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오늘 뭐 먹지?” 점심때마다 돌아오는 고민.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다. 회사 주변 한 끼 가격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조미료가 듬뿍 들어간 ‘파는 음식’이 뱃속을 은근히 괴롭힌다. 웬만한 식당은 이미 다 가봤다. 물릴 대로 물린 입맛을 다시노라면 ‘집밥’이 그립다.
‘할머니 손맛’이 담긴 집밥을 사무실로 배달해주겠다고 나선 스타트업이 있다. ‘그랜마찬’은 회사와 계약을 맺고 사무실에 냉장고를 공급한다. 수십 년 경력의 ‘그랜마’가 직접 만든 ‘찬’을 진공 포장해 일주일에 한 번 냉장고를 채운다. 일주일마다 반찬 종류를 바꾸고 딱 세 끼만 공급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야 사무실 직원이 같은 메뉴에 질리지 않고 그때그때 사정에 맞게 집밥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본가가 대전인데 학교 때문에 경기도에서 자취했어요. 어릴 때 할머니 손에 자라서 한식을 많이 먹었거든요. 남들은 사 먹는 게 편하다고 하는데 저는 좀 물리더라고요.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집밥을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반찬 사업에 집착(?)하는 건가 봐요.”
구교일 그랜마찬 공동대표는 올해로 만 27세. 사업가치곤 어린 나이지만 벌써 반찬 관련 사업만 4년째다. 세 번의 실패를 겪으며 쌓은 노하우를 이번 사업에 쏟았다. 반찬 사업에 발들인 계기는 아주 단순했다. 집밥이 먹고 싶었다. 혼자 요리를 하면 버리는 재료가 많았다.
자취생을 불러 모아 함께 반찬을 만들어 나누는 ‘자취회’를 만들었다. 호응이 좋았다. 사업 아닌 사업을 시작했다. 주변 대학 학생회에 부탁해 반찬 나눔을 알렸다. 생각보다 문의가 많이 몰렸다. 혼자 힘으로 배송을 감당할 수 없었다. 얼떨결에 시작한 사업에서 마진이 남을 리가 없었다. 4개월이 지나 그만뒀지만 싸고 맛있는 집밥에 대한 수요를 확인한 계기였다.
2016년 5월 구 대표는 ‘그랜마찬’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본격적으로 반찬 사업 길을 걸었다. 첫 모델은 ‘반찬 배달’이었다. 중국집에 자장면 배달시키듯 시장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배달시킬 수 있게 만들었다. 실패였다. 수요 예측이 어려웠다. 반찬은 자장면처럼 주문이 들어오면 즉석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한꺼번에 만들기 때문이다. 반찬이 남거나 부족한 일이 빈번했다.
그 다음은 오프라인 반찬가게를 끌어들여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었다. 고객이 원하는 반찬을 전날 선주문하면 다음 날 반찬을 만들어 배송해주는 형태였다. 이번엔 반찬가게 사장님들이 어려움을 토로했다. 10평 남짓 가게에서 포장과 배송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일정한 품질관리가 안 됐고, 중간수수료를 남기기엔 거래량이 부족했다. 1년 6개월 만에 사업을 접었다.
“사업하다 보니 밥 먹을 시간도, 돈도 부족해서 하루 한 끼 먹었어요. 점심때 왕창 먹고 저녁에 집 가서 일찍 잤죠. 당시 코워킹플레이스에 있었는데 다른 회사도 사정이 비슷하더라고요. 매번 끼니를 놓치는 경우가 많고 주변 밥값은 너무 비싸니까요. 저한테 도시락을 좀 공급해달라고 말하더라고요. 사업을 접고 다른 걸 생각하던 차에 이거다 싶었어요.”
구 대표는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반찬 냉장고’ 사업을 벤치마킹하기로 했다. 일본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냉장고를 채우는 형태로 운영됐다. 장아찌 문화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소식 문화 덕에 반찬 가짓수도 22개에 불과했다. 가장 큰 특징은 기업이 반찬 가격의 반을 내서 냉장고를 들여놓으면 직원이 저금통에 100엔 동전을 넣고 반찬을 가져가는 것이었다. 한국 정서와 문화에 맞게 재정비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우리나라 사람은 반찬으로 나물이나 무침을 많이 먹어요. 한 달 주기는 반찬이 상할 수도 있어서 일주일로 바꿨어요. 우리는 한 끼에 적어도 세 개를 두고 먹기 때문에 반찬 가짓수도 36가지로 늘렸어요. 요즘 동전이나 지폐를 쓰는 사람 없잖아요. 차라리 기업에서 반찬값을 모두 지불하는 시스템으로 하기로 했어요.”
기업이 반찬값을 모두 지불하면 ‘식비 복지’가 된다. 이 경우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 사정에 따라 복지를 누리는 사람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이다. 구 대표가 생각하는 다음 모델은 ‘반찬 자판기’다. 냉장고 잠금장치를 설치해 직원의 결제를 유도하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동전을 저금통에 넣고 반찬을 가져가는 일본 모델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반찬 자판기’를 만들기 위해선 소프트웨어 기술력이 필요했다. 구 대표가 임은빈 공동대표(27)에게 손 내민 이유다. 당시 임 대표는 소프트웨어 관련 기업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가상피팅 시스템을 갖춘 인터넷쇼핑몰을 차린 상태였다. 둘은 대학 시절 학생회 활동을 통해 만나 동료로서 호감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구 대표가 가진 비전에 공감해서 같이하기로 했어요. 그랜마찬의 궁극적 목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복지 격차를 조금이나마 줄이는 거예요. 식비 지원이 회사 만족도를 높이는 1순위거든요.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점이 있잖아요. 구내식당을 만들기엔 고정비용이 엄청나고, 연봉이 천차만별인 회사가 몰려 있는 강남이나 역삼동은 밥값이 비싸요. 중소기업도 고정비용 부담 없이 직원에게 점심을 제공할 수 있게 하고 싶어요.”
그랜마찬이 본격적으로 서비스 시작한 지 2주째다. 현재 시식 서비스를 함께 진행 중이다. 시식을 요청한 회사는 22곳, 냉장고를 공급한 사무실은 8곳이다. 두 대표는 6명 기준 사무실 50곳 계약을 손익분기점으로 본다. 구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맛이다.
“수십 년 경력 이모님 두 분과 일하고 있어요. 반찬 사업하면서 알게 된 분들 중 가장 잘 맞는 분들이에요. 두 분과 일하고 싶어서 이모님이 살고 계시는 시흥에 사무실을 잡았죠. 그랜마(Granma), 찬(餐)이라는 이름 그대로 할머니 손맛으로 만든 반찬을 선사해드리고 싶어요. 저희 제품을 싸서 먹는 게 아니라 맛있어서 드셨으면 좋겠어요.”
박현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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