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004년 7월이었다. 사법시험 2차를 보고 12월 발표 전까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신림동(현 대학동) 고시촌 인근에 있는 식당에서 하루 4시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 식당 아르바이트는 시급도 시간당 3500~4000원으로 괜찮았고 하루 세 끼도 주며 남는 시간에 공부할 수도 있어 비교적 만족스러운 일자리였다.
몇 달 일하다보니 식당 아주머니들과도 친해졌다. 그런데 어느 날 조선족 아주머니와 음식쓰레기를 같이 버리면서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던 중, 우리나라 아주머니와 조선족 아주머니의 월급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분명히 하는 일은 비슷했지만 월급 차이는 상당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 아주머니가 더 받는 것을 특별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조선족 아주머니는 수시로 교체됐지만 우리나라 아주머니는 변함없이 근무했으니까.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권이 대폭 강화된 헌법개정안을 공개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규정은 ‘국가는 동일한 가치의 노동에 대해서는 동일한 수준의 임금이 지급되도록 노력해야 한다’였다. 이에 재계는 우회적으로 반발했고, 학계에서는 시장경제 질서에 반하는 규정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이미 남녀고용평등법에 있다. ‘제8조(임금) ①사업주는 동일한 사업 내의 동일 가치 노동에 대하여는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
비정규직법이라 불리는 기간제법과 파견법에는 차별적 처우 금지 규정이 있다. 예컨대 기간제법 제8조 1항은 ‘사용자는 기간제 근로자임을 이유로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에 비하여 차별적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해 일용직, 계약직, 아르바이트 등 다양한 형태로 근무하는 기간제 근로자들이 정규직에 비해 임금, 정기상여금, 그 밖에 근로조건 및 복리후생 등에 관한 사항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리하게 처우하는 것을 금지한다.
외관상으로만 보면 이미 현행 개별법제에서 우리 사회 상대적으로 약자라 할 수 있는 여성과 비정규직 근로자 등에 대해, 특히 임금에 차별받지 않게 되어 있음에도 문 대통령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최고 규범인 헌법에 명문화하려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는 제도와 다른 현실 때문이다. 즉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더라도 임금 등에서 차별대우를 받아온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보자.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성별에 따른 임금격차가 36.7%로 가장 크다. 지난 23일 여성단체들은 ‘임금차별은 불법이다’는 슬로건을 걸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보장을 촉구하는 ‘페이미투(#PayMeToo)’ 운동에 나선다고 밝혔다.
비정규직도 형편은 비슷하다. 지난해 11월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는 654만 2000명으로 전년 대비 9만 8000명(1.5%) 증가했고, 전체 근로자 중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율은 32.9%에 달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07년에는 비정규직의 월 임금 총액이 정규직의 48.5% 수준이었으나 2017년에는 44.8%로 낮아졌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비정규직은 증가하는데 임금은 정규직에 비해 더 낮아진 셈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헌법에 실제로 명문화되기는 현재로선 쉽지 않아 보인다. 개별 사업장마다 사정이 다른 만큼 반드시 바람직하다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불합리한 차별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특히 임금과 같은 기본적인 근로조건에 차별을 두는 것은 사회 양극화의 주된 원인이다.
보수적인 일본 아베 정부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대우 차이를 없애기 위해 지난해 ‘동일노동·동일임금 기준’을 발표했다. 올 4월에는 이런 내용을 포함한 개혁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법제화도 추진 중이다.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도 2016년 4·13 총선 공약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들고 나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를 줄이겠다고 했다.
여성·비정규직이 남성·정규직과 같은 시간에 같은 성과를 내면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 이것은 진보·보수 문제가 아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도 기꺼이 동참해야 한다.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공정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첫 단추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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