‘섬나라’ 미국이 그렇듯이 이웃에게 함부로 권력을 행사할 수 없는 지정학적인 조건을 타고났다. 미국처럼 힘을 쓰고자 한다면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정치적으로 표적이 되지만 않으면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것은 무력의 배후에 ‘소프트파워’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좋든 싫든 할리우드는 세계 문화산업의 중심이고 그 배경은 자유로운 상상력이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인민이 누리는 수준의 자유에서 할리우드 수준의 문화적인 상상력이 나올 법하지는 않다.
반면 한국민은 정치적으로 중국민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온 나라가 아크로폴리스를 방불케 할 정도로 매일매일 정치적인 관심사를 토론하는 이로 넘친다. 가까운 시일 내에 한국민과 중국민이 누리는 자유의 수준이 역전될 듯하지는 않다.
필자가 현장조사를 하고 있는 키르기즈 초원지대에서는 중국으로 매일 엄청난 양의 석탄과 금이 나가고 공산품이 들어온다. 그러나 중국보다 더 가난한 이곳 사람들 가운데 그 누구도 중국의 체제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당장 중국인인 필자의 아내는 한국에서 가질 수 있는 단 하나를 꼽으라면 ‘자유’를 택하겠다고 한다.
앞으로 거대 중국과 만들어갈 미래는 대단히 희망적이다. 오늘 우리가 가는 ‘비상도(非常道)’는 당장 내일 대륙에서 호응자들을 얻을 것이다. 선인들의 말을 약간 고치고 합쳐서 이런 염원을 만들어본다.
“작다고 스스로 비하하지 말라.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자유를 즐기는 이 아래로 천하가 모일 것이다.”
공원국 작가·‘춘추전국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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