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때 서울 강남을 대표한 압구정 ‘로데오거리’의 침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90년대부터 이어지던 황금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인근 신사동 가로수길 상권과 홍대, 이태원 등 상권이 성장하며 10여 년 전부터 쇠락의 길을 걸었다. 최근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낮추는 등 상권 활성화에 나서고 있지만, 중심 거리는 여전히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압구정 로데오거리는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사거리에서 학동 사거리 입구까지 이어지는 ‘ㄴ자’ 형태의 거리로 서울을 대표하는 ‘핫플레이스’로 꼽혔다. ‘로데오’란 이름도 1980년대 중반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의 고급 쇼핑가에서 따온 만큼 상점의 약 70%가 옷가게였고, 고급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했다.
24일 오후 찾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 로데오거리는 과거 영광을 찾아볼 수 없이 한산한 모습이었다. 점심시간이라 삼삼오오 발걸음을 재촉하는 직장인들의 모습 정도만 볼 수 있을 뿐 평일 낮에도 많던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초입에서부터 3층짜리 건물의 ‘임대’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1층은 1986년 문을 연 뒤 로데오거리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던 파리크라상이 있던 자리로 지난해 11월 문을 닫았다. 그 뒤 계속 빈 상태다. 파리크라상을 운영하는 SPC 측에 따르면, 월 4000만 원 가까이 치솟은 높은 임대료와 활기를 잃은 상권의 영향으로 영업을 종료했다.
이 같은 모습은 메인 거리 중심으로 들어갈수록 심화됐다. ‘비즈한국’이 중심 거리와 압구정로데오역 사거리 인근 대로변 일대 임차인을 구하는 점포가 있는 건물을 전수조사한 결과, 24곳이 빈 상태였다. 특히 메인 거리 한 건물 1층에는 4개 점포가 비었고, 2층은 전체가 빈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건물 전체가 공실인 경우도 두 곳이었다. 운영 중인 상점들 사이 오픈을 앞둔 몇몇 가게들이 인테리어 공사에 한창이었다.
메인 도로 한복판 1층에서 줄줄이 공실이 발생한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라는 게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공실 문제가 대두된 건 10여 년 전이지만 아직까지 나아진 게 없다”고 말했다.
압구정로데오역 사거리 대로변도 상황은 비슷했다. 2009년부터 압구정로데오역 사거리에 건물 1, 2층을 사용하던 ‘카페베네’ 역시 지난해 문을 닫은 뒤 빈 공간으로 남아 있다. 갤러리아백화점 맞은편 대로변은 과거에 맥도날드 국내 1호점인 압구정점이 입점해 있던 자리로 임차 수요자가 가장 선호했던 위치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압구정 상권 3층 이상 빌딩 공실률은 올해 1분기 14.8%로 지난해 1분기(7.3%)에 비해 급등한 수치다. 지난해 4분기 연속 증가세를 보이며 17.2%까지 치솟았지만 올해 들어 2.4%포인트 감소하며 한풀 꺾인 모양새다. 같은 기간 서울 전체 공실률이 6.5%에서 7.7%로 상승한 것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수치다.
인근 부동산업소들에 따르면, 로데오 메인 거리 주변은 권리금이 사라지고 임대료를 낮추며 회생의 노력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올해 들어 도산공원 주변 골목상권을 중심으로 상권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도산공원 인근에는 유명 요리사가 운영하는 가게들이 들어섰고, 베이커리, 카페 등 음식점이 주로 입점했다.
하지만 메인 거리는 여전히 임대료 부담이 높아 빈 가게들이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땅값과 임대료가 여전히 높은 데다 건물주들이 음식점보다 의류·잡화 등 특정 업종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임차인 확보에 걸림돌이 된다. 이 일대 A급 상가 시세는 전용면적 33㎡(약 10평) 기준 보증금 5000만~6000만 원, 월세 200만~300만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권리금 없는 상점이 나오기 시작했다”며 “권리금이 없는데도 임차인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임대인들이 임차인이 입점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수준으로 임대료를 낮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홍구 창업전문가는 “이 일대 상권 몰락은 가로수길 성장으로 인한 유동인구의 분산과 높은 임대료를 고집하던 건물주와 수익성이 악화돼 빠져나가는 임차인의 영향으로 국내 젠트리피케이션의 원조격으로 볼 수 있다”며 “건물주들이 동참해 임대료를 무작정 낮추는 것 외에도 입점 초반엔 임대료를 낮게 받다가 매출 신장에 따라 순차적으로 임대료를 높여가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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