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TV홈쇼핑은 인터넷 쇼핑이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 소비자에게 여전히 매력적인 유통 채널이다. 쇼호스트가 상품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줄 뿐 아니라 전화로 편리하게 주문할 수 있다. 판매자 입장에서도 짧은 시간에 많은 판매고를 올릴 수 있기에 재고 관리 및 자금 회전에 용이하다.
문제는 지나치게 비싼 마진이다. 홈쇼핑 기업이 가져가는 마진은 제품이나 방송시간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보통 30~40% 수준. 제한된 방송 시간을 가진 홈쇼핑 업체 입장에서는 송출수수료, 반품 등 각종 비용을 감안하면 당연하다는 입장이지만, 중소기업에게는 ‘살인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담이 크다. 그나마도 대기업과 경쟁에 밀려 주문 전화가 몰리는 이른바 ‘골든타임’은 꿈도 꾸기 어렵다.
지난 2011년 중소기업 제품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홈앤쇼핑’이 출범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를 중심으로 야심차게 출범한 홈앤쇼핑은 방송 분량의 80%를 중소기업 제품을 취급하는 중소기업 전문 TV홈쇼핑이다.
제6의 홈쇼핑이 된 홈앤쇼핑은 설립 초기 수익성, 상품 경쟁력 등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나름대로 순항했다. 방송을 시작한 지 불과 5년 만인 2016년에는 연 매출 4203억 원, 취급액은 무려 2조 원을 돌파하며 건실한 성장세를 이어나갔다.
문제는 내부에서 불거졌다. 강서구 마곡동에 지은 신사옥 건설 과정에서 입찰 비리 정황이 발견된 것. 대림산업보다 건설비를 180억 원이나 비싸게 제출한 삼성물산이 공사를 수주한 것이 문제가 됐다. 이로 인해 검찰 조사를 받게 된 홈앤쇼핑은 채용비리 사실까지 추가로 발견되며 결국 강남훈 전 홈앤쇼핑 대표가 임기를 한참 남겨두고 스스로 물러나야 했다. 공모를 거쳐 바통을 이어받은 인물은 바로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부회장을 지낸 최종삼 홈앤쇼핑 신임 대표다.
최종삼 신임 대표는 LG전기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경영자에 오르기까지 줄곧 LG 계열사에서 근무한 정통 LG맨이다. 한때 LG그룹 회장실에서 근무했을 정도로 조직 내에서 신임을 받았다. 2000년대 초 상무 시절 GS홈쇼핑의 전신인 LG홈쇼핑에서 경영지원을 총괄했던 만큼 홈쇼핑 업계에서는 1세대이자 큰형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LG홈쇼핑은 TV뿐 아니라 온라인에도 사활을 걸었다. 오픈마켓이라는 개념이 낯선 시절이었던 만큼 누가 시장을 선점하는지가 매우 중요했다. LG홈쇼핑은 LG이숍(현 GS이숍)을 론칭하며 대기업다운 공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LG이숍이 선보인 ‘최저가 신고제’는 온라인 가격비교가 일반화되지 않았던 그때, 소비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최종삼 당시 LG홈쇼핑 EC사업부장의 작품으로 전해진다.
이후 최 대표는 LG홈쇼핑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거쳐 2005년에 GS울산방송 사장 자리에 오른다. 종합유선방송(SO) 사업자로서 경험을 쌓았다. 말단 사원에서 시작해 CEO(최고경영자)까지 오르며 직장인으로서 모든 것을 이룬 그는 이후 한국디지털케이블연구원 이사장, 한국케이블TV SO협의회장,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상임 부회장 등을 차례로 지냈다. 그간 쌓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케이블 산업 발전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간 것.
각종 비리 의혹으로 위기에 빠진 홈앤쇼핑에 최 대표보다 적합한 CEO는 찾기 어려울 정도라는 평가다. 무엇보다 홈앤쇼핑은 사기업이지만 중소기업벤처부 산하 중소기업중앙회가 최대주주이기에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들여다보는 기업이다. 전문성은 더 따질 필요조차 없고 젊은 시절부터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보유하며 ‘마당발’로 통했던 최 대표가 낙점된 또 다른 이유로 해석된다.
경찰 압수수색까지 받은 홈앤쇼핑 신사옥 입찰 비리 의혹은 잠잠해진 상태. 하지만 채용비리 의혹은 결국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돼 관련자들이 불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개국 초기인 2012년부터 경영을 맡아온 강남훈 전 대표가 물러나고 최종삼 대표가 선임되면서 홈앤쇼핑은 2기 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지금까지의 성장세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은 물론, 제동이 걸린 코스닥 상장 역시 불씨를 다시 지펴야 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홈앤쇼핑의 성장 이면에는 강 전 대표의 모바일 퍼스트 전략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전체 취급액 중 무려 80%를 차지할 정도로 모바일 쇼핑 비중이 컸다. 이러한 모바일 전략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기업 정체성 유지를 위해 TV 비중도 함께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온라인과 케이블 유통 경험을 두루 갖춘 최 대표라면 못할 것도 없어 보인다.
대한민국 경제의 기틀을 일군 기업들은 창업 1~2세대를 지나 3~4세대에 이르고 있지만 최근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되면서 가족 승계는 더 이상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치·사회적으로도 카리스마 넘치는 ‘오너경영인’ 체제에 거부감이 커지고, 전문성을 바탕으로 담당 업종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경영인’ 체제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늘고 있다. 사업에서도 인사에서도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전문경영인이며 그 자리는 뭇 직장인들의 꿈이다. ‘비즈한국’은 2018년 연중 기획으로 각 업종별 전문경영인 최고경영자(CEO)의 위상과 역할을 조명하며 한국 기업의 나아갈 길을 모색해본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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