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증권회사의 애널리스트는 이른바 ‘자본시장의 꽃’으로 불릴 정도로 중요성을 인정받지만, 정작 개인 투자자들에게는 그렇게 신뢰를 받지 못하는 존재인 것 같다. 일단 한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2040개 종목 중에서 3명 이상의 애널리스트들이 커버하는, 다시 말해 애널리스트들이 정기적으로 분석 자료를 업데이트하는 종목은 350여 개에 불과하다.* 따라서 개인 투자자들로서는 “애널리스트들이 대형기업에만 관심을 보일 뿐, 중소형주를 외면한다”고 지적할 수밖에 없다.
애널리스트에 대한 또 다른 불만은 바로 ‘정확성’에 대한 것이다. 애널리스트들의 커버종목이 실적을 발표할 때마다 언론에서는 ‘어닝쇼크’라는 제목을 단 기사가 종종 발표되곤 한다. 여기서 어닝쇼크란, 애널리스트들이 제시한 이익 추정치의 평균값(‘컨센서스’)에 비해 실제 발표된 실적이 크게 부진할 때 쓰는 표현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상과 같은 ‘어닝쇼크’가 너무 자주 발생하는 데 있다. 필자가 한 경제신문에서 ‘어닝쇼크’라는 키워드로 기사를 검색하니, 올해에만 벌써 37건의 기사가 나왔을 정도다.
그럼 애널리스트의 전망치는 아예 믿으면 안 되는가?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강한 반론을 제기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로체스터대학 요한나 우 교수 등이 발표한 흥미로운 논문 “무엇이 슈퍼스타를 탄생시키는가?-베스트 애널리스트 랭킹이 보여주는 증거(2002)”이다.** 우 교수 등은 1991년부터 2000년까지의 ‘베스트 애널리스트’ 랭킹을 기초로, 베스트 애널리스트의 예측력이 상대적으로 우월할 뿐만 아니라 이들이 추천한 종목군의 수익률도 높다고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 주요 언론사에서 발표하는 ‘베스트 애널리스트’ 랭킹에 거론된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만 봐야겠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베스트 애널리스트의 보고서를 중점적으로 보는 것은 나쁜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효율적이고 흥미로운 방법이 있다고 한다.
최근 발간된 흥미로운 책 ‘개미가 이긴다’에서 곽병열 작가는 다음과 같이 3가지의 특징을 지니는 전문가의 분석 리포트를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 기존 컨센서스에서 전망치의 큰 변화를 가장 먼저 시도하는 전문가.
둘째, 오랜 경력을 통해 다양한 금융시장의 상황을 체험해본 전문가.
셋째, 꾸준한 자료의 업데이트를 시도하는 부지런한 전문가.
오래 애널리스트 경험을 쌓은 전문가답게, 곽병열 작가의 지적은 핵심을 찌른다. 더 구체적으로 각 항목을 살펴보자.
어떻게 애널리스트를 비롯한 전문가 그룹을 활용해야 하나? 표면적인 전망 수치라는 결과물보다는 어떤 포인트로 전망을 제시하는지 방법론과 그 과정을 이해한다면 도움이 된다. (중략)
첫째, 기존 컨센서스에서 전망치의 큰 변화를 가장 먼저 시도하는 전문가. 기존 컨센서스에 머물렀던 전문가가 전망치의 최대값이나 혹은 최소값으로 큰 변화를 시도했다면, 가장 먼저 펀더멘털 변화의 단서(clue)를 찾았을 가능성이 있다. –책 178쪽
매우 중요한 포인트라 할 수 있다. 다른 애널리스트에 비해 전망치가 아주 ‘다른’ 주장은 무언가 새로운 정보를 담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작정 ‘큰 변화를 시도한’ 보고서에 주목하기는 어려운 게, 보고서를 작성한 애널리스트의 실력이 부족해서 잘못된 판단을 내렸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의 두 번째 포인트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둘째, 오랜 경력을 통해 다양한 금융시장의 상황을 체험해 본 전문가. 역사는 반복되고, 구관이 명관인 경우가 다반사다. 금융시장의 전문가 그룹 역시 마찬가지다. 오랜 시간 금융시장에서 분석경력을 보유했다면 비교적 다양한 시장 상황에 대한 경험을 통해 폭넓은 시뮬레이션이 가능할 수 있다. 컨센서스의 방향성조차도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 그룹들은 미리 예측할 수도 있다. –책 178~179쪽
즉 오랫동안 분석 보고서를 내놓은 베테랑이면서 그가 ‘큰 변화를 시도한’ 보고서를 내놓는다면, 일단 주목할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조건에도 한 가지 흠이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자만심’을 가진 애널리스트의 경우에는 오히려 큰 위험을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높은 명성을 가진 애널리스트가 급격한 환경의 변화를 무시한 채, 과거의 데이터에 사로잡혀 독단적인 주장을 펼치는 경우에는 오히려 투자자들에게 큰 피해를 끼칠 수도 있다. 따라서 곽병열 작가는다음의세번째조건에주목할필요가있다고한다.
셋째, 꾸준한 자료의 업데이트를 시도하는 부지런한 전문가. 전망치의 변화는 크지 않지만, 빈번하게 시장 상황을 업데이트하는 전문가도 역시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큰 물줄기를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기 혹은 단기적으로는 물줄기가 여러 계곡과 때로는 폭포를 거치기 때문에 이러한 위기와 기회의 순간순간들을 어떻게 파악하여 대처할지에 대한 요령을 빨리빨리 알아두고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 책 179쪽
이 대목에서 필자도 많은 부분 반성하게 된다. 수십 페이지의 분석 보고서 한 편을 내놓은 다음, 시험을 끝낸 학생처럼 업데이트를 게을리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곽병열 작가의 기준에 부합하는 보고서가 쏟아지기를 희망하며, 필자도 좀 더 노력하겠다는 다짐으로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2017년 말 기준.
**Andrew J. Leone and Joanna Shuang Wu(2002), “What Does it Take to Become a Superstar? Evidence from Institutional Investor Rankings of Financial Analysts”, Simon School of Business Working Paper No. FR 02-12.
***세계적인 경제지 ‘Institutional Investor’가 매년 발표하는 ‘Best Research’ 기준. https://www.institutionalinvestor.com/article/b15x58zthqmjry/the-worlds-best-research-firm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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