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코스닥 벤처펀드가 출시 두 달 만에 3조 원에 육박하는 자금을 모으면서, 투자 시장의 ‘블랙홀’로 등극했다. 투자 성공 기대감과 함께 세제, 공모주 우선 편입 등 각종 혜택으로 투자자들을 대거 끌어모았지만 과열로 인한 투자 위험도 함께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5월 31일 기준 코스닥 벤처펀드에 2조 7655억 원의 투자금이 몰렸다. 10개 공모펀드에 7605억 원이 유입됐고, 172개 사모펀드에 2조 50억 원의 자금이 공급됐다. 불과 출시 두 달 만에 이룩한 성과다. 지난 4월 5일 3708억 원으로 시작해 빠른 속도로 자금이 불어나면서 코스닥 시장 ‘히트상품’이 됐다.
# 파격적 조건에 투자자 몰려
코스닥 벤처펀드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도입했다. 자금 유치가 어려운 벤처기업이 펀드를 통해 자본을 확보하고, 투자자는 소액으로도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환경을 조성하자는 취지다. 정부는 이를 통해 코스닥 벤처펀드가 일자리 창출과 신성장 동력 육성의 밑그림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벤처기업 성장을 위해 도입된 제도인 만큼 코스닥 벤처펀드는 운용 조건이 있다. 펀드 자산의 절반을 반드시 벤처기업에 투자해야 한다. 이 가운데 15%는 벤처기업 신규 발행 주식과 공모주 투자가 조건이다. 벤처기업이 신규 발행하는 무담보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발행회사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채권(메자닌)이 여기에 포함된다. 나머지 35%는 벤처기업이나 벤처기업이 해제된 지 7년이 넘지 않은 중견·중소벤처기업에 투자해야 한다.
증권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올해 초 코스닥 벤처펀드 출시 방침이 처음 발표됐을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 흥행은 예상하지 못했다. 앞선 정부들도 비슷한 벤처 펀드 상품을 내놨지만 유명무실하거나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성공하면 ‘대박’을 노릴 수 있지만 그만큼 위험도도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코스닥 벤처펀드가 성공한 배경에는 정부가 제시한 파격적인 조건이 꼽힌다. 공모주 우선 배정이라는 인센티브가 주효했다. 기존에는 기관투자자 전체에 기업공개(IPO) 물량의 50%가 배정됐지만, 이번 제도 도입으로 코스닥 벤처펀드에 30%가 우선 배정됐다.
이로 인해 코스닥 공모주 투자에서는 코스닥 벤처펀드가 가장 유리할 수 있다. 공모주 물량을 많이 배정받으면 받을수록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서다. 사모펀드와 비교해 운용도 자율적이다. 사모펀드는 최소 가입금액이 1억~10억 원에 달하는 데다, 투자기간도 대부분 3년 이상이라 환매가 어렵다. 반면 공모펀드는 최소 가입금액 제한이 없고 환매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소득공제도 대표적인 코스닥 벤처펀드 유인책이다. 1인당 투자금 최대 3000만 원에 대해 10%(300만 원 한도)까지 소득공제가 가능하다. 증권가 일각에선 이 흐름이라면 판매액 4조 원 달성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코스닥은 기대수익률이 높은 만큼 위험도도 높은 투자처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정부의 이번 코스닥 시장 지원 정책이 투자 심리를 자극했다. 최근 주춤하지만 이 속도라면 4조 원대도 바라볼 수 있다”며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도 공모주 청약 과정이 복잡하고 물량도 충분히 배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 수익을 더 낼 수 있는 길이 하나 생겨 관심도가 더 높아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 시장 과열에 ‘묻지마 투자’ 우려도
문제는 시장이 과열되면서 각종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정부가 제시한 혜택이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공모주 우선 배정 혜택을 노린 일부 코스닥 벤처펀드 운용사들이 상장사에 파격적인 조건의 전환사채(CB) 발행을 요청하는 상황까지 벌어질 정도로 ‘CB 물량 폭탄’이 쏟아진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지난 1일까지 코스닥 시장 CB 발행 공시 권면총액은 2조 8376억 원(266건)으로 집계됐다. 1조 2934억 원(167건)을 기록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19%나 증가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코스닥 벤처펀드에 투자된 자금 상당액이 상장사의 신규 발행 주식과 CB 등에 투자해야 하는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흘러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CB는 만기까지 보유함으로써 이자를 획득하는 채권이지만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르면 주식으로 교환해 시세차익을 노릴 수 있다. 그러나 향후 물량 폭탄 수준의 CB가 주식으로 전환되면 결국 주가가 하락하게 된다. 손해는 모두 투자자 몫이다.
CB 발행이 급증하면서 자금을 모아야하는 기업과 투자를 하는 투자자의 입장이 바뀌기도 한다. ‘제로금리’ 등 기업에 유리한 조건으로 CB가 발행되는 것이다. 일부 상장사들은 최근 표면이자율, 만기이자율 모두 0%를 조건으로 제시했다.
CB도 채권이라 발행 시 이자율과 만기가 정해지지만, 표면, 만기이자율 0% CB의 경우 투자자들은 이자 없이 원금만 돌려받을 수 있다. 만기까지 보유하면 이자를 주는 조건도 있지만 수년을 기다렸다가 이자를 받거나, 주식으로 바꿔 주가가 오르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 사이 벤처기업이 문을 닫으면 CB는 모두 휴지 조각이 된다. 일반적인 투자 리스크에 투자자가 불리한 점도 늘어난 것이다.
펀드가 어떤 CB나 BW를 담았는지를 실시간으로 알 수는 없는 점도 주의할 점이다. 펀드가 어떤 자산을 담았는지 공시되는 시점은 한 달여 뒤다.
앞서의 증권사 관계자는 “3조 원에 달하는 투자금이 몰리다 보니 신주 발행 규모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시장에 돈이 넘치다 보니 자금을 유치해야 하는 기업이 오히려 투자자보다 위에 있다”며 “과거 기준에 따른다면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 기업들도 보이지만 투자처를 찾지 못한 일부 운용사들이 CB를 마구잡이로 발행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발행 조건이 좋으니 ‘일단 자금을 모으고 보자’는 반응도 보인다. 공모주 우선 배정 혜택을 받기 위해서인데, 이러한 방식은 묻지마 투자와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열기가 과열되면서 공모가격 거품 우려도 나온다. A 사는 지난 5월 15일 공모가를 2만 3000원으로 확정했다. 이 공모가는 회사 측이 제시한 희망가격 범위(1만 7500~2만 500원)을 뛰어넘었다. 일반투자자 청약 경쟁률은 1028 대 1을 기록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공모 가격이 우려되는 수준에서 확정되는 경우가 나오고 있다. 상장 후 주가가 급락할 가능성이 있으니 투자자들은 주의해야 한다”며 “과열된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부실한 기업이 퇴출되는 등 점차 정상화될 수 있다. 투자자들은 시장 분위기에 휩쓸리기보다는 운용사들의 성과 등 이력을 꼼꼼히 보고 기업들의 실적과 자금 사용 용도 등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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