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바쁘고 귀찮다. 주말엔 아무것도 하기 싫다. 집에만 있고 싶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 법한 감정이다. 정기배송 스타트업이 꾸준히 생겨나는 이유다. 스타트업이 발달한 미국의 성장세는 더욱 무섭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2011년 5700만 달러(약 610억 원)였던 미국 정기배송 산업 시장이 2016년 26억 달러(2조 8000억 원)로 성장했다.
국내 시장도 날로 커지는 중이다. 정기배송 모델을 활용한 스타트업이 생겨나고 대기업은 스타트업 지분을 챙기거나 직접 시장에 뛰어든다. 아모레퍼시픽은 ‘화장품 정기배송’ 스타트업 ‘톤28’ 지분 4.8%를 2억 원에 사들였다. LG생활건강은 남성맞춤셔츠 전문 스타트업 스트라입스 지분 4.9%를 10억 원에 매입한 뒤 합작으로 ‘그루밍박스’ 정기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국야쿠르트는 지난 4월 간편식 정기배송 시작해 한 달여 만에 1만 고객을 확보하기도 했다. 한국야쿠르트 관계자는 “최근 5년간 국내 간편식 시장이 연평균 17% 성장하고 있다. 현재 정기배송 수요로 옮겨오는 중”이라고 분석했다.
정기배송은 면도날, 생리대, 음식, 화장품 등 일정한 주기로 소모되는 생필품을 배달해주는 ‘보급형’ 모델로 시작됐다. 매달 결제하는 번거로운 작업을 거치지 않아도 되고 매장 구매보다 싸게 제품을 받아볼 수 있어 매력으로 다가온다. 관리 받는 기분은 덤이다.
거대 유통망과 자본력을 바탕으로 가격 경쟁력을 지닌 대기업이 ‘보급형’ 시장을 장악해나갈 기미를 보이자 스타트업은 틈새를 노려 ‘기호형(큐레이션형)’ 모델을 들고 나와 인기다.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라기보다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줄 제품을 보낸다. 매달 제품을 바꿔 고객에게 ‘이번엔 뭘까?’라는 기대감을 준다. 당장 호응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인 기호 물품. 고객 만족도를 높여 오래 붙잡아두는 것이 관건이다.
# ‘취미를 보내드려요’ 하비인더박스
하비인더박스는 매달 ‘취미박스’를 보내준다. 핸드드립 커피키트, 과자 만들기 키트 등 평소 접하기 어려운 재료와 정보가 담긴다. 각 분야 전문가가 직접 구성하고 설명서도 첨부한다. 박스에 담길 취미는 한 달 전에 공지된다.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건 2016년 6월. 현재 정기 고객이 500명에 달하고 유사업체가 등장할 정도로 인기다. 지난해 매출은 1억 2000만 원, 올 1분기는 5000만 원을 기록했다.
조유진 하비인더박스 대표(28)는 “취미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은, 바쁘고 피곤한 일상에 매달 새로운 즐거움을 주고 싶어 시작했다”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호응이 좋다. 하지만 정기배송 취미가 숙제로 느껴질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소비자 간 커뮤니티를 만드는 등 소비자를 붙잡아둘 방법을 고민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 ‘오늘은 어떤 맥주?’ 벨루가
벨루가는 매달 두 번 네 종류 수제 맥주 8병을 안주와 함께 보낸다.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으며 지난해 5월에 오픈해 현재 고객 300명을 확보했다. 맥주 선호도는 남녀노소, 직업, 날씨, 기분에 따라 그때그때 바뀌기 때문에 개개인 만족도를 높이기가 쉽지 않지만 재구매율이 70%를 웃돈다.
김상민 벨루가 대표(27)는 “다음에는 어떤 맥주가 올까 하는 ‘블라인드성’을 극대화해 고객 이탈을 원천봉쇄하기 때문에 맥주를 선정하는 작업에 온 힘을 쏟고 있다”며 “어설프게 개인별로 맥주를 추천해 만족도를 떨어뜨리기보단 우리가 왜 이 맥주를 선택했는지, 맥주가 어떤 맛을 내고, 언제 먹으면 좋은지를 설명하는 글을 함께 보내 만족도를 높인다”고 답했다.
# 미혼모 공예품 정기배송, 크래프트링크
크래프트링크는 미혼모가 만든 팔찌나 컵홀더 등 공예품을 개별 판매하다가 지난 2월부터 정기배송을 시작했다. 별다른 광고를 하지 않았지만 서비스를 연 지 두 달 만에 정기 고객 200명이 생겼다. 고귀현 크래프트링크 대표(32)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도 만족도다. 천연비누나 향초 등 만족도 폭이 작은 제품을 위주로 시험 운영한다.
미혼모가 단순한 감사 인사가 아닌 제품을 만든 이유와 효능을 설명하는 편지를 함께 보내 정서적 만족도를 높인다는 특징도 있다. 고 대표는 “팔찌 같은 경우는 디자인에 따라 만족도가 크게 차이 나기도 하지만, 천연비누는 완성도가 보장되면 재료에 따른 만족도는 큰 변동이 없다”며 “정서적 만족도가 크면 이탈이 적은 것 같다. 호응이 좋아 본격적으로 홍보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경자 가톨릭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쇼핑에 드는 시간이나 인지적 요소를 제거해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정기배송 수요가 느는 것 같다”며 “랜덤박스라고 해도 개인 소비 성향과 전혀 동떨어진 제품이 오지 않고, ‘새로움’이라는 요소가 지불 가치를 가지는 최근 트렌드가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박현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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