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미국 래퍼 차일디시 감비노(Childish Gambino)의 신곡이 빌보드 1위로 차트에 등장했습니다. 그의 첫 1위입니다. 이 음악은 지금껏 차트 정상을 지키고 있습니다. 래퍼보다는 배우로 더 유명했던 그가 어떻게 이렇게 급작스럽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차일디시 감비노의 신곡 ‘디스 이즈 아메리카’.
차일디시 감비노의 본명은 도널드 글로버(Donald Glover)입니다. 원래 그의 전공은 극작이었습니다. 대학생 시절 직접 쓴 ‘심슨 가족’ 대본을 프로듀서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미드 ‘30록(30 Rock)’을 제작한 코미디언 티나 페인은 깊은 인상을 받아 그를 30록의 작가로 고용했습니다. 이후 그는 30록 작가로 3년간 일하고, 코미디 그룹에 들어가 함께 콩트를 유튜브에 올리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합니다.
시트콤 ‘커뮤니티’에서 연기한 풋볼선수 출신 ‘범생이’인 ‘트로이 반스’로 도널드는 스타덤에 오릅니다. 이후 직접 제작, 연출, 각본, 주연을 맡은 드라마 ‘애틀랜타’를 통해 에미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연기자가 되지요. 여기서 도널드는 래퍼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상업적 성과와 비평 모두에서 큰 성공을 거둡니다.
도널드 글로버는 차근차근 연기 경력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최근 스타워즈 신작인 ‘한 솔로: 스토리’에서 란도의 젊은 시절을 연기했습니다. 다음 작품으로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실사화 프로젝트 ‘라이언 킹’의 주인공, 심바 역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현재 가장 성공적인 흑인 배우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셈입니다.
그에게는 또 하나의 숨겨진 열정이 있었습니다. 음악입니다. 대학생 시절부터 도널드는 믹스테이프를 만들 정도로 힙합에 빠져 있었습니다. 시트콤 ‘커뮤니티’와 계약을 해지할 때 ‘랩 하려고 연기를 피한다’라는 악성 소문이 돌 정도였지요. 성공한 배우로 바쁘게 사는 와중에 그는 힙합 정규앨범 2장, 알앤비 정규 앨범 1장, 그리고 수많은 믹스테이프를 발표했습니다. 투어 공연도 4번 했습니다.
그는 뮤지션으로 작업할 때는 다른 이름을 씁니다. ‘차일디시 감비노’라는 이름입니다. 힙합계의 전설 ‘우탱클랜’과 비슷한 느낌의, 이름을 정해주는 인터넷 서비스 ‘우탱 클랜 제너레이터’를 통해 만든 이름이었습니다.
지난 5월 5일 도널드는 인기 예능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 호스트 겸 가수 게스트로 출연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신곡을 선보였습니다. ‘디스 이즈 아메리카(This Is America)’였습니다.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서 처음 선보인 차일디시 감비노의 ‘디스 이즈 아메리카’.
곡 자체보다 더 큰 화제가 된 건 뮤직비디오였습니다. 이 곡에서 차일디시 감비노는 기타 연주자를 총으로 쏴버립니다. 음악도 평화로운 아프리카 음악에서 거친 트랩 힙합 음악으로 바뀌죠. 2절에서는 흑인 영가를 부르는 흑인 합창단을 기관총으로 쏴버립니다.
자극적인 총기 난사 신(scene)으로 음악은 양분됩니다. 부드러운 전통 흑인 음악과 거친 최신 힙합 음악이 바로 그렇죠. 전통 흑인 음악이 흘러나올 때는 화면도 정적입니다. 거친 힙합 음악이 나올 때는 원테이크로 카메라가 차일디시 감비노와 댄서가 최근에 인터넷으로 유행하는 춤을 우스꽝스럽게 추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춤을 주는 감비노 바깥에는 총을 쏘고, 서로 쫓고 쫓기는 아비규환이 펼쳐집니다. 마지막에는 차일디시 감비노가 성난 대중을 향해 도망치며 뮤직비디오는 마칩니다.
디스 이즈 아메리카는 음악보다 영상으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음악도 물론 현대 미국사회의 인종차별을 고발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영상이 훨씬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총으로 사람을 쏴버리는 충격적인 시작, 그리고 총성과 함께 바뀌는 음악. 이 연출에는 평화롭게 아프리카에서 살던 흑인들이 노예제와, 미국 사회의 시스템적 차별의 결과로 서로가 죽고 죽이는 폭력적인 문화로 변해버렸다는 분노가 담겨 있습니다.
뮤직비디오에는 인종차별 시대 흑인을 상징하는 광대 짐 크로부터 흑인 교회 총기난사 사건까지, 수많은 문화적 콘텍스트가 담겨 있습니다. 마치 이동진 영화 평론가가 영화를 해석하듯이 이 영화 속의 상징을 다루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 상징들이 뜻하는 의미 또한 명확합니다. 트럼프 미국은 여전히 인종 차별이 심각하다는 거지요.
디스 이즈 아메리카가 중요한 이유는 제작 방식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메시지 자체는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 차일디시 감비노의 가사와 음악은 확실히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나 커먼(Common) 등 동시대에 사회적인 메시지를 다루는 래퍼에 비하면 부족해 보입니다. 랩에만 전념한 사람이 아니기에 느껴지는 한계겠지요.
대신 차일디시 감비노는 자신의 ‘다재다능함’을 무기로 삼았습니다. 배우, 작가, 연출, 그리고 제작까지 도맡을 수 있는 경험과 기술 말이죠. 덕분에 그는 그 어떤 래퍼보다 주도적으로 자기 뮤직비디오를 꾸밀 수 있었습니다. ‘디스 이즈 아메리카’의 영상 크루는 드라마 ‘애틀랜타’ 때부터 함께한 친구들입니다. 누구보다 차일디시 감비노를 잘 이해할 수 있었겠죠.
차일디시 감비노 본인은 배우로서 뛰어난 안무와 연기력을 보여줍니다. 각본과 연출 경험도 있기에 뮤직비디오도 누구보다 더 자기 주도적으로 제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다재다능한 재능을 통해 구체적 비전을 전달한 게 뮤직비디오가 성공한 요인이 아닐까 합니다.
언어가 다른 케이팝(K-pop)이 성공한 이유는 음악과 안무가 합쳐진 무대의 매력이 언어를 뛰어넘었기 때문입니다. 차일디시 감비노는 거꾸로입니다. 영어로 전 세계인이 이해하는 가사로 전달할 수 있는 ‘문화적 충격’ 그리고 세계인이 공감하는 구체적인 ‘사회 문제’를 전달합니다. 춤과 노래, 랩뿐만 아니라 각본과 연출 능력까지 동원해서 완성도 높은 뮤직비디오로 완성했죠.
다재다능함으로 만든 현 미국 사회의 슬픈 자화상, 디스 이즈 아메리카였습니다.
김은우 NHN에듀 콘텐츠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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