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방위산업은 고도로 복잡하고 정밀한 장비와 솔루션을 만들고 한 정에 100만 원 남짓한 자동소총부터 한 대에 1조 원이 넘는 전투함까지 엄청나게 다양한, 그리고 매우 고가의 제품을 파는 비즈니스다. 자연스럽게 높은 기술력을 갖춘 선진국들이 방위산업을 선도하기 마련이다.
방위산업은 또한 진입장벽이 매우 높다. 총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부 간 거래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신규 주자의 진입이 어려운 편이다. 방위산업의 제품, 그러니까 무기의 단가는 높지만 소비재 상품에 비해 이윤율은 박하다. 연구개발 비용도 엄청나니 쉽게 건드릴 만한 사업이 아니다.
때문에 현재 세계 방위산업을 주도한 나라들은 제1, 2차 세계대전부터 그래왔다. 유럽에는 뿌리부터 거슬러 올라오면 수백 년, 미국도 70~8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방위산업체들이 아직도 세계 시장을 좌우한다. 이런 장벽을 넘어서 10대 방산 선진국으로 진입한 나라는 중국과 이스라엘이 ‘유이’하다.
방위산업은 그러니까 60년에 겨우 신입 회원 둘을 받는 ‘톱10 클럽’인 셈인데, 향후 60년 동안 이 톱10의 새로운 회원으로 흔히 거론되는 나라가 바로 터키와 대한민국이다. 최근 20년간 방위산업의 규모와 연구개발 능력, 양산 실적과 수출 실적이 가장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터키의 발전을 대한민국이 도와주고, 상호 공동의 이득을 취하면서 두 나라가 동반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령 자주포 사업이 그렇다.
터키는 1993년부터 신형 자주포를 순수 터키 기술로만 개발하려다가, 성능 부족을 느끼고 해외의 자주포 업체와 공동개발을 추진했다. 먼저 독일과의 협력을 추진하다가 거부당하자 한국으로 눈을 돌려, 한국의 K-9 썬더 자주포의 주요 부품을 그대로 들여온 T-155 ‘피르티나’ 자주포를 완성하는데 성공했다.
한국의 K-9 자주포는 비슷한 시기에 영국과의 협력을 추진했다가, 여러 가지 문제로 독자 개발에 나서 터키에 다시 수출한 셈이니, 같은 고민을 한 후배에게 선배가 자신이 바닥에서 쌓아올린 노하우를 가르쳐 준 셈이다. K-9 자주포의 기술을 활용한 T-155 사업은 한국이 해외에 무기 부품과 기술을 대량으로 수출한 첫 사례이기에 우리에게도 그 의미가 남다르다.
터키는 T-155 자주포 사업의 성공 이후 한국과의 방산협력을 매우 적극적으로 진행해 왔다. KT-1 기본훈련기를 55대 수출하는 것은 물론 2005년부터는 K2 흑표전차의 주요 장비와 개발기술을 수출해 터키의 신형 전차를 만드는 일명 ‘알타이(Altay) 전차 개발 프로젝트’에 한국의 로템(ROTEM)이 K-9을 수출한 것과 비슷한 기술이전과 부품 수출을 했으니, 터키는 한국 방위산업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파트너였다.
하지만 최근의 터키 방위산업은 한국의 동반자에서 경쟁자가 된 지 오래다. 2010년 이후부터 터키는 한국이 제안하는 공동개발 혹은 무기수출 사업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유로 비토를 놨다. 터키 해군의 차세대 다목적 상륙함 사업에서 우리 한진중공업은 독도함을 제시했지만 요구조건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한국은 입찰에 참여하지 못했다.
이제 터키는 새로운 국산 무기체계 개발을 한국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도전하는 모양새다. 그리고 그 내용과 규모가 심상치 않다.
우선 ‘휴르쿠스’ 공격기/훈련기는 터키가 대한민국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KT-1T를 면허생산한 뒤 선보인 새로운 터보프롭 기종이다. KT-1T를 수입하면서 받은 기술이전을 토대로 만들었는데, 원본 KT-1과 모양은 비슷하지만 훨씬 강력한 엔진을 장착했다. KT-1의 엔진이 950마력인데 비해서 휴르쿠스는 1600마력 엔진을 장착, 무장형으로 사용될 때는 8발의 대전차 미사일과 레이저 유도 로켓, 방탄장비까지 갖추어 KT-1의 무장형인 KA-1보다 중무장이 가능하다.
터키의 자체개발 무인기 ‘ANKA’는 그 크기가 우리 군이 운용중인 RQ-101 ‘송골매’보다 크고, 미군의 주력 무인항공기인 RQ-9보다 작은데 이미 무장을 장착, 지상의 차량을 공격하는 시험에 성공했다. 우리 군보다 터키가 먼저 무장형 무인기를 배치하고 운용하는 것이다. 스페인과 같이 건조한다는 일명 MAAS(Multipurpose Amphibious Assault Ship) 상륙함은 우리 독도함의 거의 두 배인 2만 7000톤에서 2만 9000톤의 중량으로 6대의 F-35B 수직이착륙기를 탑재할 수 있다.
