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문재인 정부 경제팀이 최근 최저임금 인상 문제를 둘러싸고 내부 분란을 일으키면서 시장의 우려를 낳고 있다. 경제계에서는 최근 사태는 문재인 정부 초기 경기 부진과 일자리 사정 악화로 수세에 몰려있던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준말=교수 등 외부출신 관료)과 ‘학현학파’가 저소득층 소득 악화를 계기로 ‘늘공’(늘상 공무원의 준말=직업 공무원)과 ‘서강학파’에 대한 반격에 나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굉장히 이질적인 배경을 가진 이들로 경제팀을 꾸렸다. 청와대 경제팀은 분배를 중요시하는 학현학파 교수들과 참여연대 출신 진보 성향 교수들로 채웠다. 학현학파는 분배경제학을 가르쳤던 변형윤 서울대 교수의 제자들을 일컫는다.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 출신인 홍장표 경제수석이 대표적인 학현학파다. 홍 수석은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소득 성장정책의 이론적 바탕을 제공한 인물이다. 대기업 개혁과 분배를 강조하는 참여연대 출신으로는 장하성 정책실장이 대표 인물이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경제학의 주류로 불리는 서강학파와 전통적인 관료 출신을 외곽조직과 경제부처의 장에 임명했다. 남덕우 서강대 교수가 박정희 정권 당시 재무장관에 임명되면서 시작된 서강학파는 1970~1980년대 한국의 고도성장을 이끌어왔던 학파다. 문재인 정부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의장은 대통령)을 맡고 있는 김광두 서강대 교수가 현재 대표적인 서강학파다. 한국 거시경제 정책을 책임진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통적인 관료다. 서강학파와 관료들은 선택과 집중을 통한 경제성장을 선호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에는 장하성 실장과 홍장표 수석을 중심으로 한 어공과 학현학파가 힘을 발휘했다. 소득주도 성장을 앞에 내세우고 최저임금 인상 등을 추진한 것은 물론 공정거래위원장과 금융위원장에도 장하성 실장 인맥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경기 부진과 고용 악화로 지난해 11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경제정책의 주도권은 분배보다 성장을 중시하는 서강학파와 늘공 쪽으로 넘어왔다.
특히 김동연 부총리에게 힘이 급격히 쏠렸다. 김동연 부총리는 인사청문회는 물론 국회 보고에서도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대신 ‘사람 중심 경제’라는 말을 사용한다. 김동연 부총리는 또 ‘혁신성장’을 내세우며 기업에 무게를 둔 정책을 폈다. 김동연 부총리는 올 1월부터 문재인 대통령에게 월례보고를 하는 등 명실공히 경제 컨트롤타워로 활동했다.
반면 문 대통령 취임 후 1년여 동안 장하성 정책실장이 이끄는 정책실의 단독보고는 단 5차례에 불과했다. 장하성 실장의 힘이 빠진 모습은 문재인 정부 출범 1주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들과 함께 출입기자들이 모인 춘추관을 찾았을 때 다시 한 번 드러났다. 당시 기자들 중 장하성 정책실장에게 질문을 던지는 이가 없었다.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장하성 정책실장은 사무실에 돌아온 뒤 매우 섭섭해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기류가 올 1분기 소득지표에서 상위 20% 소득이 1년 전보다 9.3% 늘어난 반면 하위 20% 소득은 8.0%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면서 다시 급변하고 있다. 자칫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의 핵심인 소득주도 성장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장하성 실장 쪽으로 무게 중심이 급격하게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5월 29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 가계소득동향 점검회의 후 “앞으로 장하성 정책실장이 주도해 관련 부처 장관들과 함께 경제 전반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회의를 계속 개최해 나가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청와대는 ‘김동연 패싱’ 등 컨트롤타워 논란이 일자 뒤늦게 ‘장하성 정책실장이 주도하여’라는 대목을 ‘장하성 정책실장과 관련 부처 장관들이 함께’로 바꾸며 진화에 나섰지만 본심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경제계 관계자는 “최근 일자리와 소득분배가 악화된 것이 최저임금 인상 탓이라는 지적에 청와대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 국회에 출석해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과 임금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한 김동연 부총리보다는 고위당정청협의회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감소는 없었다’고 주장한 장하성 정책실장이 역시 낫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어공과 한혁학파가 장하성 정책실장을 앞세워 다시금 세력 찾기에 나선만큼 당분간 문재인 경제팀 내 분란은 지속될 듯하다”고 전망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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