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문재인 정부는 외교 지평을 넓히고 시장 다변화를 위해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을 주 대상으로 한 ‘신남방정책’을 추진 중이다. 여기에는 지나치게 높은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갈등 때 우리 경제에 타격으로 돌아왔다는 점이 반영됐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의 야심 찬 신남방정책이 시작부터 삐걱거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동남아 등 신흥국의 경제가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이 최근 북핵 문제를 주도하고 있는 한국 정부에 우호적인 신호를 보낸 뒤 다시 대 중국 수출 의존도 높아지면서 신남방정책의 동력이 더욱 약화되는 분위기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동남아 3개국(인도네시아·베트남·필리핀)을 순방할 때 신남방정책 비전을 내놓았다. 문 대통령은 당시 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 포럼 기조연설을 통해 “아세안과 한국의 관계를 한반도 주변 4대국(미국·중국·일본·러시아)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며 “이를 위해 아세안과의 협력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켜나가기 위한 신남방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문 대통령은 아세안 기업투자 서밋에서도 신남방정책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임기 중 아세안 10개국을 모두 방문하겠다”며 “2020년까지 상호 교역규모 2000억 달러 목표를 반드시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내놓은 신남방정책은 최근 국제 경제 상황 변화로 첫 걸음부터 흔들리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 인상에 속도를 올리자 신흥국을 중심으로 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가면서 아세안 등 아시아 신흥국 경제가 위기 상황을 맡고 있는 탓이다. 세계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인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 선진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로 늘어난 투자자금은 아시아 신흥국에 몰려들었다.
2009년 이후 아시아 신흥국의 역외신용(외국투자자금 유입) 증가율은 18.6%로 남미(4.6%)는 물론 세계 평균(4.9%)을 크게 웃돌았다. 이는 미국 기준금리 인상으로 유동성이 축소되면 급격한 자금 유출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미국으로 투자자금이 대거 유입되면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아시아 신흥국 주식시장에서는 최근 2개월 사이에 122억 달러(약 13조 2000억 원)가 빠져나갔다. 여기에 남미 대표적 신흥국인 아르헨티나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자 아시아 신흥국에 대한 불안감도 더욱 커지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국가부도위험을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올해 들어 85bp(1bp=0.01%포인트)에서 117bp로 32bp 뛰었고, 말레이시아도 CDS 프리미엄이 같은 기간 58bp에서 96bp로 36bp 상승했다.
중국이 최근 한국에 대한 사드 보복 조치 철회에 나선 뒤 우리 기업들이 과거의 경험을 뒤로 한 채 다시 중국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는 것도 신남방정책에 악재로 작용 중이다. 산업통산자원부에 따르면 올해(1~4월) 아세안에 대한 수출금액은 302억 91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3%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전체 증가율(27.8%)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아세안에 대한 수출 증가율이 올 1월 37.5%에서 2월 4.5%로 급락한 데 이어 3월 2.3%, 4월 2.1%로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신남방정책의 가장 주요한 교두보로 삼고 있는 베트남에 대한 수출 증가율은 3월 -3.3%, 4월 -17.6%로 오히려 마이너스 폭이 커지고 있다.
반면 중국에 대한 수출 증가율은 2월 3.6%에서 3월 16.9%로 뛴 데 이어 4월에는 23.0%로 더욱 상승했다. 이로 인해 올해 중국이 우리나라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6.4%로 지난해(24.8%)보다 더 높아졌다. 향후 중국의 또 다른 경제적 보복에 대비해 중국에 대한 수출의존도를 낮추는데 목표를 둔 신남방정책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한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미국 기준금리 인상으로 아르헨티나와 터키 등이 위기에 처하면서 아시아 신흥국, 특히 아세안 국가들의 경제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로서는 국내 고용이 갈수록 악화되고 생산·투자·수출도 흔들리는 와중에 신남방정책마저 수렁에 빠질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을 맞고 있는 셈이다”고 말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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