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와 동방불패다. 밀지마.” 1993년 3월 1일 서울 종로3가에 있던 피카디리극장에 ‘동방불패2 : 풍운재기’ 개봉에 맞춰 임청하(린칭샤)가 내한해 팬 사인회를 했다. 극성 청소년 팬들이 현장을 찾아 앞 다퉈 그녀를 보려고 몸싸움을 해댔다. 이로 인해 극장 유리창이 깨지고 의자가 부서지며 부상자도 나오는 소동이 발생했다. 1990년대 전반기 임청하의 인기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1990년대만 해도 주연급 여배우로 30대 후반의 나이로 접어들면 은퇴를 고민해야 하던 시절이었다. 임청하는 37세란 나이인 1991년 ‘동방불패’ 타이틀 롤을 맡아 출연했고 이듬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권(동남아시아 포함)에서 ‘임청하 신드롬’을 일으키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녀가 연기한 ‘동방불패’는 절대 무공을 가진 강력한 카리스마와 중성적인 매력을 가진, 그때까지만 해도 영화사에서 볼 수 없던 캐릭터였다. ‘동방불패’에 출연할 당시 임청하는 20대 시절 풋풋함은 사라졌지만 ‘정말 잘생겼다’는 표현이 그토록 적절할 만큼 독보적인 미의 아우라를 뿜어냈다. 기억의 저편에 자리한 임청하 얘기를 꺼내 보기로 한다.
홍콩영화는 카멜레온처럼 변신을 거듭하며 1997년 중국으로 다시 귀속되기 전까지만 해도 동아시아 영화시장을 쥐락펴락했다. 1970년대 홍콩영화는 이소룡(리샤오룽)을 정점으로 왕우, 유가휘(류자후이)를 주연으로 하는 무협물이 대세였다. 성룡(청룽) 주연의 1978년 작 ‘취권’과 ‘사형도수’가 무협에 코믹을 섞은 퓨전 장르로 인기를 끌더니 1980년대 전반부에는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코믹 액션물의 시대로 변모했다. 1980년대 후반부에는 주윤발(저우룬파)로 상징되는 ‘영웅본색’ 류 홍콩 느와르의 전성기였다.
오랜 기간 비주류로 물러났던 무협 장르를 다시 본궤도에 올려놓은 주역은 대만(타이완) 출신의 두 여배우 왕조현(왕쭈셴)과 임청하였다. 왕조현은 판타지에 무협을 가미한 ‘천녀유혼’(1987)에 출연해 무협 장르의 붐을 조성했다. 그리고 임청하는 ‘동방불패’로 1990년대 전반 홍콩영화 대세 장르를 무협으로 바꾸어 놓았다.
13년의 나이차의 대만 출신 선후배 임청하와 왕조현은 홍콩에서 활동하면서 중화권을 넘어 동아시아권 최고 인기 여배우로 우뚝 섰다. 두 사람은 홍콩영화 전성기 시절을 이끈 중화권 대표 미녀 여배우들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동방불패’의 대성공은 영호충 역으로 출연한 이연걸(리롄제)의 공로도 컸다. 1980년대 ‘소림사’ 시리즈로 명성을 얻은 이연걸은 한동안 침체기를 겪더니 ‘황비홍’(1991) 타이틀 롤을 맡아 예술의 경지에 다다른 무술 실력을 선보였고 ‘동방불패’에 출연하면서 무협 스타로서 확고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국내에서 임청하의 인지도는 ‘동방불패’ 개봉 전까지 매우 미미했다.국내에서도 ‘동방불패’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주인공 여배우에 대한 관심이 폭증했다. 국내 영화 팬들은 영화 개봉 당시 그녀의 나이가 38세나 된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지 못했다. 한동안 국내에선 임청하에 대해 “오랜 무명시기를 거치다 뒤늦게 만개한 여배우”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임청하는 데뷔와 동시에 스타덤에 올랐고 20대 시절 중화권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톱 여배우였다.
임청하는 1954년 대만 가의(자이)현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19세에 ‘창외’(1973)를 통해 데뷔했다. ‘창외’는 대만의 인기 소설가이자 작가인 경요(치웅야오)의 동명 데뷔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에서 임청하는 담임선생과 끝내 이루지 못하는 사랑을 하는 여고 졸업반 연용 역을 맡았다.
