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의 ‘무등록 분양대행사 대행 업무 금지 방침’ 후폭풍이 거세다. 예고나 유예 기간 없이 갑작스레 단속이 강화되면서 업계에선 볼멘소리지만, 정부는 원칙을 강조하면서 후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반짝 달아올랐던 연초 분위기와는 확실히 다르다. 여기서 찬물이 쏟아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최근 분양시장 분위기에 대한 한 중견 건설사 임원의 말이다. 그는 “이번 정부 방침으로 직격탄을 맞은 건 분양대행사지만, 건설사들에 미친 영향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찬물’의 발단은 국토교통부가 지난 4월 26일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한국주택협회 등에 보낸 공문이다. ‘건설업 면허가 없는 업체가 아니면 분양대행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위반하는 업체에 최대 6개월 영업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다는 경고도 포함됐다.
새로운 규제는 아니다. 현행 주택공급규칙 제50조 4항을 보면 ‘청약 관련 업무는 사업주체가 직접 수행하거나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건설업 등록을 한 자가 대행할 수 있다’고 규정 돼 있다. 이 규칙은 2007년 도입됐지만,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여파로 미분양 사태가 벌어지자 현장에서는 10여 년간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채로 방치됐다. 일반 분양뿐만 아니라 공기업조차 분양대행업체 선정 과정에서 건설업 면허를 요구하지 않았다.
분양대행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공문 발송 당시엔 ‘조금만 더 지켜보자’는 분위기였다. 10년간 국토부로부터 별다른 제재가 내려온 적이 없는데, 하루아침에 달라지겠느냐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전국 지자체가 엄격하게 대행업체 자격 요건을 점검하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대형 건설사들이 분양대행사 선정 입찰 참여에 자격요건을 따지기 시작했다. 서울의 한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설마 하면서 지켜보다 보니 분위기가 크게 바뀌어버렸다. 새 대안을 마련하느라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 국토부 “분양대행업무 관리 책임 강화해야”
분양대행 업무는 ‘시행→시공→분양’으로 이어지는 부동산 전방산업에 속한다. 그만큼 건설업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분양대행사는 아파트 건설을 기획하는 시행사와 건물을 짓는 건설사를 대신해 홍보와 마케팅을 맡는다. 통상 시장조사와 타깃층 조사, 청약 상담, 신청 서류 접수 등 분양 업무 대부분을 수행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연간 30만 가구가 분양된다고 가정했을 때 국내 분양대행업 시장 규모가 1조 원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본다. 관련 종사자는 수천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건설업 종사자들이 은퇴 이후에 가장 많이 선택하는 직업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국토부는 규모가 커진 만큼 일부 분양 대행업체 문제가 심각하다는 판단이다. 집값 하락 분위기를 깨고 다시 투기 열풍을 불러온 최근 서울 강남의 일명 ‘로또 분양’ 과정에서 대규모 부적격자가 발생했고, 부실한 상담 등의 사례가 현장 점검에서 적발됐다. 일부 업체는 청약 서류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개인정보가 유출되기도 했다. 대행사들이 인위적으로 분양가를 조정하거나 임의로 당첨자를 변경한다는 등의 제보가 잇따르기도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문제가 생기면 분양대행사와 시공사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갈등이 더 커지는 측면도 있다”며 “자격요건 확인이나 서류 접수와 같은 입주자 선정 관련 업무만 자격을 갖춘 업체가 하면서 책임을 강화하고 제대로 관리를 하자는 취지다. 이 업무를 제외한 홍보, 마케팅은 앞으로도 분양대행업체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갑작스런 조치, 분양시장 ‘우왕좌왕’
부동산114에 따르면 5월 전국 총 74개 단지, 6만 2258가구가 분양될 예정이었다. 지난해와 비교해 약 2.6배 많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건설업체들이 물량을 쏟아내서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무등록 분양대행사의 대행 업무 금지 조치로 분양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현재 국내 분양대행사 가운데 건설업 면허를 보유한 곳은 신영, MDM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조치에 따른 준비를 위해 분양 일정을 뒤로 미루는 일도 쉽지 않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지방선거, 월드컵 등 대형 행사 분위기가 무르익는 5월 마지막 주부터는 분양 홍보가 사실상 어려워진다. 5월을 넘기면 7월이나 늦으면 8월부터 분양이 시작되는데, 계획된 일정상 이마저도 불가능하다.
대형 건설사들은 그나마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대우건설과 대림산업은 분양대행사에게 사업을 맡겨왔지만 최근 직접 분양 방식으로 전환했다. 삼성물산과 포스코건설 등은 자체적으로 분양 업무를 진행하기 위해 1주일에서 2주일가량 분양 일정을 뒤로 미뤘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분양 일정을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조정하느라 진땀을 뺐다”고 말했다.
중견 건설사는 대형 건설사와 달리 탄력적인 대응이 어렵다. 특히 서울, 경기도는 물론 지방 분양대행사 대부분은 건설업 등록 사업자가 아니다. 부산의 한 중견 건설업체 관계자는 “중견사들은 수주한 물량을 소화하지 못하면 곧바로 파산”이라며 “일단 본사 직원들 모두에게 분양 업무를 맡겨놨지만 일시적인 대처일 뿐이라 앞으로가 문제”라고 말했다.
직격탄을 맞은 분양대행업체들도 난처하다는 입장이다. 건설업 등록을 위해서는 자본금 5억 원, 5인 이상(중급 2명·초급 3명) 기술자 고용 등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 토목건축공사업의 면허는 자본금 12억 원, 건설기술자 11명 이상이다.
서울의 한 분양대행업체 관계자는 “적지 않은 분양대행업체들이 소수로 구성된 영세업자들이다. 홍보, 마케팅, 상담 등 업무별로 프리랜서나 다른 대행사들과 임시 계약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한다. 면허 취득 자체가 쉽지 않다”라며 “아무리 규칙이 있다고 하더라도 예고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나. 10년 동안 규모가 커진 대행업 구조가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다른 분양대행업체 관계자는 “면허 취득을 준비하고 있지만 금방 나오는 것도 아니라 고민이 많다”라며 “최근 일부 업체들은 건설업 면허를 가진 사람들을 임시 계약형태로 고용하기도 하고, 면허를 빌리겠다는 편법 업체들도 종종 보인다”라고 말했다.
# 국토부 “원칙대로” 감독·규제 강화 전망
국토부는 시장 혼란은 파악하고 있지만 원칙대로 강행할 예정이다. 이를 두고 정부 안팎에선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바짝 고삐를 쥐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부동산 투기 관련 규제를 연이어 발표했지만 올해 초 분양 시장을 중심으로 이상 과열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선거 열기가 달아오르는 과정에서 후보자들의 지역 건설, 주택 등 공약이 자칫 주택시장으로 번지는 일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무등록 분양대행사를 활용하는 건설사가 적발되면 감사원 감사청구 등을 통해 적발된 지역 지자체에 책임을 물을 방침이다. 지난 4월 공문 발송 이후 일각에서 ‘분양대행업’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국토부는 분양대행업을 건설업에 포함하는 데 무게를 싣고 있다. 이 경우 분양과 분양대행업은 모두 건설사만 할 수 있다.
앞서의 국토부 관계자는 “여러 해석이 있을 순 있지만 다른 방향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 새로운 규제도 아니고 원칙대로 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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