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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P 금융'은 어쩌다 핀테크 대표주자에서 부실채권으로 전락했나

갈수록 커지는 연체율에 투자자 전전긍긍…잇단 부도 사태에 규제 목소리 커져

2018.05.31(Thu) 16:33:30

[비즈한국] 수년 전부터 핀테크 붐을 타고 우후죽순 생겨난 ‘P2P 금융’​에 최근 우려와 불신이 쏟아지고 있다. 투자자들 사이에선 “한마디로 난장판”이라는 격앙된 말까지 나온다. 이자와 원금 연체 규모가 급격히 불어나면서 고소 고발이 잇따르는가 하면, 업체 간 갈등도 갈수록 커진다. 최근 금융당국이 P2P 대출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주의를 당부했지만, 이제는 실효성 있는 특단을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직장인 허 아무개 씨(38)는 최근 한 P2P 업체를 상대로 고소를 준비 중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5명의 투자자들과 함께다. 이들은 지난해 연 18.6%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홍보하는 P2P 업체 광고를 보고 투자를 했다. 다른 업체와 비교해 누적대출액도 많은 편이었고, 상품도 제법 다양한 편이라 별다른 의심 없이 투자했다는 게 허 씨와 투자자들의 설명이다. 그런데 투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업체 연체율이 급격히 높아졌다. 

 

허 씨는 “투자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니, P2P 업체가 1년 단위로 돈을 대출해주고 투자자들에겐 2~3개월 단위로 투자금을 모아 ‘돌려막기’를 한 정황이 발견됐다. 나중에 들어온 투자자 돈으로 직전 투자자의 원금을 돌려주는 방식이었다. 투자자가 줄면서 연체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업체 쪽에선 확인해보겠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수익은 이제 생각도 하지 않는다. 투자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다른 투자자들과 함께 고소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업계3위까지 올라섰던 P2P 업체 펀듀는 최근까지 연체율이 90%에 달했다. 신규 투자자를 모집해 기존 투자자 원금을 상환하다가 자금줄이 막히자 회사 대표가 사업장을 폐쇄하고 잠적했다. 피해액은 216억 원이다. 사진=펀듀

 

# 수익은커녕 원금 회수도 ‘감지덕지’

 

P2P(Peer to Peer) 금융은 ‘핀테크’를 설명할 때 꼭 따라다니는 단어다. 말 그대로 금융사를 거치지 않고 이뤄지는 개인 간 금융거래 모델이다. 중개역할을 하는 P2P 업체가 개설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기업이나 개인이 직접 돈을 빌려주고 빌리는 방식으로 금전거래가 이뤄진다. 대출을 신청 받은 업체는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돈을 모아 빌려주고 투자자들에게 이자를 지급한다.

 

2006년 국내에 처음 등장한 P2P 대출은 2015년부터 핀테크 바람을 타고 대출액이 급격하게 늘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P2P 누적대출액은 2조 3000억 원을 기록했다. 2015년 370억 원 규모에서 순식간에 60배 이상 불어난 셈이다. 연 20~30%대 이자를 받는 제2금융권보다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리려는 차입자들과 오랜 기간 이어진 저금리로 다른 투자처를 찾던 투자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최근에는 중금리로 대출 갈아타기(대환) 방식으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P2P 금융 시장에서 허 씨와 비슷한 사례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비즈한국’이 만났거나 이메일을 주고받은 P2P 금융 관련 제보자들은 대부분 허 씨와 같이 자신이 투자한 P2P 업체의 연체율이 심각한 수준이며, 원금 보장도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P2P 업체를 상대로 고소·고발을 진행 중이거나 준비 중이다. 

 

그 중에서도 부동산 상품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가장 많았다. 현재 P2P 금융 시장에서 부동산 PF(건축자금대출) ​상품은 전체 상품 중 독보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문제는 일부 P2P 업체들이 부동산 PF 상품의 사업성을 검토할 때 명확한 담보도 없이 미래 수익성만 보고 대출 여부를 결정한다는 점이다.

