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인공지능(AI)은 세계적인 버즈워드(Buzzword·유행어)다. 정부, 산업, 학문 등 어느 곳 하나 인공지능이란 키워드를 마케팅에 사용하지 않는 곳이 없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이란 말만 있다면 그것이 충분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때론 장밋빛 미래를 그리기도, 때론 인류 대재앙을 걱정하는 글을 쓰기도 한다.
이렇게 근거 없는 낭설이 난무하는 것은 우리 모두를 위해 좋지 않다. 그래서 오늘은 장밋빛 미래와 인류 대재앙을 널뛰는 인공지능 기사 홍수 속에서 우리가 흔들리지 않을 팁을 몇 가지 공유하고자 한다.
콘셉트 상 글이 매우 냉소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작성되었다는 것을 미리 밝힌다. 글 속의 부정적인 견해들은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하는 것이며, 실제 견실하게 인공지능 기술을 추구하는 주체들도 많다는 사실을 함께 밝혀둔다.
1. ‘진짜 인간 같은 로봇 소피아’는 사실 ‘진짜 인간에게 마케팅이 통하는 로봇 소피아’에 가깝다. 소피아가 시연하는 것들은 많은 부분 잘 만들어진 영화의 CG(컴퓨터그래픽)와 같다. 탄성을 자아내지만, 영화 속 CG가 곧 현실이 되지는 않는다.
2. 당연하게도 소피아의 성공을 모방한 로봇이나 인공지능들도 사람을 ‘현혹시키는 것’에만 몰두되어 있을 뿐, 그것이 곧 현실을 바꾸는 기술은 아닌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 속 좋은 CG를 만드는 것’이 꼭 실제 기술의 진보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영화 속 CG’를 실제 기술이라며 호도하지도 않아야 할 것이다.
3. 사실 ‘진짜 사람 같은’ 인공지능이나 로봇은 ‘진짜 사람이 장시간의 튜닝을 한’ 인공지능이나 로봇일 가능성이 높다. 주어진 시나리오를 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이 수동적으로 가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시연장에서 잘 작동하던 인공지능·로봇들을 실제 인간 세상에 갖다 놓는다면 아마 우리는 바보상자를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4. 수많은 기사가 ‘새로 나온 인공지능, OOO(직업)을 대체한다’며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지만, 아직까지 특정 직업군이 인공지능에 일자리를 뺏겨 파업투쟁을 벌인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물론 공장자동화가 많은 일자리를 없앴던 것처럼 인공지능 역시 미래에 그러한 노동시장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그 충격 역시 그와 비슷한 형태로 진행될 테니 너무 세상이 멸망할 것처럼 걱정할 필요는 없다.
5. ‘인공지능이 OOO도 할 수 있다’라는 이야기 역시 상상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요리하는 로봇’ 영상이 나온 지는 매우 오래되었지만, 우리는 그 어느 곳에서도 로봇이 알아서 요리하는 음식점을 보지 못했다. ‘OOO도 할 수 있다’라는 인공지능·로봇에 대한 평가는 그 실체를 본 후 해도 늦지 않다. 실제 영상을 통해 선보인 많은 기술이 세상에 얼굴도 내밀지 못한 채 사라진 경우가 허다하다. 영상은 대부분 기업의 투자를 모을 때 유용할 뿐이다.
6. 이러한 공상적 기사들 속에서 어떤 전문가라 불리는 교수나 유명인사가 한마디 거든다고 한들, 그 기사의 신빙성은 1도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왜냐하면 어차피 전문가의 인터뷰는 그 기사의 목적에 맞게 수집된 부가정보일 뿐이기 때문이다.
7. 감정, 사랑, 행복과 같이 추상적인 단어가 들어갈수록 그 기술은 실체와 멀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결과가 추상적이란 뜻은 연구하기는 어려운 반면 애매한 효과를 부풀리기는 매우 쉽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공지능 기술의 효과가 추상적인 인간의 감성을 이야기하는 순간 그것은 혹독한 검증을 거치기 전까진 객관적 사실과 멀 가능성이 높다.
8. 지금까지 너무 가혹하게 얘기하긴 했지만 사실 감성로봇과 같이 ‘인간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인공지능·로봇’이 매우 유망한 미래 기술이란 것엔 이견이 없다. 예를 들어 가장 성공한 로봇 중 하나인 로봇애완견 ‘아이보’는 사실 실질적인 기능이 없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로봇이지만 인간의 감성을 건드렸고 인간의 감정이입을 이끌어냈기에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따라서 인공지능 역시 정말 공감하는 척, 함께 슬퍼하는 척만 성공해도 큰 효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9. 이토록 미래가 밝은 시장일수록 더더욱 인공지능 키워드를 이용한 장밋빛 마케팅에 주의해야 한다. 기술을 부풀려 발표하고 희망을 팔아 반칙이 성공하는 풍토를 만들고 나면 사람들은 점점 진짜 기술보다 화려한 마케팅에만 몰두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희망과 꿈만을 팔던 인터넷 버블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바야흐로 인공지능 버블시대다. 따라서 더욱 주의해야 한다.
10. 상상을 자극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질적으로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진짜 기술’이다. 상상을 진짜 기술처럼 호도하고, 그렇게 호도하는 학자·기업이 잘나가는 세상을 만드는 건 미래 기술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11. 이러한 잘못 주체는 비단 학계·산업계에만 있지 않다. 무분별하게 공상을 써내는 언론도 공범이다. 일반 기사는 팩트체크에 그리도 심혈을 기울이면서 유독 과학기술 기사에는 이렇게 근거 확인에 게으른 언론의 행태는 또 하나의 과학 경시 풍조라고 생각한다. 언론도 과학기술 발전의 한 주체다. 언론이 진짜 기술을 근거에 기반해 보도하고, 이에 따른 정당한 명성과 투자가 과학기술인들에게 제대로 돌아갈 때 미래의 인공지능·로봇기술도 제대로 커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필자 엄태웅은 서울대학교 기계항공공학부에서 로봇을 전공한 후 LIG Nex1과 KIST에서 국방로봇과 의료로봇을 개발했다. 현재는 캐나다 워털루대학에서 헬스케어를 위한 딥러닝을 연구 중이다.
엄태웅 워털루대학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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