육군 부분에서는 ‘ATAK-2’라는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터키는 이탈리아의 A129 망구스타 공격헬기를 개량한 T129 소형 공격헬기를 개발해 양산 중인데, 이 기술을 바탕으로 훨씬 큰 새로운 공격헬기를 자체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대전차 미사일 12발 이상 탑재할 수 있어, 거의 우리 육군이 사용하는 AH-64E 아파치 가디언에 근접하는 성능과 무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대형 공격헬기는 1970년 후반 이후 새롭게 개발된 사례가 없으니, 터키가 거의 40년 만에 남들이 시도하지 못한 무기를 만드는 셈이다. 터키는 ATAK-2 이외에 두 종류의 수송 헬리콥터도 개발 중인데, T625라 불리는 헬리콥터의 경우 우리 군의 차세대 경공격헬기인 LAH와 모양과 크기가 비슷하지만 우리보다 훨씬 빨리 시제품을 내놓았고, 우리 군의 국산 수송헬기인 ‘수리온’보다 큰 신형 10톤급 헬리콥터의 개발까지 선언한 상태다.
공군에서는 HURJET이라는 제트 비행기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상태이다. HURJET은 마치 우리의 T-50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엔진이 1개가 아닌 두 개라는 점이 다르다. 우리 T-50이 공격기형인 FA-50으로 발전한 것처럼, 훈련기뿐만 아니라 경공격 임무에도 투입하고 10년 내 하늘에 띄운다는 것이 제작사인 TAI의 목표다.
TAI의 최종목표는 TF-X, 혹은 MCA(National Combat Aircraft)로 불리는 터키 최초의 국산 전투기 프로그램이다. 스텔스 성능과 각종 첨단 전자장비를 갖춘 최신예 전투기를 2025년까지 만든다는데, 내용상으로 언뜻 보기에 우리 공군과 KAI가 추진 중인 KF-X 차세대 전투기가 연상되지만 그 스케일이 남다르다.
우리 KF-X가 16m의 길이에 대략 F-16과 F/A-18 사이의 중간 크기 전투기인데 비해 터키의 TF-X는 19m의 길이에 모양과 크기가 세계 최고 전투기인 F-22 랩터와 거의 같다. 외형과 기술, 능력도 F-22 랩터를 따라잡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지는 엄청난 프로젝트인 셈이다.
터키의 차세대 방위사업 프로젝트가 전부 이렇게 입이 딱 벌어지는 엄청난 수준과 성과를 목표로 하는 데에는 아무래도 정치적 이유가 가장 크다. 에르도안 총리가 장기집권의 기틀을 다지는 과정에서 터키 경제는 부채가 증가하는 등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산업을 부흥시키면서 동시에 중동의 패권국가로서 ‘미국에 할 말을 하는 나라’로 확고히 자리 잡는 것을 선전하는데 크고 멋있는 새로운 무기 개발프로젝트만큼 잘 먹히는 아이템이 없다.
하지만 터키 방위사업과 터키군은 사실 지금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터키 쿠데타 미수 사건 이후 군과 산업계에는 광범위하게 반 에르도안 세력을 색출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고, 이 때문에 알타이 전차는 생산 업체가 바뀌고 내홍을 겪는 데다 미국에서는 터키의 차세대 전투기인 F-35의 터키 수출을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방해하려는 모양새다. 하필 터키 쿠데타군 용의자 중에 공군 출신이 많아 터키 공군은 비행할 사람과 장비가 없어 몸살을 앓는 모양새이다.
결국 지도자의 결단이든, 국민의 지지든 모든 것이 현실적인 외교와 경제에 기반을 두지 않은 야심찬 방위사업은 그저 종이로 그린 계획에 불과할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대한민국은 터키와는 달리 수년에 걸친 충분한 타당성 조사와 논의를 거쳐 대형 무기개발 사업이 진행되었으나, 아직도 대형 무기개발 사업의 타당성에 대해서 관료주의적인 결정을 비판하는 목소리 또한 존재한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과학기술을 자랑하는 미국조차 신무기 개발의 예산과 일정을 지키는데 종종 실패하는 만큼, 우리 역시 KF-X 차세대 전투기, 차기 지대지, 장보고-3 후속사업 등 수조 원짜리 굵직한 국산 무기개발 사업에 다시 한 번 날카롭게 개발계획과 목표를 가다듬고 살펴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대형 무기개발 사업의 실패는 단순히 세금을 탕진하고 우리의 일자리가 없어지는 경제의 실패뿐만 아니라 안보의 실패까지 불러오는 초대형 참사이기 때문이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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