원작자인 경요의 작품들은 대만뿐만 아니라 중화권과 동남아 일대에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며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기에 임청하는 데뷔와 동시에 스타덤에 올랐다. 그녀는 한동안 경요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에 출연하면서 성공가도를 이어갔다.
경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아시일편운’(1976)에서 임청하는 상대역인 진한(친한), 진상림(친샹린)과 실제로 삼각관계로 발전해 1980년대 전반까지 이들과 관계를 이어갔다. 진한과 진상림이 동시에 저돌적으로 임청하에 대시했기 때문이었는데 그녀의 결혼이 늦어진 이유이기도 했다.
인터넷의 발달로 임청하의 리즈 시절 영상과 사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 시절 임청하는 완벽한 계란형 얼굴에 뚜렷하고 반듯반듯한 이목구비와 청순함까지 함께 갖춘, 절세미녀였다. 이런 외모 탓에 임청하 초창기 배역들은 멜로나 애정 영화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 국내는 애정 영화가 대세였던 만큼 굳이 동일한 장르의 중화권 영화를 대체제로 수입할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임청하의 활동 초기 국내에서 인지도가 미미한 이유였다.
멜로물에 안주하던 임청하는 혜성처럼 나타나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대만의 4년 후배 호혜중(후훼이중)으로 인해 자극을 받아 결국 홍콩으로 활동무대를 옮겨 연기 폭을 넓혀 나갔다. 그녀가 홍콩에서 눈을 돌린 장르는 무협물이나 액션물이었다.
당시 국내에서 이러한 홍콩영화 장르는 어느 정도 흥행을 보증해 임청하가 출연한 영화들이 서서히 국내극장에서 개봉되기 시작했다. ‘촉산’(1983), ‘대복성’(1984), 1989년에야 뒤늦게 개봉한 ‘폴리스 스토리1’(1985)와 ‘몽중인’(1986) 등이 그 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국내에서 임청하는 “영화에 나왔던 굉장히 예쁜 여배우” 정도로만 기억되는 수준이었다.
‘촉산’은 임청하라는 여배우를 홍콩에 정착시키고 국내에도 그녀의 존재를 본격적으로 알린 시발점이다. 홍콩의 스필버그로 불리는 서극(쉬커)이 감독한 이 영화는 정소추(정샤오추), 홍금보(홍진바오), 원표(위안바오) 등 당대의 액션 스타들이 등장한 무협물이다. 이 영화에서 임청하는 선한 마녀 역할로 화제를 모았다.
성룡 감독·주연의 ‘폴리스 스토리1’에서 임청하는 대역을 허용하지 않는 성룡 영화 특성상 악당으로부터 업어치기를 당해 유리 탁자 위로 내던져지는 장면을 연기했다. 성룡 영화의 특징인 마지막 NG 장면 모음에서 임청하가 이 장면을 촬영하다가 실제로 팔을 다쳐 고통스러워 울고 있는 모습이 고스란히 나온다.
‘몽중인’은 임청하가 홍콩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이후 출연한 흔치 않은 멜로물이다. 그녀는 당대 아시아권 최고 인기 배우 주윤발(저우룬파)과 진시황제 시절과 현대를 오가는 불멸의 사랑을 연기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제 전설의 ‘동방불패’ 얘기다. 동방불패는 무협소설의 대가 김용(진용)의 원작 ‘소오강호’에 등장하는 절대 무공을 가진 강호의 최강자다. 동방불패는 “동쪽에서 해가 뜨는 한 나는 절대 지지 않는다”고 말하며 자신의 무공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오직 무공 비술인 규화보전을 완벽히 터득하기 위해 동방불패는 스스로 거세를 해 남성도 여성도 아닌 존재가 됐다.
규화보전은 과거 어느 환관이 창안한 무공으로 창시자 특성상 남자의 몸으로 익힐 수 없는 무공이다. 동방불패는 규화보전 수련을 통해 점점 여성으로 변해 간다. 소설 ‘소오강호’와 영화 ‘동방불패’에서 묘사한 동방불패는 상당히 다르다. 소설에선 남성성을 어느 정도 유지한 채 여자 옷을 입는 크로스 드레서에 가깝다면 영화는 몸도 마음도 갈수록 완벽한 여성이 되어가는 모습을 그렸다.
