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동생인 고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은 1953년부터 1969년까지 현대건설 부사장을 지내면서 1962년 현대양행을 설립했다. 정인영 회장은 1969년 현대건설 사장으로 취임했지만 7년 만인 1976년 현대건설을 그만두고 현대양행 경영에 직접 참여해 한라건설, 한라자원, 만도기계, 인천조선, 한라시멘트, 한라자원 등의 회사를 세우면서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1980년 정권이 바뀌면서 전두환 정부의 정책에 따라 한라그룹의 주력 사업이던 중공업을 정부에 강제로 빼앗기다시피 하여 사세가 위축되고 말았다. 하지만 자동차부품업체 만도기계를 비롯해 한라건설, 한라해운, 한라자원, 한라펄프제지, 한라개발 등이 점차 성장하면서 한라그룹은 재계 서열 12위의 대기업으로 올라섰다.
정 명예회장은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닥치자 한라중공업, 한라시멘트, 만도기계 등의 계열사를 매각하고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이후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2008년 만도기계를 다시 인수해 대기업의 위상을 되찾았다.
한라홀딩스를 지주회사로 지배구조를 바꾼 한라그룹은 정 명예회장의 아들인 정몽원 회장이 현재 이끌고 있으며, 국내외에 60개가 넘는 계열사를 두었다. 한라그룹 본사 사옥은 송파구 잠실에 있는 잠실시그마타워인데, 이번 시간에는 한라그룹 사옥을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잠실’은 조선시대 초기 양잠을 장려하기 위해 각 고을에 설치된 잠실도회(䘉室都會)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시대에는 뽕나무를 키워 누에를 치고 비단을 짜내는 일이 중요한 사업이었는데, 세종대왕은 다른 고을에 설치된 잠실도회는 민가에 맡기고 잠실에 설치된 잠실도회는 나라에서 직접 운영하게 했다. 서울의 안산인 남산(목멱산)의 모양이 누에를 닮았다고 하여 남산의 봉우리를 ‘잠두봉’이라 이름 짓고, 누에의 머리가 향하는 잠실에 뽕나무밭(桑田)을 조성했다는 얘기도 전한다.
뽕나무밭이었던 잠실의 모래땅은 일제강점기 이후 채소밭이 일궈졌다. 1960년대까지는 잠실에 부리도(浮里島)라는 이름의 섬이 하나 있었으나, 1971년 부리도와 육지가 연결되면서 지금의 석촌호수가 생겼다. 강남이 개발된 이후 잠실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뽕나무밭에서 아파트단지로 바뀐 잠실은 한마디로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뜻으로 세상이 몰라볼 정도로 변함을 비유한 말)라 표현할 수 있다.
한라그룹의 본사는 잠실시그마타워인데, 이 일대의 옛 지도를 살펴보면 과거 아차산에서 광장동과 자양동으로 이어지는 땅이었으나, 지금은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을 거쳐 천마산으로 이어지게 바뀌었다. 인위적으로 달라진 땅이라 해도 본래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기 때문에 이곳의 지기는 한남정맥의 기운을 받는 강남의 다른 곳과 달리 한북정맥의 기운이 바탕에 흐른다고 본다.
한강 물에 의해 퇴적된 흙과 모래로 형성된 잠실은 산의 기운에 기댄 일반적인 양택지의 기운과는 전혀 다른 기운이 형성된다. 이렇게 바다나 큰 강을 끼고 발달하는 도시의 특징을 풍수적 용어로는 행주형(行舟形·배 형상의 지형지세를 뜻함)이라고 하여, 재물이 풍성하다고 본다. 행주형에는 백화점과 같은 유통회사나 호텔, 증권사, 은행 등이 번성하는 자리다. 서울의 대표적인 행주형이 바로 여의도이며, 행주형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 기업은 롯데그룹이라 할 수 있다.
한라그룹의 주력 사업은 건설과 기계라서 행주형인 잠실과는 궁합이 맞지 않다. 땅의 기운과 주력 사업의 기운이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시그마타워 앞에 새로 세워진 롯데월드타워가 너무 높다. 다행히 롯데월드타워가 시그마타워의 정면을 비껴 건설됐기 때문에 당장은 피해가 없겠으나, 점차 큰 빌딩의 기운에 눌려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라그룹이 경쟁력을 상실하고, 외압으로 인한 예기치 못한 경영의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발생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행인 것은 한라그룹의 주력인 만도의 본사가 다른 곳에 있어 잠실 땅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풍수적 관점에서 볼 때 한라그룹은 시그마타워가 있는 잠실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본사를 이전하는 게 좋다.
신석우 풍수지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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