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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삽질 될라' 은행권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딜레마

올해 퇴직, 채용 규모 확대하지만 고질적 인력 구조 문제 못 고쳐 속앓이

2018.05.30(Wed) 14:50:25

[비즈한국] 은행권 인력 구조조정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정부가 은행들에게 희망퇴직과 신규 채용을 동시에 확대하라고 권고하면서부터다. 현 정부 일자리 정책인 청년 채용을 늘리고 그간 은행권 고질병으로 꼽혀온 인력구조 정체도 해소할 복안이지만, 현실적인 측면에서 따져보면 셈법이 복잡하다는 게 은행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사실상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에 불과해 반쪽짜리 구조조정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왜 그런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은행권 신규 채용이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된다. 최근 4대 시중은행의 신규 채용은 2300여 명 수준에 달한다. 4개 은행들은 지난해 1800여 명을 신규 채용했다. 

 

KB금융그룹은 모든 계열사에서 총 1000명을 신규​ 채용할 예정이다. KB국민은행만 600명이 계획돼 있다. 우리은행은 750명을 채용한다. 앞서 상반기 200명을 채용했고 하반기엔 550명을 뽑는다. 신한은행 신규 채용은 750명을 웃돌 전망이다. 지난 5월 15일부터 300명 규모의 상반기 공채를 진행 중이고 이후 450명 이상을 뽑는 하반기 공채를 계획 중이다. 상반기 채용을 하지 않은 KEB하나은행은 정확한 규모는 확정하지 못했지만 지난해 250명보다 많은 인원을 모집할 예정이다.

 

올해 대규모 신입 채용과 희망퇴직을 계획 중인 은행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그래픽=이세윤 PD

 

# 은행권 대규모 인원 조정 배경은 정부 정책

 

일부 은행들은 올해 채용을 늘리면서 ‘디지털 뱅킹’이라는 금융 환경 변화에 따라 신규 인력 수요가 늘었다고 밝히지만 속내는 다르다는 게 은행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권의 이번 채용은 4차 산업혁명과 맞물려 새롭게 추진하거나 검토 중인 사업들이 많고, 중장기적으로도 추가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돼 선제적으로 늘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도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인터넷‧모바일뱅킹 등 비대면 채널이 활성화되고 지점도 통폐합하는 상황에서 신규 인력이 대규모로 필요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은행들이 채용을 늘리는 배경에는 정부의 주문이 있다. 불과 지난 5월 초까지만 해도 은행권 채용 비리 논란으로 신규 채용 및 희망퇴직 등 구체적 인력 구조조정은 안개 속에 갇혀 있었는데 정부 주문이 나온 직후 시중은행들이 대규모 신규 채용을 발표했다. 금융당국과 검찰 등의 은행권 채용 비리 조사는 지난해 10월부터 이어지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와 은행장 간담회 등에서 “금융당국이 은행들에 희망퇴직이나 채용 확대, 사회공헌 등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 은행들이 알아서 자발적으로 해달라”면서도 “은행들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규모로 희망퇴직을 진행해 효율적으로 인력 운영이 가능하도록 당국에서도 도울 것”이라고 밝히는 식으로 여러 차례 인력 구조조정을 주문했다.

 

은행들은 정부 메시지를 대규모 희망퇴직을 진행하는 만큼 그에 걸맞은 수준으로 새 인력을 뽑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금융위는 최근 희망퇴직이 많은 은행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신규 채용에도 방점이 찍혀 있다. 

 

금융위는 양적 성과 측면에서 △신규 고용수 △전체 고용수 증감 △명예퇴직의 신규고용율 및 연계율을 반영한다. 질적 지표에는 △유연근무 등 근로여건 △전직 지원 △비정규직의 부당한 차별해소를 포함한다. 이를 수행한 은행에는 경영평가 때 점수를 줄 계획이다.

 

#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

 

은행들 입장에선 정부의 희망퇴직 주문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대부분의 은행이 책임자급 직원이 많은 항아리형 인력구조여서다. 여기에 비대면 채널 확대, 지점통폐합 등으로 인력과 비용을 동시에 줄여야 하는데, 퇴직 문제인 만큼 쉽게 손대기도 어렵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매년 희망퇴직이 진행되긴 했지만 상당히 조심스러웠다”며 “이번엔 정부가 직접 나서서 퇴직금을 더 주고서라도 희망퇴직을 늘리라고 말하는 등 인력 구조조정을 해결하라고 한다. 그만큼 부담이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긍정적인 부분은 일부 경영 측면서만 적용될 뿐이다. 은행들의 셈법은 훨씬 복잡하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현실적인 측면을 따져보면 큰 효과가 없는 인력 조정이기 때문이다. 

 

4대 시중은행들에 따르면 희망퇴직 규모는 매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2016년 1500여 명, 2017년 4600여 명이다. 올해 희망퇴직 계획은 아직까지 우리은행만 잡았지만, 연말까지 대부분의 은행에서 대규모 희망퇴직이 이뤄질 전망이다. 

 

수년간 퇴직이 늘었는데도 책임자급 직원 비율은 그대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4개 시중은행의 일반직원 중 책임자급(3급 이상) 비율은 지난해 말 53.7%을 기록했다. 2016년 53.1%와 큰 차이가 없다. 

 

앞서의 시중은행 관계자는 “퇴직으로 생긴 빈자리는 행원급 직원을 책임자급으로 승진시키는 방식이 대부분”라며 “일부 은행은 희망퇴직 신청 조건을 완화해 젊은 직원들이 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일부 젊은 퇴직자는 희망퇴직을 전직할 수 있는 기회로 인식하기도 했다. 희망퇴직 규모를 늘린 만큼 ‘허리’가 비어버린 셈”이라고 분석했다. 

 

희망퇴직 규모를 신규 채용으로 채우는 것도 비현실적인 방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퇴직 규모가 크다고 해서 무작정 신입들로 그 자리를 채울 수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 일부 시중은행은 4~5년 동안 채용을 늘릴 계획도 세우고 있지만 은행권에서는 희망퇴직 규모에는 미치지 못할 것으로 추정한다. 

 

결국 이번 대규모 인원 조정으로도 고질적인 문제를 해소하기 어려운 상황. 이 때문에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다른 시중은행 임원은 “단순히 희망퇴직이나 신규 채용 숫자를 늘린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10명 내보내고 7명 뽑는 식이라 효율적인 인원 운영 방식도 아니다”라며 “​항아리형 인력구조가 고착될 수밖에 없는 방식인데, 정부 방침이든 은행 필요에 의해서든 시간을 두고 조정하기로 결정됐으니 이번엔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찾아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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