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애플의 개발자 컨퍼런스인 WWDC가 끝난 뒤 든 첫 번째 생각은 ‘기다림’이었다. 앞으로 달려만 가던 기술과 뒤따르는 사람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기다림이다.
애플이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했던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새로운 기능들 소개였지만, 이전의 무엇인가를 뒤엎는 변화보다는 이미 자리 잡은 것들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가다듬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마치 현장의 개발자들에도 이용자들을 위해 조금 쉽게, 그리고 천천히 가자고 하는 것 같았다.
키노트에서 발표된 몇 가지 이야기들을 먼저 짚어보자. 애플에서 맥OS와 iOS를 이끄는 크레이그 페더리기 부사장이 iOS12를 소개하며 가장 처음 꺼낸 내용은 성능 최적화에 있었다. 하드웨어를 손대지 않고도 운영체제 업데이트만으로 4년 전 등장한 아이폰6플러스가 40%가량 빨라지게 됐다. 운영체제로 프로세서를 다루는 정책을 바꾸면서 필요할 때 딱 맞추어 제 성능을 내거나 적절히 저전력 모드로 넘어가기도 한다. 이를 통해 성능과 배터리 효율을 동시에 잡은 것은 꽤 놀라운 일이다.
애초 애플은 올해 발표할 새 운영체제에 새로운 기능보다 전체적으로 한번 가다듬고 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 첫 번째 요소가 바로 성능 개선이다. 구형 제품뿐 아니라 아이폰X도 부쩍 쾌적하다고 느낄 정도다.
iOS의 새로운 기능인 ‘스크린 타임(화면 시간)’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우리는 어느새 스마트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알림 메시지는 스마트폰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한다. 편리함만큼이나 잃는 무엇인가도 분명히 있다. 애플은 때에 따라 스마트폰을 쓰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습관에 집중했다.
새로운 기능이 아니라 원래 있던 ‘방해 금지’ 모드를 사람들의 기기 사용 습관을 중심으로 다시 해석한 것이다. 이 방해 금지 모드를 쉽게 쓰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를 끄지 않아서 스마트폰의 존재를 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을 미리 정해두거나 장소를 이동하면 자동으로 꺼지게 하는 기능 자체가 따라 붙어야 했다. 기능적인 기술이 습관에 대한 고민을 만나서 완전한 모습을 찾는 셈이다.
기기를 쓰는 습관에 대한 이해는 스크린 타임의 아이폰 사용 분석에서도 드러난다. 설정 앱의 한 항목인 이 스크린 타임은 기기를 몇 번이나 켰고, 몇 개의 알림 메시지를 확인했는지 꼼꼼하게 기록한다. 어떤 앱을 얼마나 오래 썼는지도 분석하고, 필요에 따라 특정 앱을 쓰는 시간을 제한할 수도 있다. 스스로의 스마트폰 몰입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의 경우 부모가 사용 습관을 관리할 수도 있다.
특별히 기능적인 요소가 더해진 것은 아니지만 이 기능 하나만으로도 분명 아이폰을 쓰는 습관에 변화라 일어날 수 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스마트폰 없이 생활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가 됐고, 그 몰입이나 의존이 스스로 문제라고 느끼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데이터로 보여주는 것은 분명 효과적이다.
애플워치의 워치OS5에는 움직임을 읽어 들여서 운동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면 운동 측정 앱을 실행하라고 알려주는 기능이 더해졌다. 정확한 운동량을 측정해주는 것이 운동 앱의 역할인데, 앱이 시작되지 않으면 운동량 역시 측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애플워치는 센서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읽고 있기에 이용자가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간단한 알림 메시지 하나로 이용자들의 습관이 달라진다.
워치OS5에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으로 ‘워키토키’, 즉 무전기 앱이 들어가 있다. 라디오 전파를 이용하는 무전기는 아니고 음성 기반의 메시지 전달 시스템일 뿐이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애플을 비롯한 웨어러블 기기 제조사들은 모두 손목 위의 작은 기기에 맞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찾았다.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문자 인식도 넣어봤다. 전화는 기본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것이 이 작은 기기의 커뮤니케이션과 어울렸을까? 그 어떤 것도 재미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그런데 아주 간단하게 버튼을 누르고 짧게 던지는 대화는 마치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처럼 간단하게 작동한다. 아직 출시 전이지만 이 워키토키는 처음으로 애플워치가 아이폰보다 더 편리하고 확실하게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 소개된 것들은 결코 어렵거나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돌아보면 우리의 삶을 바꾼 기술들은 아주 쉬운 데에서 시작했다. 스마트폰은 인터넷이나 음악,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에서 우리 손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성공한 앱이나 서비스들도 복잡한 기능이 아니라 아주 단순하되 꼭 필요한 한두 가지 요소들만으로 이뤄져 있다. 우리는 결코 어렵고 화려한 기술을 바라지 않는다. 적어도 손에 쥐어지는 제품으로는 말이다.
그런데 시장은 어떻게 움직여 왔을까? 기술은 항상 빠르게 진화해 왔다. 모바일과 스마트폰은 그 어떤 기술들보다 변화의 속도가 더 빨랐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사람들은 혁신에 즐거워했다. 하지만 사실 그 혁신이라는 것에 ‘내가 쓸 수 있다’는 전제는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기술은 여전히 같은 속도로 달려가는데, 사람들의 습관은 서서히 발걸음을 멈춰가게 됐다. 광고에 비치는 기술은 대부분 남의 일 같았고, 스마트폰으로 만들어내는 화려한 콘텐츠는 전문가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저 제품을 고르게 하는 미끼상품 같은 기술들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신기하지만 쓰지 않는 기능들이 늘어갔다. 대신 늘어나는 기능 때문에 운영체제는 더 무거워졌고 기기 제조사들은 이를 이유로 더 빠른 하드웨어를 내놓았으며 새 기기를 돋보이게 할 새로운 기능이 더해졌다. 이 악순환은 어느 한 고리를 손 댈 수 없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기술은 더 빨리 달려가는데 이용자들은 어느 순간 그 고리에서 내려버린 것이다.
결국 숨 가쁘게 달려가던 기술이 사람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작은 변화가 습관을 바꾸고 원래의 목표로 다시 이용자들을 이끌어가고 있다. 이는 비단 애플만의 일은 아니다.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의 개발자 컨퍼런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사람을 중심에 두고 있다.
연애가 그렇듯 기술도 이용자와 생태계가 서로 손뼉이 맞아야 굴러가게 마련이다. 작아 보이지만 사람에 대한 배려, 그러니까 발맞추어 걷기 위한 기다림이 돋보이는 순간이다. 새로움과 혁신에 대한 갈망은 모두의 눈을 가릴 뿐이다. 저만치 달려간 기술이 사람을 돌아봐야 하는 시기다. 복잡함과 화려함이 전부는 아니다. 좋은 노래 가사는 근사한 펜 끝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당장 손에 잡히는 새하얀 휴지에 담기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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