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작가들은 빈 캔버스로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설렌다고도 한다. 작품을 구상하고 완성한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작품 제작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다.
‘한국미술응원 프로젝트’ 시즌4를 시작하는 마음도 같다. 초심으로 새롭게 정진하려고 한다. 미술 응원의 진정한 바탕을 다진다는 생각으로 진지하고 외롭게 작업하는 작가를 찾아내 조명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미술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경향을 더욱 객관적 시각으로 조망해 한국미술의 미래를 보여주려는 노력도 병행할 것이다.
금세기 회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디자인 감성이 지배한다는 사실이다. 디자인 감성은 차갑게 느껴질 정도의 세련미와 기계로 만든 것 같은 장식성 그리고 대중성이다. 따라서 현재 유행하는 회화의 표현 방법은 기존의 미술과 전혀 다른 언어로 보인다.
요즘 각광받는 작품을 보면 붓으로 그린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붓질이 없는 매끈한 화면과 선명한 단색 그리고 뚜렷한 윤곽선으로 형태가 정확하게 보인다. 전통 회화가 꾸준히 추구해온 3차원 공간의 느낌이 없다. 원근법이나 음영의 표현도 없다. 그래서 평면 그 자체가 그대로 보인다. 마치 다양한 색채의 만화를 확대한 것 같은 그림들이다.
이런 형식의 표현은 20세기 중반 팝아트에서 나타났는데, 금세기 들어와서는 팝아트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회화에서 국제적 표현 방법으로 유행하고 있다. 미술사적으로는 미국의 대표적 팝아트 작가 중 한 사람인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처음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디즈니 만화 이미지를 확대해 그린 것이 팝아트를 상징하는 표현 방법으로 굳어진 셈이다.
그런데 기원을 잘 따져보면 일본의 만화적 표현 방법에서 유래한 것이다. 18세기 일본 에도시대 미술인 우키요에가 시초인 셈이다. 우키요에(浮世絵)는 단색을 바탕으로 간략하고 뚜렷한 선으로 형태를 그려내는 방법으로 당시의 대중적 일상과 정서를 표현한 그림이다. 19세기 서양에 소개돼 인상주의 미술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자포니즘을 불러 일으켰다. 20세기에는 팝아트와 결합해 일본적 팝아트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최나리의 회화도 이런 흐름에서 읽히는 작업이다. 내용과 표현 방법은 팝아트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인의 다양한 도시 정서와 욕망을 주제로 삼는다. 따라서 소재도 성과 음식, 유희 문화와 소비 패턴에서 보이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주류를 이룬다. 그리고 최근 작업에서는 서양 명화를 차용하거나 영화의 장면을 패러디하는 변화도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팝아트로만 분류하기에는 용량이 크고 깊다. 이 시대 사람들의 다양한 정서와 이야기를 만화적 상상력으로 포장한 유머와 풍자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표현에서도 디자인적 감성을 바탕으로 하지만, 전통 회화의 다양한 표현 방법을 겸용해 다채로운 상황을 연출한다.
특히 눈에 띄는 요소는 인간 욕망을 상징하는 캐릭터의 독창성이다. 그는 마요네즈와 토마토케첩의 색채와 튜브의 모양에서 창안한 독특한 캐릭터로 남성과 여성을 표현한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메두사의 머리가 연상되는 인물의 표현이 그것인데, 성적 이미지와 물질적 욕망의 분위기가 골고루 보인다. 이 캐릭터는 그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상황을 연출해 화면을 주도하고 있다. 성격은 뚜렷하게 보이지만 드러나지 않는 현대인의 모습으로 적절해 보인다. 그래서 이들이 만들어내는 최나리의 회화가 더욱 궁금해진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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