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이미 몇 해가 된 이야기이지만, 냉면 마니아들 사이에 여전히 ‘어렵다’고 회자되는 곳이 한 곳 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외진 골목에 있는 ‘무삼면옥’이다. MSG와 설탕, 색소 세 가지를 사용하지 않는 ‘3무’를 식당 이름에서부터 내세우는 냉면집이다.
아니 사실 냉면집이 아니다. 냉면과 막국수의 접경지역에서 태어난, 단지 메밀면과 고기 육수로 만든 국수 요리쯤 된다. 식당 벽면에 “가정자 마을식 메밀면을 이어가고 있다”는 문구가 걸려 있다. 가정자 마을이라니. 들어본 적도, 가본 적도 없는 마을이지만 분명 그 마을만의 방식이 있었을 것이다.
무삼면옥의 냉면은 이름은 분명 냉면이지만, 막상 맛을 보면 명성 높은 막국숫집들의 그것과 구분이 모호해진다. 분명한 것은, 냉면 벨트가 형성될 정도로 이토록 신흥 냉면집들이 속출하는 가운데에도 개성을 침범당한 적 없는 독보적인 음식이라는 점이다.
냉면 좀 먹는다고 하는 이들이 여전히 어렵다고 하는 데엔 그 본성의 여릿한 결이 이유가 된다. 한우 양지와 사태를 이용해 짜지 않은 육수를 뽑아낸다고 돼 있는데, 육수의 색이 한없이 투명이 가까운 것이 특징이다. 맛도 한없이 투명에 가깝다.
향 역시 그리 과장되게 진하지 않다. 명확히 다가오는 것은 진한 감칠맛. 고기보다는 표고버섯에서 유래한 감칠맛이다. 담담하게 하늘하늘한 버섯 향을 내는데 그것은 수묵화의 가장 옅은 농담을 연상하게 한다. 언젠가 배우 강동원 씨가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날아다니던 영화가 있었는데, 나는 무삼면옥의 육수에서 그 장면의 거의 투명하게 비치는 모시 옷깃을 떠올렸다. 비록 영화는 코믹 액션 판타지였지만 말이다.
냉면집이니 메밀에 자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봉평에서 국내산 메밀을 바로 받는데, 메밀가루 상자에 오는지라 이따금 오해를 사기는 하지만 통메밀을 받아 가게 입구에 떡하니 놓여 있는 제분기로 그때그때 제분한다. 주문을 하면 한 세월이 걸리는 것도 이 식당의 큰 특징인데, 반죽한 면을 마치 일본의 소바 장인처럼 조심스레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자 그래서, 맛이 어떤가 하면, 맛있다. 강한 맛을 좋아한다면 무미하게 느껴지거나, 그래서 입맛에 맞지 않을지는 몰라도, 집중해서 먹어보면 맛이 다채롭다. 100% 메밀면은 투박한 메밀향을 잘 품고 있고, 식당에서 권하는 대로 테이블에 놓인 간장으로 간을 보태 그 면을 육수와 함께 후루룩 마셔 보면 무삼면옥의 가녀린 냉면이 지향하는 바를 어느 순간 알게 된다. 세련된 서생이 흐린 먹으로 그린 것 같은 담담한 풍경과 통하는 그런 맛이다. 반찬으로 딸려 나오는 무 초절임마저도 비 오는 날의 수채화, 아니 수묵화 같다.
하지만 내가 이 집에서 언제나 그리워하는 메뉴는 단연 간장비빔냉면이다. 김 없이 간장과 들기름, 육수 낸 소고기, 목이버섯과 표고버섯, 통깨 고명에 달고 시원한 배, 메밀면만으로 끝인 단순한 음식이다. 고소한 듯 달달한 듯 담백한 들기름 향에 복합적인 향을 품은 특제 간장이 어우러져, 내가 그 흐린 풍경의 일부가 되는 것 같은 맛이다. 많은 이들이 뭇 평양냉면을 두고 말하는 ‘슴슴함’의 진정한 현현인 육수는 한 대접 딸려 나오므로 물냉면을 먹을까 간장비빔냉면을 먹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나저나 무삼면옥엔 정말이지 이상한 면모가 있다. 항상 정체불명의 올드팝 플레이리스트나 모창 가수의 어설픈 노래가 흐른다는 것. 그 소리를 들으며 가녀린 냉면을 마시는 정경이라니 기묘하지 않은가. 무삼면옥의 기념사진 같은 장면이긴 한데, 대체 왜 언제나 그런 노래만 틀고 계신 걸까. 무척 궁금했지만 왠지 물어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필자 이해림은? 패션 잡지 피처 에디터로 오래 일하다 탐식 적성을 살려 전업했다. 2015년부터 전업 푸드 라이터로 ‘한국일보’ 등 각종 매체에 글을 싣고 있다. 몇 권의 책을 준비 중이며, ‘수요미식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도 먹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고 있으며, 크고 작은 음식 관련 행사, 콘텐츠 기획과 강연도 부지런히 하고 있다. 퇴근 후에는 먹으면서 먹는 얘기하는 먹보들과의 술자리를 즐긴다.
이해림 푸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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