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누군가 그랬다.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한 국가의 흥망성쇠 역시 그러하다. 대한민국은 35년간의 일제강점기, 3년간의 전쟁이란 역사적 고통과 분단의 아픔, 경제적 시련을 딛고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해 2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이상, 인구 5000만 명 이상)에 가입함은 물론 세계에서 유일하게 식량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지위가 바뀌었다.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냉전시대, 국제 분업화 및 세계화의 진전 등과 같은 당시 국제 정치경제적 요건도 한국이 발전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형성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주요국으로 부상한 인도 역시 다르지 않다. 10년 만의 정권 교체를 이뤄낸 모디 정부는 전 세계의 주목 하에 2014년 출범, 2013년 ‘5대 취약국(Fragile Five)’으로 금융위기가 고조되었던 인도는 불과 2년 만에 경제성장률 7.9%를 달성했다.
‘친기업·반부패·탈관료주의’로 요약되는 ‘모디노믹스’를 앞세운 대대적인 경제개혁과 스마트시티 개발, 메이드 인 인디아(제조업 활성화), 디지털 인디아 등과 같은 범국가적 캠페인은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었고, 여당의 지속적인 주의회 선거 승리로 모디의 정권 장악력은 강화됐다.
그 결과 외국인투자는 2013-2014년 243억 달러에서 2016-2017년 435억 달러(우리나라 2017년 230억 달러)로 증가했고, 세계은행 기업환경 순위는 132위에서 100위로 수직상승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2014년 초반 20,000 초반이던 인도 대표증시 센섹스 지수는 올 초 사상 최고치인 36,283을 경신했고, 10년 국채 금리는 2014년 초반 8.8%대에서 2017년 초반 6%대로 200bp 이상 떨어졌다. 지난해 인도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은 30%로 짭짤한 수익을 올린 사람들이 제법 많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타이밍이 중요하였으니, 낮은 유가, 선진국 경기확장국면의 장기화, 중국의 부상과 미국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회귀 전략 등 국제 정치경제적 호재가 인도의 고성장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총선 1년을 앞두고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가장 큰 우려는 2014년 이후 처음으로 70달러대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국제 유가다. 인도는 세계 3위의 원유 수입국으로, 원유 수요의 80% 가까이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총 상품수입에서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만 24%, 지난 한 해 우리의 2배 가까운 1091억 달러를 원유 수입에 할애했다.
국제 유가 상승은 무역적자 확대, 그에 따른 경상수지 확대, 재정적자 확대, 물가 인상 등의 나비효과를 야기한다. 만성적인 쌍둥이(경상·재정) 적자 및 고물가와 같은 구조적 문제에 신음하던 인도는 2013년 5월 미 연준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발표로 대규모 자금이 유출되며 한때 금융위기 공포에 떤 경험이 있는지라 물가 인상과 적자 확대에 특히 민감하다.
모디 정부는 출범 직후 국정 과제로 물가 안정 및 쌍둥이적자 개선에 특히 많은 신경을 써왔다. 한데 될 사람은 뭘 해도 된다던가. 100달러대를 호가하던 국제 유가가 하락하며 2014년 후반부터 3년 동안 40~50달러대의 박스권을 유지한 것이다. 2016년 초반에는 30달러대로 내려가기도 했다.
모디 정부는 곧바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던 디젤유 보조금을 폐지, 연간 100억 달러 이상을 절약하게 되었다. 원유 수입 비용이 감소하면서 재정효율성이 개선됨은 물론 2013-2014년 GDP(국내총생산) 대비 4.5%이던 재정적자는 2017-2018년 3.2%로 축소됐다.
