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4일, LG그룹은 사업보고회를 시작했다. 사업보고회는 LG그룹 계열사들이 사업 성과와 중장기 경영 전략에 대해 발표하는 그룹 회의로 매년 6월과 11월 정기적으로 열린다. 그간 사업보고회는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주재했고, 지난해 두 번의 사업보고회는 구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주)LG 부회장이 주재했다.
이번 사업보고회는 하현회 (주)LG 대표이사 부회장이 주재하고 있다. 재계 일부에서는 구 부회장이 주재하지 않은 것을 놓고 지난 5월 별세한 고 구본무 회장의 아들 구광모 LG전자 상무의 원활한 경영승계를 위해 그룹 경영에서 한 발짝 물러난 것으로 해석한다. 재계 관계자는 “항간에는 구 부회장이 LG그룹을 맡아 구본무 회장과 구광모 상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며 “이번 사업보고회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보인다”고 전했다.
구본무 회장 별세 후, 재계에서는 LG그룹의 계열분리를 점쳤다. 구 회장이 1995년 회장에 취임한 후 구 회장의 아버지인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형제들은 모두 LG그룹 경영에서 물러났다. 현재 구 명예회장의 동생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 구자두 LB인베스트먼트 회장, 구자일 일양화학 회장, 구자극 엑사이엔씨 회장 등은 모두 LG그룹을 떠나 각자의 회사를 이끌고 있다.
구본무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과 구본식 희성전자 사장도 LG그룹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다. 구광모 상무가 LG그룹을 이끌기 시작하면 구본준 부회장까지 독립해 LG그룹을 떠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주)LG는 오는 29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구광모 상무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을 의결할 예정이다. 이때 구본준 부회장의 거취도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구본준 부회장은 (주)LG 지분 7.72%를 갖고 있다. 5일 종가 7만 7000원으로 계산하면 1조 254억 원으로, 이를 밑천 삼아 계열 분리에 나설 수 있다. 구 부회장은 1996년 LG화학 전무, 1999~2007년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 2007~2010년 LG상사 대표이사 등을 맡았고, 현재는 (주)LG 부회장을 맡으면서 LG화학 등기이사에도 올라 있다.
그의 경력 때문에 LG화학, LG디스플레이, LG상사 중 한 곳을 분리해 독립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구 부회장은 LG전자에서도 오래 활동했지만 LG그룹의 핵심인 LG전자를 분리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LG그룹은 지주회사 체제가 명확해 최대주주 지분만 인수하면 쉽게 계열분리가 가능하다. LG상사와 LG화학의 최대주주는 (주)LG(각각 24.69%, 33.34% 보유), LG디스플레이의 최대주주는 LG전자(37.9%)다. 5일 종가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구 부회장이 최대주주의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선 LG상사는 2627억 원, LG화학은 8조 5547억 원, LG디스플레이는 3조 719억 원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LG화학과 LG디스플레이를 통째로 인수해 계열분리하기는 쉽지 않다.
ZKW도 거론되는 곳 중 하나다. ZKW는 오스트리아에 본사를 둔 자동차 헤드램프 전문 제조회사로, LG그룹이 지난 4월 1조 4440억 원에 인수했다. ZKW 인수는 구본준 부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 부회장은 지난 15일 여의도 트윈타워에서 열린 임원세미나에서 “ZKW 인수는 LG가 주력하는 자동차부품 사업의 시장 선도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LG그룹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눈에 띈 적이 많지 않아 ZKW 인수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LG전자가 VC(자동차부품) 사업본부를 신설한 것도 구 부회장이 LG전자 대표이사였던 2013년이다. 구 부회장이 자동차부품에 관심을 보여온 만큼 LG전자 VC 사업본부와 ZKW 등 자동차부품 관련 사업부와 법인을 독립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지난해 VC 사업본부의 매출은 3조 4891억 원으로 LG전자 전체 매출(61조 3963억 원)의 5.68% 수준이다.
재계 관계자는 “구 부회장은 오너경영인보다 전문경영인의 역할을 더 많이 한 사람”이라며 “도전을 좋아하는 그의 스타일상 기존에 정착한 사업을 가져와 LG그룹과의 안정적인 거래를 바탕으로 경영하는 것보다는, 좀 더 만들어갈 수 있는 사업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LG그룹 내부에서도 구 부회장의 독립 가능성은 높게 보지만 구체적인 말은 아끼고 있다. LG그룹 관계자는 “구 부회장이 어떤 계열사나 사업 부서를 분리해서 독립할지, 언제가 될지 등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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