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문재인 정부가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청와대와 정부, 더불어민주당에 훈풍이 불고 있음에도 웃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한국 거시경제의 두 축인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을 각각 이끌고 있는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다.
재정정책을 총괄하는 김 부총리는 최근 고용 지표 악화와 빈부격차 심화라는 악재에 청와대와 민주당의 눈총을 받고 있다. 통화정책을 책임진 이 총재는 미국과의 금리 격차 확대와 가계 부채 증가 지속이라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지방선거 이후 정책의 무게중심을 남북 관계에서 경제로 옮겨갈 것임을 천명하면서 두 사람은 악조건 속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벼랑 끝에 서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8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아주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고, 국정에 대해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며 “그런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은 전적으로 청와대 비서실 모두와 내각이 아주 잘해준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일부에서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아서라거나 대통령 개인기가 그런 결과를 갖고 왔다고 말씀하는 분도 있지만 온당치 못한 얘기”라며 “대통령 혼자 할 수 없는 일이고, 대통령이 뭔가를 잘했다면 또 잘한 것으로 평가받았다면 그것은 함께한 청와대 비서실이 아주 잘했다는 것이고, 함께한 문재인 정부 내각이 잘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칭찬에 청와대와 정부, 민주당의 분위기가 고조된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틀 뒤인 20일 고위당정청회의에서 민주당이 저소득층 소득 악화와 고용난 등을 지적하고, 확장적 재정정책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서면서 재정정책을 운용해야 하는 김 부총리의 부담이 커졌다. 또 이러한 정부의 경기 부양 분위기에 이 총재도 기준금리 인상이 제한된 상황에서 금융시장을 안정시켜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청와대와 여당은 지방선거에서 얻은 압도적 지지를 유지하려면 일자리 확대와 민생 개선 등 먹고 사는 문제에 유능함을 보여야 한다고 판단하고 재정 투입을 확대하려는 분위기다. 하지만 문제는 지난해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으로 11조2000억 원을 투입하고, 올해 일자리 예산으로 전년대비 12.4%나 늘어난 19조 2000억 원을 편성했음에도 일자리 사정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소득 주도 성장을 위해 최저임금을 올해 7530원으로 1년 전보다 16.4% 크게 올리면서 부작용이 곳곳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김 부총리도 지난달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회의에서 “고용과 임금에 대한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저소득층이 많은 숙박·음식업 취업자 수는 지난해 12월 최저임금 인상을 앞두고 5만 8000명이 감소한 데 이어 5월에도 4만 3000명이 줄어드는 등 악화일로다.
이 때문에 경제계에서는 정부가 저소득 맞춤형 일자리 및 소득개선 대책을 내놓더라도 재정만 소요하고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 부총리로서는 나라 빚이 1500조 원을 넘어가고, 복지 확대와 남북 경협 비용 등으로 재정 건전성 우려가 커지는 때에 일자리 추가 예산까지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또다시 재정 투입에도 일자리 사정이 좋아지지 않으면 김 부총리는 재정 악화에 고용 악화라는 이중 악재를 초래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총재도 이러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태다. 한은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6월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으로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가 0.5%포인트 차이로 벌어지면서 기준금리 인상 압력을 받고 있다. 이 총재는 악화된 고용 사정과 투자·내수 둔화 등을 고려해 기준금리 인상을 억제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버티기는 힘든 상태다
미·중 무역전쟁 기미에 신흥국 금융위기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투자자금 유출 우려가 커지고 있는 데다, 기준금리 인상 지연으로 가계 부채 사정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한은이 20일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 보고서를 보면 금융기관의 가계신용대출은 지난해 3분기에서 올해 1분기 사이에 16조 7000억 원이나 늘었다. 가계 부채의 질이 나빠진 것이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를 계속 동결할 경우 국내 금융시장 불안정성을 키웠다는 비난을, 기준금리를 인상할 경우 정부의 경제 회복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힐난을 받을 처지에 놓인 셈이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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