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끈 없이 손에 쥐는 작고 가볍고 직사각형 모양의 가방인 클러치백(clutch bag)은 여성 패션 아이템이었다. 손에 쥐거나 겨드랑이에 끼고 다니는데, 결코 물건을 많이 넣어서 뚱뚱하게 들고 다녀서는 안 된다. 남자는 재킷 안주머니에 자잘한 소지품을 넣을 수 있지만, 드레스를 입는 여성에겐 주머니가 마땅치 않고, 설령 주머니가 있어도 소지품을 넣으면 맵시가 안 난다. 간단한 화장품이나 지갑을 담을 수 있는 클러치백이 필요했다.
꽤 오랫동안 클러치백은 여성의 전유물이었는데, 몇 해 전부터 남자 클러치백이 패션 트렌드가 되고 있다. 남자 클러치백 매출이 점점 늘어나는 데다 명품 패션 브랜드에서도 남자 클러치백에 적극적이다. 남자들 사이에서 클러치백이 하나의 패션 아이템이 되었기 때문인데, 심지어 40대 남자들까지 클러치백을 탐낸다.
도대체 왜 요즘 남자들이 클러치백을 탐내는 걸까? 남자들이 패션에 눈을 떴기 때문이다. 클러치백은 멋 부리기 위한 가방이지 실용성을 위한 가방이 아니다. 최소한의 것만 넣어서 가지고 다녀야 된다. 남자에게 그동안 클러치백이 필요 없었던 건 ‘주머니’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우선 남자의 소지품도 많아졌다. 향수나 화장품을 소지하고 다니는 남자도 늘었고, 자동차 키도 스마트키가 많아져 두툼해졌다. 스마트폰 크기도 커져서 더 이상 주머니 속에 쏙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더 이상 지갑도 주머니에 넣지 않으려 한다. 바지 뒷주머니에 지갑을 넣으면 불룩하게 튀어나오는 것을 꺼리는 것이다. 옷도 슬림하고 타이트해져서 옷 속에 소지품을 넣으면 맵시가 나지 않는다. 특히 옷차림이 가벼워지는 여름철에는 더더욱 클러치백이 절실해진다.
이제 옷 속에 불룩하게 소지품을 넣고 다니는 걸 꺼릴 정도로 스타일이 중요해졌고,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어떤 신발을 신고, 어떤 가방을 들지도 따진다.
물론 클러치백 들었다고 다 멋지게 보이는 건 아니다. 골프웨어 입고, 굵은 금목걸이 차고, 클러치백 두툼하게 들고 다니지 마시라, 제발! 사채업자가 일수가방 든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아무리 비싼 명품 브랜드의 클러치백이라도 절대 물건을 많이 넣어선 안 된다. 손에 들고, 겨드랑이에 끼고 다녀도 부담 없을 정도의 무게와 부피만 가능한 것이다. 소지품이 많을 때는 클러치백보다 큰 가방이 필요하다.
여전히 클러치백을 보고 ‘일수가방’ 타령하는 이들이 4050 중엔 많다. 그러니 클러치백을 들고 나갔다가 일수가방 운운하는 얘길 듣더라도 슬며시 미소 짓고 무시해버려라. 패션은 모두가 똑같이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스스로 당당하게 여기는 것만큼 멋진 건 없다.
올 여름 클러치백을 들고 다니는 남자들을 더 많이 보게 될 듯하다. 몇 해 전부터 시작된 유행이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이젠 하나의 패션 문화로 뿌리내릴 듯하다. 남녀 구분 없는 젠더리스(genderless)가 패션을 넘어 사회 전반에서 자리잡아가고 있기에 남자의 클러치백도 더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나이 든 남자들이 자꾸 스스로를 오빠라고 우기는데, 오빠와 아저씨는 정말 한 끗 차이다. 나이의 차이도 아니고, 돈의 차이도 아니고, 더더욱 피부의 차이도 아니다. 자기 자신을 얼마나 당당하게 꾸미느냐, 패션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느냐의 차이다. 같은 클러치백을 들더라도 느낌이 다른 건, 옷과 신발, 헤어스타일 등과 어떤 조화를 이루는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남자의 가방도 이젠 남자 패션의 중요 아이템이다. 클러치백을 멋스럽게 잘 들고 다니는 남자만큼 옷 잘 입는 남자도 없을 듯하다. 안목은 경험에 비례한다. 특히 패션의 안목은 더더욱 그렇다. 더 많이 멋을 내 본 사람이 더 멋진 스타일을 이해하는 눈을 가지기 마련이고, 클러치백도 좀 더 멋스럽게 소화하더라.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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