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해 말부터 불거진 채용비리 여파로 은행권에서 필기시험 도입, 외부 면접관 참여 등 채용시스템 전반에 변화를 꾀하는 가운데 부정 합격자의 채용 취소도 이뤄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은행들의 연합기구인 은행연합회는 최근 부정 합격자들을 면직하거나 채용을 취소하도록 권고하고, 이들의 채용이 취소될 때를 대비해 예비합격자 제도를 운영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채용 절차 모범규준을 마련해 금융위원회 보고를 마쳤다. 모범규준에는 면접 외부위원 참여, 임직원 자녀 가점제·추천제 등 일괄폐지, 성별·나이·학교 차별 금지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들은 법원 판결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부정 합격을 이유로 감봉, 면직 등의 처분을 내리면 근로기준법 위반 가능성이 있어 법원 판결이 난 뒤 자체 징계위원회 심의를 거쳐 처분이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부정 합격자들은 검찰 조사와 법원 판결까지 사실상 1~2년 동안은 은행에 소속돼 있는 셈이다.
국내 민간은행 가운데 채용비리로 인한 부정 합격자에 대한 규정을 마련한 은행은 단 한 곳도 없다. 은행연합회는 채용비리 근절 의지를 보이고자 모범규준을 통해 부정 합격자들을 면직하거나 채용을 취소하도록 권고하는 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모범규준이 마련되더라도 부정합격자 처분과 관련해선 ‘권고’ 수준에 그쳐 실제 은행들이 적용하기까지는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모범규준을 적용해 면직이나 채용 취소까지 가더라도 상대방이 소송을 제기하면 회사로서는 골치 아파진다”며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법조계도 같은 맥락이다. 한 변호사는 “은행들이 내부 규정 등을 통해 합격자에게 불이익을 줄 순 있지만 이마저도 부정 합격자들이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은행연합회가 모범규준의 면직이나 채용 취소 규정을 소급 적용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각 은행 판단에 맡기겠다고 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모범규준대로 부정합격자에게 처분을 내리더라도 법원에서 결과가 뒤집힐 경우도 고려해야 한다. 회사가 특정인을 해고하기 위해 부정 합격자라고 판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법원은 상대적으로 약자인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각종 퇴직 규정을 해고수단으로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징계를 하더라도 법원에서 뒤집히는 경우가 많아 ‘부정합격자를 면직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기는 어렵다”며 “규준 내용에도 ‘면직할 수 있다’ 정도로 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모범규준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은행들이) 강제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사회에서 안이 확정되면 그것은 은행들 간의 약속이기 때문에 각자 내규화해서 따를 것으로 본다”며 “그게 아니더라도 금융당국이 이를 잘 지키는지 관리·감독을 할 가능성이 있어서,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구속력’은 충분히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민간은행과 달리 기업은행,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들은 채용비리에 연루된 관계자와 합격자를 모두 퇴출시키는 내부 규정을 4월 마련했다. 최근 정부가 보인 채용비리 피해자 구제 방침과 뜻을 같이하고 사후 법적 처벌이 내려지기 전에 처음부터 청탁이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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