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016년 5월 28일, 2년 전 오늘 서울지하철 구의역 9-4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용역업체 직원 김 군이 열차에 치여 숨졌다. 그를 미처 파악하지 못한 열차가 역내로 들어오면서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는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특성화고 출신인 김 군의 나이는 당시 열아홉이었다.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미친 파장은 상당히 컸다. 특히 사망한 김 군의 가방에 숟가락과 일회용 나무젓가락, 컵라면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외주용역 노동자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시민들은 안타까움을 드러냈고 이제 막 세상에 발돋움하기 시작한 숙련되지 않는 청년을 제대로 된 안전장치 없이 위험한 근무환경에 놓이게 한 현실에 분노했다.
이후에도 위험한 노동환경에서 우리 곁을 떠난 청년이 한두 명이 아니다. 지난해 1월, LG유플러스 상담 업무를 대행하는 LB휴넷의 전주 고객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고등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1월엔 제주의 음료제조업체에서 현장실습 도중 기계에 목이 끼어 중상을 입은 고등학생이 끝내 숨졌다. 두 학생 모두 특성화고 3학년에 재학 중 현장실습을 하던 중이었다.
올 3월에는 경기도 남양주 이마트 다산점에서 하청업체 직원 이 씨가 무빙워크 점검 중 기계에 끼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씨는 약 한 시간 만에 구조돼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마트노조는 이 씨가 안전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안전장치와 보조인력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21세인 이 씨도 특성화고 출신으로 이곳에서 현장실습으로 일을 시작한 지 1년 6개월 만에 참사가 발생했다.
고등학생이거나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무 살 안팎의 청년들은 상대적으로 숙련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비정규직이 대세인 현실에서는 미처 숙련이 되기 전에 노동현장에 투입돼 위험한 상황에 놓일 확률이 자연히 높아진다. 더욱이 청년들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고 그저 싸게 부려 먹으려는 일부 어른들도 있다. 그만큼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 셈이다.
위 사건들은 ‘청년들의 죽음’이 있었기에 그나마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돼 다양한 개선책이 논의되었지만, 성희롱, 불합리한 차별, 산재처리하지 않는 사고, 노동법 위반 등 사회 곳곳에서 청년들이 받았을 피해는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에도 고용시장은 계속 얼어붙기만 하고, 특히 청년 실업률은 심각한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16일 통계청이 발표한 ‘4월 고용동향’을 보면 전체 실업률은 4.1%지만 15~29세 청년층 실업률은 10.7%로, 전체 실업률보다 약 6%포인트 더 높았다. 특히 청년층 체감실업률은 무려 23.4%에 달했다.
한쪽에서는 요즘 젊은이들은 3D 업종은 피하고 쉬운 일만 하려고 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일견 맞는 말 같다. 그러나 최소한 어느 노동환경에서도 노동자의 안전은 보장되어야 하고 불합리한 차별은 없어야 하며 노동법은 준수되어야 한다. 이러한 보장 없이 청년들에게 아무 곳이나 취업하라고 하는 것도 일종의 갑질이다.
서울시는 2016년 9월 스크린도어 안전 담당 외주 정비원 전원을 직영으로 전환하고, 인력도 146명에서 206명으로 늘렸다. 올 3월에는 이들을 포함한 서울교통공사의 무기계약직 전원(1285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또한 특성화고 현장실습 개선방안도 심도 있게 논의되고 있다.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는 지난 26일 10개 시·도 교육감 후보 11명과 정책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아마도 오늘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지나다 김 군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우리 어른들이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노동법을 준수하고 사회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그것이 앞서 세상을 떠난 청년들에 대해 우리 어른들이 속죄하는 길이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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