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오마하의 현인’. 바로 워런 버핏입니다. 80대인 지금도 전 세계 금융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죠. 그는 고향 집에서 검소한 생활을 합니다. 재미없지만 충실한 가치투자를 하지요. 얼마 전까지는 IT와 같은 ‘불안한’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혁신 기업, 실리콘밸리와는 안 어울리는 존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가장 힙한 홍보방식을 보여주는 CEO(최고경영자)이기도 합니다. 몇 달 전 한국에는 ‘워런 버핏 바이블’이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버핏이 주주에게 보내는 편지와 매년 주주총회에서 했던 이야기를 담은 책이지요. 다른 책과 달리 버핏이 직접 했던 말이 담겨 있어 흥미롭게 볼 수 있습니다.
주주총회에서 버핏이 주주와 하는 대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주주들은 회사의 사정은 물론 버핏의 투자 철학부터 배우자를 고르는 방법,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자유롭게 대화합니다. 버핏의 이야기에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의 지혜와 여유가 느껴집니다.
주주총회는 인기 있는 콘텐츠입니다. ‘버핏과의 저녁식사’가 경매에 붙여지듯, 버핏의 주주총회 또한 그렇습니다. 원래 억 단위 가격의 버크셔해서웨이 주식이 있어야 갈 수 있는 행사입니다. 한국의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에서 1명이 대표로 주주총회에 참석한 뒤 자세한 내용을 유료 리포트로 판매했을 정도로 인기가 있지요.
버크셔해서웨이의 주주총회는 ‘자본주의의 록 콘서트’를 연상케 합니다. 전 세계 주주들이 버핏을 보기 위해 모입니다. 버핏의 발표, 질문과 답변 세션에서 영감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주주가 많기에 대형 언론사의 저널리스트들이 날카롭게 질문합니다. 주주총회는 각국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됩니다.
인터넷으로 중계됨에도 주주총회는 엄청난 인기가 있습니다. ‘경험 그 자체’를 사기 위해서입니다. 버핏의 팬들은 버핏의 명언이 새겨진 은접시, 버핏이 즐겨 먹는 캔디까지 다양한 ‘굿즈’를 소비합니다. 버핏이 즐겨 가는 스테이크집에서 식사를 하기도 하죠. 버핏이 레스토랑에 오기라도 하면 엄청난 행운을 얻은 셈입니다. 버핏의 질문과 답에서 지혜를 얻을 수도 있고요.
고향인 오마하를 떠나지 않고, 비싼 차를 타지 않는 검소한 버핏. 그는 왜 떠들썩한 주주총회를 여는 걸까요? 주주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버핏은 항상 ‘평판’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 “돈을 잃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회사 평판에 조그만 손상이라도 가하는 일은 용서할 수 없다.” 평판은 영원하고, 돈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평판과 관계만 있다면 돈은 얼마든지 다시 벌 수 있다고 버핏은 강조했습니다.
버핏은 회사의 가치를 믿고 코카콜라 등의 회사에 초장기 투자를 해서 큰돈을 벌었습니다. 덤으로 유명해졌지요. 버핏이 큰돈을 벌기는 점점 어려워집니다. 그의 투자 방식을 모두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버핏은 상관없다고 말합니다. 모두가 자신의 투자전략을 알게 되더라도 자신을 신뢰하게 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거지요.
버핏은 돈을 보지 않는 투자를 합니다. 1970년대 버핏은 경영난을 겪던 ‘워싱턴 포스트’를 과감하게 지원합니다. 이 덕분에 워싱턴 포스트는 워터게이트를 파헤쳐 닉슨 정권을 무너뜨립니다. 돈보다 사회의 영향력을 중시하는 베팅 덕분에 역사에 이름을 남긴 투자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신용을 돈보다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주주총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이유도 납득이 됩니다. 신용을 쌓는 데 가장 좋은 게 소통이기 때문입니다. 주주총회 덕에 사람들은 버핏을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자신의 지혜를 공개하는 일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독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더 큰 자산인 신뢰를 얻기 때문이지요. 올드한 기업가로 보이는 버핏이 가장 힙한 콘서트 형식의 홍보 이벤트를 매년 하는 이유입니다.
버핏의 전통은 실리콘밸리로 이어졌습니다.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한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대표적입니다. 그는 제2의 버핏이 되어, 트럼프를 정조준하는 워싱턴 포스트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베조스는 직원을 거칠게 몰아붙이면서까지 고객의 모든 메일에 답합니다. 적어도 고객에게는 평판을 최고로 유지하는 사람입니다.
버핏은 베조스와 함께 미국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건강보험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서로 다른 두 세대의 부자가 힘을 합쳐 미국의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거죠. 버핏은 점차 IT에 마음을 열었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 빌 게이츠는 버크셔해서웨이의 이사입니다. 제조업 등 탄탄하고 명확한 산업에만 투자했던 버핏은 이제 애플에도 투자합니다. 버핏의 유산을 실리콘밸리가 물려받듯, 실리콘밸리의 새로운 흐름을 버핏도 물려받기 시작한 겁니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상화폐)로 돈을 버는 시기에 그는 차트가 아닌 기업가치를 보고 우직하게 장기투자로 돈을 법니다. 혁신과는 안 어울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세상 사람들이 ‘오래된 지혜’를 열심히 배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버핏은 지혜를 아낌없이 개방합니다. 콘서트와 같은 주주총회이자 홍보 이벤트를 통해서 말이죠.
가장 올드한 부자의 가장 힙한 홍보 행사, 워런 버핏과 버크셔해서웨이 주주총회였습니다.
김은우 NHN에듀 콘텐츠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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