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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 쪼개기'까지…주 52시간 근무 시행 앞두고 편법 횡행

7월 1일 300인 이상 사업장 적용 중견기업들 골머리…정부 "일률적 지침이 더 위험"

2018.06.15(Fri) 15:35:05

[비즈한국]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한 근로시간 단축 시행을 앞두고 일선 현장에서 뚜렷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해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뒤늦게 가이드라인을 내놨지만 혼선이 해소될지는 미지수다. 모호하거나 현장 업무방식과 다른 부분이 많아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제도 도입 취지와 동떨어진 각종 편법까지 동원되고 있다.

 

“좋은 취지로 도입되는 제도지만 반갑지만은 않다. 시간은 흐르는데 명확한 해법이 없어 고민이 많다.” 

 

근로시간 단축 시행을 앞둔 한 중견기업 임원의 말이다. 그는 지난 5월부터 인사·노무 담당 직원들과 회의를 이어가며 대응책을 마련 중이다. 그는 “유연근무제나 시간선택근무제 등을 고려하고 있는데, 직원들이 반대하는 경우도 있어 의견을 더 모아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은 오는 7월 1일부터 시행된다. 앞서의 중견기업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이 근로시간 조정에 분주하다. 현재 법이 인정하는 최대 근로시간은 법정 근로시간 40시간, 야근 등 연장근로 12시간, 휴일근로 16시간을 더해 총 68시간이다. 7월부터는 휴일근로가 인정되지 않는다. 연장근로에 포함돼 주당 최대 52시간으로 바뀐다.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 규모에 따라 차등 시행된다. 300인 이상 고용 기업이 먼저 시작하고, 50~299인 고용 기업은 2020년부터, 5~49인 고용 기업은 2021년 7월부터 줄어든 근로시간을 준수해야 한다. 근로자가 원해서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 52시간을 초과하면 사업주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기업들 안팎에선 지난 2004년 주 5일 근무제 전환과 비슷한 수준의 대격변이 업무 현장에서 일어날 것으로 본다.

 

오는 7월 1일부터 근로시간이 주당 52시간으로 줄어든다. 정부는 노동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한편 일자리 창출도 기대하지만, 기업 현장에선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며 해법 마련에 분주하다. 그래픽=김상연 기자

 

# “일단 정부 방침은 따르지만…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노동자에게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질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 연간 근로시간이 지나치게 길어 이를 단축해 노동자의 삶의 질을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내수경제 활성화와 함께 줄어든 근로시간을 채울 새로운 인력을 뽑는 ‘일자리 창출’도 기대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정부 방침에 따라 일찌감치 근로시간을 줄이거나 시범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주 52시간 근무를 도입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부작용이나 문제점 등을 미리 파악하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집중근무제 등 여러 방안을 시범 운영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들은 미리 준비도 했고 추가 고용 등 탄력적으로 운용할 여력도 있는 편이라 당분간 혼선이 있더라도 제도가 금방 안착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중소·중견기업들이다. 국내 4000여 중견기업 가운데 300인 이상 사업장은 23%에 달한다. 비용이나 업무 숙련도 등에서 단기적으로 손실이 나오더라도 인력을 보강하는 ‘정공법’을 선택하는 기업들도 있지만, 반대로 신규인력 채용 여력이 없거나 업무 특성상 근로시간 단축 기준을 엄격하게 따르기 어려운 곳도 적지 않다. 

 

전문직종이 대표적이다. 한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는 “연말·연초에 감사 업무가 한꺼번에 몰린다. 52시간의 2배에 가까운 시간을 들여야 기한을 겨우 맞춘다. 내부적으로는 ‘감사 시즌’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근로시간 단축은 불가능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라며 “추가 인력을 뽑더라도 짧은 기간에 전문 인력으로 키우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대형 로펌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변호사도 정시출근, 정시퇴근이 불가능한 업종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현행법에 따르면 회계나 법무법인 등은 재량근로에 해당돼 근로시간 단축 기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긴 하다. 근로자 재량에 따라 업무 수행 방법을 위임할 필요가 있다면 사용자가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로 정한 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행정규칙엔 법무, 회계 등이 위임·위촉을 받는 업무라고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면서도 “그렇다고 재량근로자라 근로시간을 단축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일각에선 법무법인이 근로시간 단축 기준을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업주와 근로자 대표 간에 정식 합의가 있으면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겠지만 그동안 재량근로가 관행처럼 이뤄져왔던 만큼 합의 절차부터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포털,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 등 IT기업들도 근로시간 줄이는 건 쉽지 않다. 한 게임업체 마케팅 담당 직원은 “게임 출시 직전 수개월 동안 업무가 쏟아지고, 출시 이후에도 운영과 서비스 안정화, 추가 보완 등으로 근로시간을 지킬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IT업계 관계자는 “사람을 더 뽑으면 되지 않느냐라는 반문이 나올 수 있겠지만, 회사 운영은 마치 고차 방정식 같아서 더하기 빼기처럼 답이 딱 떨어지지 않는다. 저녁 시간이 생기는 건 좋지만, ‘저녁 사 먹을 돈’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라며 “IT산업 확장은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질 텐데, 지금 당장은 찬물 끼얹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 ‘편법​이 해법?

