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선거에서 민감한 주제 가운데 하나는 부동산 공약이다. 가장 큰 규모의 자산인 데다 정책 방향에 따라 가치가 크게 달라져서다. 정태옥 자유한국당 선거대책위원회 전 대변인의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으로, 망하면 인천으로 간다)’ 발언이 지역민의 공분을 사는 것도 부동산 가치를 훼손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처럼 자연스럽게 부동산 정책을 다루는 후보들의 공약에 유권자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특히 최대 격전지인 서울은 전국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곳이며, 정부 부동산 규제의 한가운데 있어 주목도가 더 높다. 앞으로 4년간 서울을 책임질 서울시장에 출마한 후보자는 ‘빅3’로 압축된다. 박원순 더불어민주당 후보,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 안철수 바른미래당 후보다.
최근 서울 부동산 시장의 ‘뜨거운 감자’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다. 재건축에 따른 조합원당 이익이 3000만 원 이상 발생할 경우 초과금액의 최고 절반을 세금으로 내도록 하는 제도다. 2006년 처음 도입됐다가 부동산 부양을 위해 지난 2013년부터 유예된 뒤 올해 1월 다시 시행됐다.
환수제 부활 직후 강남을 중심으로 ‘재건축 부담금 폭탄’ 논란이 불거졌다. 첫 시행 대상이던 서울 서초구 반포현대 재건축 부담금이 시장 예상보다 훨씬 높게 나와서다. 당초 조합 측은 1인당 650만 원가량을 제시했으나 실제 산정된 부담금 예상액은 16배 많은 1억 3569만 원에 달했다.
앞으로 다른 재건축 단지들의 부담금 예상액 산정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이러한 가운데 ‘빅3’ 서울시장 후보자들도 부동산 공약에 재건축에 대한 입장을 담았다. 후보별로 입장차는 명확했다.
# ‘환수제 통한 균형발전 도모’ 박원순 후보
3선에 도전하는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의 부동산 공약 핵심은 ‘도시재생’이다. 재개발과 재건축을 통해 허물고 새로 짓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는 걸 ‘고쳐서 다시 쓰고 가꾸는 것’을 강조한다. 박 후보는 서울시장 임기 중에도 개발보다는 소규모 도시재생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박 후보는 이번 공약에 ‘도시·주거환경 정비기금 조성 및 활용’을 새롭게 포함했다. 도시재생이나 사회적 약자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데 필요한 돈을 기금 형태로 만들어 쓰겠다는 취지다.
재원 마련 방안이 핵심이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에 대한 입장은 여기서 등장한다. 박 후보는 강남권 등에서 환수제를 통해 거둬들인 부담금을 환경정비기금으로 책정하고 강북 등 저개발 지역 발전을 위해 사용할 계획이다. 강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강북의 교통 발전을 위한 강북권 경전철 건설 등에도 사용된다. 정부의 재건축 규제 등 부동산 정책 기조를 따라가면서도 강남·강북 집값 격차를 좁히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균형 발전까지 이뤄내겠다는 복안이다.
반면 환수제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방안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초과이익환수제를 적용받는 재건축 단지는 앞서의 반포 현대아파트다. 서울 강남에서 사업 속도가 가장 빠른 곳으로 꼽히지만 분양, 철거, 신축 등을 앞두고 있어 최소 3년은 지나야 재건축 부담금을 걷을 수 있다. 여기에 환수제 부활로 현재 대부분의 서울 재건축 아파트들은 사업 진행 속도를 늦추고 있다. 박 후보는 이번에 당선되면 더 이상 연임이 불가능하다. 공약 실행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환수제는 사유재산 침해’ 김문수 후보
김문수 서울시장 후보는 박 후보와 정반대의 입장이다. 최근의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전면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앞세웠다. 김 후보는 건물 층수, 용적률 제한 등 재건축 규제와 함께 환수제까지 폐지해 정비사업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과도한 부동산 규제는 주택 공급을 줄이고 결국 집값 폭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환수제는 사유재산에 대한 침해라는 시각에서 출발했다.
김 후보는 최근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은 자기 땅 위에 자기가 원하는 집을 짓고 사는 것”이라며 “주민들이 자기 돈으로 더 좋은 집을 짓겠다는데 정부가 개입해 층수를 제한하고 규제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규제를 직접적으로 받는 잠실 주공아파트, 종로구사직 제2구역 등을 방문해 “시장이 되는 첫날 재개발·재건축 허가 도장을 찍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 후보는 규제를 전면 폐지한 뒤 주택 공급을 늘려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는 ‘개발을 통한 균형발전’을 이끌어 내겠다는 입장이다. 전면 규제 폐지와 동시에 사업 기간을 절반으로 줄인 뒤 이를 통해 공공임대주택도 25만 호 공급, 출산을 앞둔 신혼부부에게 우선임대주택 5만 호를 공급할 계획이다.
다만 김 후보 공약은 중앙정부 부동산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정부는 서울 집값이 불필요하게 올랐다는 이유로 지난해 서울을 ‘도시재생 뉴딜’ 사업에서 제외했다. 이 사업은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개발 사업이다. 또한 환수제는 법률에 근거한 제도다. 서울시 차원에서 해결이 불가능하다. 설령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입법을 하더라도 국회 문턱을 넘기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 ‘현행 유지하되 조정은 필요’ 안철수 후보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는 박 후보와 김 후보의 중간 지점에 서 있다. 환수제는 현행대로 유지하되 조정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안 후보는 오래 거주한 1가구 1주택 조합원과 그렇지 않은 조합원 간의 부담금 부과율을 달리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철저히 환수하더라도 아파트 조합원들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얘기다.
특히 부동산 투자자가 아닌 실거주자에게는 환수제 납세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실거주자를 위한 분할 납부와 물납 등 안전장치를 마련하도록 정부와 협의할 계획이다.
준공영 개발 방식으로 재건축·재개발 문제를 풀어내겠다는 공약에도 힘을 싣고 있다. 준공영 개발은 재개발 지역 용적률을 높여주는 대신 서울시가 사업 권한을 가지고 임대주택과 근린 시설을 늘리는 것을 말한다. 안 후보는 서울토지신탁을 신설해 서울시가 주민들로부터 토지를 신탁받아 개발 계획을 세우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15개 자치구에 걸쳐 깔려 있는 국철 57km 구간을 지하화하고 상부를 복합공간으로 조성하는 ‘서울개벽 프로젝트’를 부동산 공약의 핵심으로 내걸었다.
다만 준공영 개발 방식은 현재 시행 중인 방식을 일부 수정한 데다, 준공영 개발을 통한 용적률 확대도 주변 주거단지의 일조권 등을 고려할 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개벽 프로젝트는 2조 원의 사업비가 문제다. 안 후보는 상부 상업용지를 매각해 충당할 계획이지만,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지 않은 만큼 57km에 달하는 구간 모두 적정한 가격을 받을 정도로 사업성이 있을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문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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