 

과거 부동산 PF로 도미노 부실을 겪은 저축은행은 자기자본 비율이 최소 20%가 돼야 대출을 할 수 있지만, P2P 금융에는 이러한 규제가 없다. 위험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다른 투자자들이 진행 중인 고발 내용을 보면, A 건설사는 지난해 초 한 P2P 업체로부터 대출을 받았지만 최근까지 공사를 시작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투자자 B 씨는 “당연히 투자에는 손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건은 처음부터 대출이 부적절하게 승인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그 밖에 P2P 업체들이 부동산 PF 상품을 만들고 수개월이 지나서야 공사가 취소됐다고 알리는 등 심사나 관리가 부실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최근에는 이러한 내용이 담긴 청와대 청원도 등장했다.

 

투자자들이 원금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현행법상 P2P 업체는 정식 금융회사가 아니기에 투자자 보호 장치가 없다. 즉 P2P 상품 자체가 원금보장이 되지 않는 투자 상품이다. 앞서의 의혹을 받는 업체들이 연체율이 높더라도, 투자자 모집 방식과 절차에 문제가 없었다면 손실에 대한 부담은 온전히 투자자들의 몫이라는 게 금융당국과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P2P 업체 관계자는 “연체율이 높은데도 의도적으로 낮춰 투자자를 모집했다면 업체에 문제가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원금 보장이 안 되는 상품인 만큼 손실은 투자자가 부담해야 한다. 다만 그동안 연체율과 부실률이 높았던 업체는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퇴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도 “P2P 업체가 취급한 상품을 자세히 봐야 알 수 있지만, 투자모집 과정에서 내용을 사전 고지하고 절차를 지켰다면 책임을 돌릴 순 없다”고 말했다.

 

부동산 PF 전문 P2P 업체 헤라펀딩은 투자금 상환 날짜를 미루다 135억 원에 달하는 대출 잔액을 남긴 채 지난 5월 24일 부도를 냈다. 사진=헤라펀딩


# 부실율 6.4%에 달해…관련 규제는 국회 표류

 

금감원은 지난 3월부터 두 달 동안 P2P 업체와 연계된 대부업체 75곳을 대상으로 실태를 조사했다. 아직까지 금감원이 P2P 업체를 규제할 근거가 없어 업체의 자회사인 대부업체가 현장 점검 대상에 올랐다. 금감원에 따르면 75개사의 평균 부실율(90일 이상)은 6.4%, 연체율은 2.8%를 기록했다. 특히 이들이 취급하는 부동산 PF 대출 상품 비중은 66%인데, 부실율과 연체율은 각각 12.3%​, 5%에 달했다.

 

위험도가 높고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금융당국에서 직접적으로 제재할 권한은 없다. 금융위원회가 ‘P2P 대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개인 1인당 투자 한도를 업체당 2000만 원(부동산 PF 대출은 1000만 원)으로 제한했지만, 권고사항일 뿐이다.

 

지난해부터 국회에서는 P2P 금융과 관련된 법안들이 발의되고 있다. 대부분 P2P 업체들이 요건을 갖춰 금융위에 등록하도록 하고 거래구조 대출 잔액, 연체율 등 업자들의 정보를 공개해 투명성을 높이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P2P 업체들이 자율규제 등 나름의 자정활동을 벌였지만 최근엔 이마저도 지지부진하다. 일부 업체들이 만들어 운영 중이던 한국P2P금융협회가 운영 방향 등에 대한 의견 차이로 인해 둘로 갈라졌다. 부동산 대출 중심의 P2P 업체들과 개인 대출 중심의 업체들 간 갈등이 배경으로 꼽힌다. 부동산 PF를 취급하지 않는 업계 상위 업체들이 기존 협회에서 탈퇴해 새 협회 구성을 준비 중이다. 

 

결국 당장은 투자자들이 스스로 주의를 기울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다른 P2P 업체 대표는 “수익률이 높은 상품이 매력적일 순 있지만 투자하기 전엔 위험요소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부실 보상 자금을 마련해 보전한다는 업체도 있지만 일부 상품에 한정된 경우가 대부분이고 손실 보전금액도 높지 않다”며 “과대광고나 과다한 이벤트 등을 하는 업체는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협회나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평판을 확인해보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부동산이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담보나 신용도가 확실하다면 은행 등 금융회사에서 대출 받는 게 일반적이다. P2P 투자를 할 땐 이를 각별하게 고려해야 한다”며 “꼭 투자를 해야 한다면 여러 상품에 소액으로 나눠 투자하는 게 위험도를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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