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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 능선 넘은 '보편요금제' 국회 문턱이 더 어렵다

정부, 업계 반발 뚫고 법안 제출 예정…국회 처리 미뤄질 가능성 높아

2018.05.16(Wed) 16:15:32

[비즈한국] 정부가 통신비 인하를 위해 추진 중인 ‘보편요금제’가 또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최근 정부 규제심사에서 격론 끝에 보편요금제 도입이 결정되자 통신업계가 크게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여기에 제도 도입을 위한 마지막 관문인 국회 통과가 불투명하다는 지적까지 나오면서 진통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보편요금제 입법안이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 심사를 11일 통과했다. 규개위는 정부 각 부처가 만드는 규제가 적절한지 논의·심사하는 곳이다. 법안이 규개위를 통과하면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등을 거쳐 국회에 제출된다. 

 

보편요금제는 기존 월 3만 원대에 해당하는 음성통화 200분·데이터 1GB를 2만 원대에 제공하는 요금제다. 이 제도는 국내 통신시장의 지배적 사업자 SK텔레콤에 보편요금제를 의무적으로 출시하도록 한다. 출시 대상은 한 업체로 제한하지만, 정부는 경쟁사인 KT와 LG유플러스도 뒤따라 비슷한 수준의 요금제를 도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관련기사 1조 2000억 걸린 '보편요금제 쓰나미'에 물러설 곳 없는 이통 3사)

 

# ​보편요금제 위헌 아니냐이통사 반발​

 

법안 제출이 결정됐지만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가계 통신비를 줄이는 게 법안의 핵심이고 취지에는 업계와 시민단체 등 이해관계자들 대부분이 공감하지만, 보편요금제가 과연 적절한 해법인지를 두고 시각차가 크다.

 

실제 규개위 심사에 앞서 ​지난해 11월 ​정부, 이통 3사, 시민단체, 알뜰폰협회 등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출범한 ‘가계통신비정책협의회’에서도 보편요금제 논의가 이뤄졌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줄곧 평행선만 달리다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규개위 심사도 치열한 격론 끝에 24명의 위원 가운데 13명이 승인하는 등 간신히 과반 찬성 요건이 갖춰졌다”고 말했다. 

 

이통 3사는 법안에 정부가 민간 사업자를 통제하는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번 법안 제28조 등에 따르면, 2년에 한 번씩 통신비협의체가 보편요금제의 데이터 제공량, 요금 수준을 검토하는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친 뒤, 이를 토대로 과기정통부 장관이 최종 요금을 결정할 수 있다. 사실상 정부가 통신비 책정에 직접 개입하는 셈이다.

 

서울 시내 한 휴대폰 판매점 앞을 시민이 지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보편요금제 도입으로 이통 3사가 떠안게 되는 부담이 과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과기정통부는 규개위 회의에서 보편요금제 도입에 따른 이통 3사 연간 매출 감소액은 7812억 원이라고 밝혔다. 상위 요금제 이용자 959만 명은 5000원 요금 인하 효과(총 5759억 원)를 누리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두 효과를 더하면 연간 총 1조 3581억 원의 통신비 인하 혜택이 나온다.

 

하지만 이통 3사 입장에선 통신비 인하 혜택은 모두 매출 감소분이다. 약 1조 원의 매출이 줄어들 전망이다. 보편요금제에 앞서 도입된 취약계층 요금감면(5173억 원), 선택약정요금할인율 상향(1조 원)까지 더하면 보편요금제 포함 ‘3대 패키지’ 정책으로 인한 매출 감소액은 2조 8754억 원이다. 지난해 이통 3사 영업이익의 77% 수준(3조 7386억 원)이다. 

 

정부가 저가항공사와 비슷한 취지로 도입한 ‘알뜰폰시장 활성화 정책’과 엇박자를 내는 법안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시장에 정착한 알뜰폰이 보편요금제 대안 가운데 하나이지만 도입을 강행한다는 얘기다. 이통 3사에서 저렴한 가격의 보편요금제를 출시하면 알뜰폰의 역할이 그만큼 줄어들 전망이다. 이를 이유로 알뜰폰 업계 역시 보편요금제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 ​플랜B는 없다​ 드라이브 거는 정부

 

정부와 시민단체 측은 통신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보편요금제는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제 통신은 공공재와 다름없으므로 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소비자에게 정보접근성을 제공하는 차원에서 도입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정부는 데이터를 ‘음성’ 서비스에 비유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요금제에서 음성을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것과 같이 향후 5G 도입 이후 데이터 역시 음성과 같은 성격을 갖게 된다는 설명이다. 앞서의 가계통신비정책협의회 정부 측 관계자는 “이통 3사가 반대하는 이유는 결국 매출 감소 아니겠느냐”라며 “국민 데이터 이용 부담 완화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보편요금제를 양보할 수 없는 측면도 있다. 당초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내세운 공약은 기본료 1만 1000원 폐지였지만, 이통 3사의 반대로 인해 보편요금제를 대안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보편요금제를 도입하면 기본료 폐지에 상응하는 수준의 요금인하 효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 측은 앞서의 가계통신비정책협의회 회의 과정에서도 보편요금제만큼은 도입 의지를 분명히하며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전성배 과기정통부 통신정책국장도 지난 11일 규제위 심사 직후 열린 브리핑에서 쟁점 법안이 되면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플랜B는 없다”고 답했다.

 

다만 정부는 통신요금 인가제 폐지 카드를 꺼냈다. 보편요금제 하나로 중심을 잡고 다른 요금제 규제를 폐지해 이통사들이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요금인가제는 1991년 도입된 대표적인 통신규제다. 현행법에 따라 시장 1위 SK텔레콤은 신규 요금제를 도입하거나 변동할 때 정부 인가를 받는다. 반면 KT와 LG유플러스는 ‘신고’만 하면 된다. 정부는 인가제를 폐지해 SK텔레콤도 신고하는 것으로 완화할 방침이다. 

 

보편요금제를 두고 정부와 업계 시각차가 갈린다. 사진=문상현 기자


# ​산 넘어 산​ 과연 국회 통과할까

 

과기정통부는 상반기 내에 보편요금제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정치권 관계자들은 보편요금제가 국회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는 예단하기 어렵다고 전망한다. 찬반의견이 갈릴 뿐만 아니라, 보편요금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국회의원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9월 비공개 당정협의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영업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해 위헌 소지가 있으며, 통신시장 경쟁 저해라는 지적이 있다”며 “알뜰폰 시장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취지로 부정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통사들이 통신비를 낮출 여력은 있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입장차가 극명하게 갈리는 만큼 국회 처리 전까지 설득과 이해 과정이 필요하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에서는 “보편요금제는 시장경제체제를 역행하는 제도”라며 “불필요한 규제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알뜰폰이나 제4이동통신 등 현실적 대안이 ​충분히 ​있는데도 정부안을 강행하고 있다. 새로운 규제로 또 다른 문제를 만드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이르면 6월 국회에 법안을 제출할 방침이지만 처리는 불투명하다. 최근 드루킹 특검 등 굵직한 국회 현안이 산적해 있을 뿐만 아니라, 6월엔 지방선거도 예정돼 있다. 한 국회 관계자는 “하반기에는 국정감사가 있다. 보편요금제가 뒤로 밀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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