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꽉 막힌 금융공기업 수장 인사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임기 만료에도 공고는 물론 하마평도 나오지 않는가 하면, 일찌감치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히고서도 후임자를 찾지 못해 수개월째 자리를 지키는 기관장도 있다. 금융권에선 최근 인사검증 기준이 강화돼 늦어진다는 시선도 있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인선 작업이 미뤄지면서 “지방선거 이후 보은성 인사가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후임 수장을 선임해야 하는 금융공기업은 신용보증기금, 예금보험공사, 기술보증기금, 총 세 곳이다. 올해 초부터 최근까지 기존 기관장의 사의 표명, 해임, 임기 만료 등이 잇따랐다.
# 내정설 논란 휩싸인 신용보증기금 인사 원점으로
가장 급한 곳은 신용보증기금이다. 황록 이사장은 지난 1월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후임자를 찾지 못해 지금까지 근무 중이다. 신보 관계자에 따르면 황 이사장은 후임 이사장이 결정될 때까지 자리를 지킬 계획이다. 이사장 인사가 지연되면서 임원 인사도 미뤄지고 있다. 신보 상임이사 5명 가운데 4명은 임기가 끝났지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부 상임이사는 지난해 7월 임기가 끝났다.
신보는 황 이사장의 사의 표명 직후 새 수장 선임 작업에 착수했지만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 2월 사외이사와 민간 전문가가 참여한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해 공모에 나섰지만 곧바로 ‘관피아’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최영록 전 기획재정부 세제실장과 신보 전현직 임원 등 4명이 참여했는데, 이 가운데 최 전 실장이 가장 유력하다는 설이 파다했기 때문이다.
신보는 역대 신임 이사장 대부분이 기획재정부(옛 재무부, 재정경제부) 출신이다. 1대 정재철 전 이사장부터 16대 김규복 전 이사장까지 모두 옛 재무부와 재정경제부 출신이었다. 유일한 민간 출신이던 황 이사장은 임기 3년 가운데 1년 8개월이나 남긴 상황에서 돌연 사표를 제출했다. 사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어 최 전 실장이 신보 임추위 면접 전날 기재부에 사표를 제출하자 신보 안팎에서 ‘이사장 확정’ 논란이 번졌다.
신보 이사장은 임추위가 복수의 후보를 추리면 금융위원회가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신보 임추위는 최 전 실장을 포함한 후보 4명을 추천했으나 청와대 인사검증에서 모두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금융공기업 관계자는 “최 전 실장 내정설이 돌다가 동시에 후보에 오른 박철용 전 신보 감사가 ‘여권 인사’로 분류돼 이사장 후보로 떠오르면서 논란이 더 커졌다”면서도 “이와 별개로 후보들이 청와대 기준과 달라 탈락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신보는 이사장 인선 작업이 원점으로 돌아가자 재공모에 착수했고, 최근 7명의 새 후보를 추렸다. 이 가운데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정책수석을 역임하고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원회, 재정경제원 등을 거친 윤대희 전 국무조정실장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확정된 건 없다. 빠르면 5월 말 윤곽이 드러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 인선 작업 착수도 못 한 예금보험공사, 기술보증기금
예금보험공사와 기술보증기금은 인선 작업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곽범국 예금보험공사 사장은 5월 26일 임기를 마친다. 통상 예보는 사장 임기 만료 1~2개월 전에 임추위를 구성하고 공고를 낸다. 그러나 지난 15일 열린 정기 이사회에서도 임추위 구성 안건 상정은 물론 후임 사장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공모 진행 일정도 불확실하다. 앞서의 신보와 달리 하마평도 나오지 않는다. 예금보험공사 관계자도 “정확한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곽 사장의 임기도 후임자가 나타날 때까지 연장될 전망이다. 2015년 예보 사장에 취임한 곽 사장이 연임을 할 수도 있지만, 그동안 예보 사장 가운데 연임한 사례가 한 번도 없어 늦더라도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예보 사장은 다른 금융공기업 수장과 비교해 역할이 큰 자리로 분류된다. 예보 사장은 금융위원회 당연직 위원이다. 예금보험위원회의 위원장도 겸직한다. 예보위는 예보 사장을 위원장으로 금융위 부위원장, 기재부 차관, 한은 부총재 등을 포함한 7명으로 구성된다. 예보 사장도 금융위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기술보증기금 이사장은 한 달째 공석이다. 김규옥 전 이사장이 스캔들에 휘말려 지난 4월 사퇴 의사를 밝혔고, 사실관계 확인에 나선 주무부처 중소벤처기업부가 결국 해임을 결정했다. 앞서의 예보와 같이 후임자 선임을 위한 임추위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강낙규 전무가 이사장 직무대행 역할을 하고 있다.
기보는 조만간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해 공모 일정을 확정한다는 입장이다. 일정대로라면 이르면 오는 6월 말 후임자가 나올 수도 있지만, 다소 지연될 수 있다는 기류도 있다. 기보는 지난해 7월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주무부처가 금융위에서 중기부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기보 임추위는 이사장 후보를 중기부에 추천하고, 중기부 장관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금융권의 다른 관계자는 “중기부 이관 후 첫 이사장 선임이라 검증을 더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인선 작업도 그만큼 늦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 “지방선거 이후 보은성 인사 경계해야”
금융공기업 수장 선임이 잇따라 지연되면서 금융권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이 나온다. 정부 기관의 일부 유력 인사들이 낙마하거나 중도 사퇴하면서 인사 검증 기준이 한층 까다로워져 늦어진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꼼꼼한 검증이 진행될 만큼 금융공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인선 작업에 착수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이유도 없이 미뤄지면서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앞서 금융공기업 인선은 신임 금감원장 임명 이후 진행될 것으로 전망됐다. 전직 금감원장들의 낙마 사태를 거치고 남북, 북미 정상회담 등을 앞두고 있던 청와대가 금감원장 임명에 더 신중할 것이란 분석이었다. 다른 금융공기업 관계자는 “이 경우 금융공기업 인사도 미뤄지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봤다”면서도 “그러나 청와대가 새 금감원장을 전임 원장 사퇴 18일 만에 마무리하면서, 금융공기업 수장 인사가 늦어질 이유가 없는데도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금융권 일각에선 지방선거 이후 낙마하거나 낙천한 인물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동안 대부분의 금융공기업 수장들이 관료 출신이거나 정치권 출신이라 늘 낙하산, 관피아, 정피아 등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앞서의 금융공기업 수장 임명권을 모두 쥐고 있다는 점도 설득력을 높인다.
앞서의 금융공기업 관계자는 “경제부처에서 오래 근무한 관료나 정치권 관계자들은 전문성도 검증됐고 정부와 소통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논공행상이나 보은성이 짙은 인사는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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