 

근로시간 단축에 적응이 어려운 기업들은 ‘편법’을 시도하기도 한다. 퇴근 처리 후 야근하거나, 퇴근 후 재택근무를 하는 등의 아이디어가 나오는 건 예삿일이다. 최근 중견·중소기업들 사이에서 거론되는 대표적인 방식 중 하나가 ‘기업 분할’이다. 

 

52시간 근무제가 300명 이하 사업장에서는 2020년 이후 적용되는 점을 감안한 조치다. 그동안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외부감사 대상이 되면 자금 운용 제한 등을 피하려고 법인을 쪼개는 경우는 있었지만, 근로시간 단축에 대응하기 위해 분할하는 건 일종의 신(新)풍속도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대기업으로부터 하청을 받는 한 하도급 업체는 공정을 분할해 별도 법인을 만들 예정이다. 이 업체 대표는 “공정을 책임지던 임원 직함을 사장으로 변경해 개인사업체로 등록할 방침”이라며 “최근 수년간 인력을 꾸준히 늘리고 있었는데 자칫 고꾸라질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새 법인은 우리 일감도 받고 다른 기업 일감도 받는 쪽으로 운영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한 식품제조 업체는 본사와 자회사 직원 수를 조정해 각각 300명 이하로 맞췄다. 조직개편 차원에서 조정한다는 입장이지만, 근로시간 단축에 영향이 없진 않다는 게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일부 IT업체는 정예 인력을 추려 예외업종 적용을 받을 수 있는 5인 미만 업체로  쪼개기도 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노무사 등을 통해 문의했지만 인력 충원, 해고, 추가 수당 지급 등 선택지가 제한적이었다”고 말했다. 

 

그 밖에 근로시간 단축 도입을 앞두고 단기적인 출혈을 떠안으면서도 인력을 줄인 뒤 자동화 설비를 도입하는 곳도 있다. 이 경우는 일자리 창출이라는 궁극적인 제도 도입 취지에 역행한다.

 

# “정부 뒷짐만​ 지적에도 노동부 “일률 적용이 더 위험​ 

 

정공법을 택하든, 편법을 택하든 근로시간 단축을 준비하는 기업들은 제도 도입 취지에는 공감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최근의 혼란에 대해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꼬집는다. 지난 2월 국회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최근까지 원론적인 안내만 내놨을 뿐, 별다른 가이드라인은 제시하지 않았다. 일각에선 “일단 (근무시간 단축을) 하고 보자고 밀어 붙이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지난 2월 국회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했다. 사진=박은숙 기자

 

노동부는 업계 혼선이 빚어지면서 지난 11일 뒤늦게 ‘근로시간 단축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이마저도 현장에 적용할 구체적인 내용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회식과 접대 등 주로 대기업 근무 환경 위주로 작성되어 중소·중견기업 현실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목소리도 높다. 

 

다른 중견기업 임원은 “가이드라인을 보면 근로자 관리에 관한 핵심 쟁점들은 ‘노사 합의’가 중요하다고 명시돼 있다. 판단이 애매한 부분들은 ‘합의’로 넘기는 것 같다”며 “시행착오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조심스러운데, 정작 가이드라인은 구체성이 떨어지고 기업 자율에만 맡겨 적절한 해법은 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에 발표한 가이드라인에 맞춰 이달 말 세부 매뉴얼을 공개할 예정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사업장과 직종이 워낙 다양해 혼선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일률적으로 적용할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순 없다. 지나치게 구체적이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며 “가이드라인과 세부 지침이 나온다고 해도 부족할 수 있다. 판단이 어려운 경우엔 지방노동청의 유권해석을 받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상현 기자

mo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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