국제 유가 하락은 또한 인도의 무역적자 및 경상적자 축소, 물가안정에 일조했다. 2012-2013년 2000억 달러에 가까웠던 무역적자는 4년 만에 반토막 수준으로 감소했고, 같은 기간 경상수지 적자는 GDP 대비 4.8%에서 0.7%로 크게 줄어들었다. 두 자릿수를 기록하던 물가상승률은 인도 중앙은행의 물가목표치인 4%±2 내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산유국 감산 합의 및 경기회복에 따른 글로벌 원유수요 증가로 지난해 후반기부터 국제 유가가 상승세를 이어오고 있다. 여기에 미국이 이란 핵 협정 탈퇴라는 기름을 부으면서 서부 텍사스산유(WTI)는 배럴당 71달러를 넘어섰고 브렌트유는 78달러를 육박하며 2014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유가가 1달러 오를 때마다 인도 경제는 약 15억 달러의 비용 증가를 부담하게 된다.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것은 인도의 무역적자로, 2018년 1분기 무역적자는 전년 동기대비 50% 이상 증가했고 10년 국채 금리는 1년 전보다 100bp 이상 상승했다.
설상가상으로 경제 호황에 따라 금리 인상 유인이 커지면서 미 연준은 올해 3~4차례의 기준금리 인상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그간 인도의 원활한 재정운용을 뒷받침한 외국인 자금의 유출을 예고하고 있고, 유가상승으로 확대되는 쌍둥이 적자 관리가 앞으로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어디 이뿐인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인도를 향해 연일 통상압박을 가하고 있다. 인도는 미국이 지난 3월 발표한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조치로부터 면제 받지 못하였을 뿐더러,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호혜세(Reciprocal Taxes) 부과를 들먹이고 있다.
또한 미국이 지난 3월 세계무역기구(WTO)에 인도 수출보조금 정책을 공식 제소한데 이어 5월 초에는 인도의 농업 보조금을 걸고 넘어졌다. 인도의 최대 수출국은 미국으로 지난해에만 미국으로 422억 달러(총 수출의 16%)어치를 수출했으니, 미국의 통상압박은 만성 무역적자국이나 그나마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인도를 진퇴양난으로 몰아넣는 격이다.
미국의 전문직 단기취업 비자의 발급 요건과 단속 규정 강화 역시 근심거리다. 인도는 미국 취업비자제도의 최대 수혜국으로, 취업비자(H-1B)의 3분의 2를 인도인이 독식해왔음은 물론 노동허가(EAD)카드를 소지한 배우자(H-4)의 93%가 인도 출신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런데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 강화로 취업비자 심사가 대폭 강화되면서 비자 신청 반려 건수가 급증하고 있고, 전문직 취업비자(H-1B) 소지자의 배우자(H-4)들은 더 이상 미국에서 일할 수가 없게 됐다. 그간 취업비자 제도를 남용해 IT 인력을 대거 수출해 오던 인도 IT 업계는 미국 내 고용 및 투자 확대 등의 방책을 내놓고 있지만 타격을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취임 이후 첫 백악관 환영 만찬에 초대 받은 모디 총리는 포옹 등 스킨십으로 친밀감을 드러내며 트럼프와의 브로맨스를 과시했다. 지난해 11월에는 하이데라바드에서 개최된 ‘세계 기업가정신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이방카 트럼프를 맞이하기 위해 하이데라바드로 직접 날아가 이방카를 별도 면담하고 만찬을 베푸는 등 상당한 공을 들였다.
하지만 대외리스크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인도는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 맞아 죽듯 미국의 날갯짓에 요동치고 있다. 어느 정도 제어가 가능한 대내변수와 달리 국제 유가, 미국발 보호무역·통화정책 등과 같은 대외변수는 손을 쓰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총선을 1년 앞둔 상황에서 경기 부양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모디 총리의 고심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처칠 영국 수상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공포와 두려움에 떠는 영국 시민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여러 개의 슬로건을 포스터로 제작해 전국에 뿌렸다. 그 중 공식적으로 배포되지 않아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나 2000년 영국의 작은 중고서점에서 원본이 발견된 이후 전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 슬로건이 있었으니, ‘Keep calm and carry on(평정심을 유지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 지금 인도에게 가장 필요한 메시지이지 않을까.
박소연 국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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