동방불패와 영호충의 러브 라인은 순전히 영화에서 창조한 산물이다. 동방불패는 초반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지만 중반 이후부터 여성 목소리로 변한다. 아직 남성 목소리가 남아 있던 시절 동방불패는 우연히 영호충을 만나 그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정체를 들킬까봐 한동안 그 앞에서 벙어리 행세를 한다.
영화의 결말. 동방불패는 바늘이나 쇠구슬만으로 자신을 꺾으러 온 무림고수들을 농락하지만 영호충을 보자 살기를 거둔 채 방어를 포기하고 그의 칼에 찔린다. 절벽으로 떨어지는 동방불패를 영호충이 구하러 내려오면서 진지하게 “말해줘요. 당신이 그녀요?”라고 묻는다. 동방불패는 “말해주지 않겠다. 나를 생각하며 평생 후회하고 살아가도록”이라 말하며 달관의 웃음을 짓고 영호충을 밀어내 살리고 자신은 끝 모를 바닥을 향해 떨어져간다.
‘동방불패2’는 전작의 인기에 힘입어 만들어졌지만 전작에 훨씬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카리스마 넘치는 임청하와 한층 원숙해진 왕조현의 미모를 한 프레임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다.
전작의 마지막 부분에서 동방불패가 절벽에서 뛰어내린 후 그는 세상에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동방불패는 정체를 감추고 은둔하고 있었을 뿐 살아 있었다. 여기저기서 동방불패를 사칭하는 무리들이 들끓는다. 이들 중에는 과거 동방불패의 애첩인 설천심(왕조현 분)도 있다. 설천심은 사칭을 하면 동방불패가 언젠가 자신을 만나러 와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동방불패’로 다시 정상에 오른 임청하는 이후 주로 무협물에서 중성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매력을 가진 배역으로 등장했다. ‘절대쌍교’ ‘신용문객잔’ ‘녹정기’ ‘백발마녀전’ ‘동성서취’ ‘동사서독’ ‘육지금마’ ‘천룡팔부’ ‘화룡풍운’ 등이 그 예다.
또 다시 고정된 역할에 식상했을까. 임청하는 1994년 정상에 있을 때 은퇴했다. 홍콩영화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로 꼽히는 왕가위(왕자웨이) 감독의 ‘중경삼림’(1994)이 그녀의 은퇴작이다.
‘중경삼림’은 실연당한 경찰 233과 663이 각각 겪는 두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다. 경찰 233은 금성무(진청우), 경찰 663은 양조위(량차오웨이)가 연기했다. 영화에서 임청하는 그동안 쌓아왔던 이미지를 과감히 탈피했다. 금발 가발, 입가에 점, 큰 선글라스 등 마치 마릴린 먼로를 연상시키는 분장을 한 마약 밀매업자로 에피소드1에 출연한다. 실연한 경찰 233과 미묘하게 엮이는 역할을 맡았다.
‘중경삼림’은 영상미도 뛰어나지만 영화에 삽입된 음악 역시 찬사를 받았다. 양조위와 왕페이가 등장하는 에피소드2에 흘러나오는 마마스 앤 파파스의 1967년 곡 ‘California Dreamin’은 이 영화로 인해 국내에서 다시 한번 공정의 히트를 쳤고 해체된 마마스 앤 파파스가 결합해 1996년 내한공연을 갖기도 했다. 왕페이의 뛰어난 노래 실력이 돋보이는 엔딩 크레딧 곡 ‘몽중인’도 귀에 착착 감긴다.
임청하는 ‘중경삼림’을 끝으로 1994년 6월 홍콩의 사업가인 형이원과 결혼해 두 딸을 두었다. 임청하는 영화 출연을 하지 않는 대신 수필집을 두 권 내는 등 작가로 변신을 시도했다. 형이원의 바쁜 일정으로 관계가 소원해지자 임청하가 한때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는 배우 정우성이 지난 4월 제20회 우디네 극동영화제 개막작에 참석하면서 이곳에서 임청하를 만나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됐다. 임청하는 환갑을 훌쩍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고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많은 팬들이 반가워했다.
임청하가 대만 여배우로서 다져놓은 입지는 왕조현, 비비안 수, 계륜미(구이룬메이) 등 후배들이 중화권을 넘어 국제적인 스타로 발돋움하는 자양분으로 작용했다. 은퇴한 지 벌써 20년이 넘었지만 임청하는 여전히 영화 팬들의 마음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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