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방위산업은 무기체계와 구성품, 관련 장비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산업이다. 한 국가의 국방력은 그 나라의 방위산업 규모와 직결된다. 특히 최근엔 총과 대포 등 재래식 무기를 넘어 정밀유도 무기와 위성, 탐지, 전투기 등에 최첨단 기술이 결합되면서, 방위산업은 국가 기술력의 가늠자가 되기도 한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방위산업 확대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 중 하나다.
우리나라도 30여 년간 정부 주도로 산업 규모를 키우고 있다. ‘세계방산시장연감’을 보면, 2015년 기준 국방예산 지출이 많은 국가 중 열 번째다. 국내 방산업체 생산량은 16조 4269억 원이며 수출실적도 적지 않다.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2017년 방산 수출액은 31억 9000만 달러(약 3조 4000억 원)로 10년 전 2억 5000만 달러와 비교해 10배 이상 증가했다.
정부는 국방 분야 연구개발(R&D) 투자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까지 미국에서 무기를 수입하거나 조립하는 수준이었지만 정부는 ‘자주국방을 위한 국내 연구개발 우선’ 원칙을 세우고 무기 국산화 정책을 펼쳤다. 방위산업 경쟁력의 핵심 지표는 무기체계 부품의 국산화이기 때문이다. 2016년 기준 한국 국방 R&D 투자 규모는 2조 5000억 원이다. 지난 2010년부터 누적 규모는 13조 원을 웃돈다. 영국과 일본, 프랑스, 독일보다 높은 수준이다.
대규모 투자에 따라 기술력도 높아졌다. 산업연구원(KIET)의 방위산업 분석 보고서를 보면, 한국 방위산업 기술경쟁력은 선진국 대비 86% 수준으로 평가된다. 산업연구원의 ‘방위산업 세부기술 경쟁력 평가’ 결과 일부 핵심 분야를 제외하고 생산기술 분야에선 선진국의 90% 수준에 근접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4·27 판문점 선언’이후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우리나라 방위산업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북한 핵미사일에 대응해 방위산업 몸집을 키워왔지만, 비핵화 분위기로 국내 시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와서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군축(군비통제) 등 당장 뚜렷한 변화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한국 방위산업은 내수시장 의존도가 큰 만큼 장기적으로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며 “앞으로는 국방 분야 몸집 불리기보다 기술력 확보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국내 방위산업체들은 해외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유일한 구매자였던 정부(국방부)만 바라보기엔 미래가 불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도 방산업체들이 수출 전략을 강화해야 할 때라고 분석한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2000년대 이후부터 세계 각국이 방위사업비를 꾸준히 늘리고 있다. 특히 아시아와 중동 등 한국 주변국도 최근 방위비 지출을 늘렸다. 남북관계를 떠나 정부와 방산업체들이 시선을 돌려야 할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정부에서 허가받은 국내 방산업체는 총 100곳이다. 이 가운데 매출과 규모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업체는 공기업 성격이 강한 한국항공우주(KAI)를 제외하면 한화와 LIG넥스원, 투톱 체제다. 두 업체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도 확보했다. 미국 군사전문매체 ‘디펜스뉴스’가 매출 기준으로 집계한 글로벌 방산기업 100곳 가운데 한화는 19위에, LIG넥스원은 44위에 이름을 올렸다. 사실상 한국 방위산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두 업체를 이끄는 수장들의 어깨가 무겁다.
# 한화 방산계열사 총사령관, 신현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
한화는 그룹 차원에서 방위사업을 주력사업으로 육성한다. 방산 계열사를 두고 각각 주력 분야를 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탄약, 유도무기, 항법·레이저를 중심으로 한 정밀타격체계 분야에 집중한다. 특히 국내 정밀탄약시장에서 점유율은 80% 이상이다. 여기에 국내에서 유일하게 항공기엔진을 생산한다. F-16, F-15K 전투기, T-50 훈련기 등의 엔진을 생산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효자 수출 품목인 K-9 자주포도 한화의 주력이다. 그 밖에 유도무기발사체계(천무·천궁·L-SAM 발사대)도 한화 제품이다.
한화는 최근 3년 사이 굵직한 인수·합병(M&A)과 그룹 재편 작업을 이어왔다. 한화의 방산 재편 작업은 2015년 삼성테크윈(현 한화테크윈), 삼성탈레스(현 한화시스템), 두산DST(현 한화디펜스)를 넘겨받은 ‘빅딜’ 이후부터 시작됐다. 그러면서 두 갈래로 나눠 사업 구조 ‘교통정리’를 해왔다. 한 갈래는 인수한 계열사와 기존 한화 계열사의 중첩 사업 재편, 다른 한 갈래는 한화테크윈의 방산 사업부문 분할 등이다.
이에 따라 한화그룹 방산계열사 지배구조는 한화그룹 지주사격인 (주)한화 아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옛 한화테크윈, 지난 4월 사명 변경)→한화시스템·한화지상방산→한화디펜스로 조정됐다. 한화그룹의 한 관계자는 “올해 4월 큰 틀에서 사업조정이 마무리됐다. 그룹 방산 계열사들이 각 분야에 특화된 역할을 맡는다”며 “그동안 한화테크윈에서 맡았던 K-9 자주포 생산을 한화지상방산이 전담하는 식으로 각 계열사의 업무를 분할,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한화그룹 방산계열사는 회사마다 대표이사가 따로 있지만, 신현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이사가 총괄 역할을 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제외한 다른 방산 계열사에서 기타비상무이사를 맡는 등의 형태로 경영을 측면 지원한다. 기타비상무이사는 회사에 상근하지 않는 이사 가운데 회사와 특수관계에 있는 등기이사를 구분하는 말이다.
한화 방산계열사에서 신 대표의 활약은 남다르다. 2015년 한화그룹이 삼성그룹 방산계열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합병후통합(PMI)팀장을 맡으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인수가 마무리된 2015년 6월 한화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총괄부사장에 선임됐고, 같은 해 12월 한화테크윈의 주력 분야인 항공·방산부문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한화그룹 방산사업 전체를 이끌어왔다.
신 대표는 지난해부터 수출을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방산 부문 매출을 2025년까지 12조 원대로 끌어올려 세계 10위권 방산기업에 오르는 게 목표다. 교두보는 지난 4월 마련했다. 미국 워싱턴DC에 지사를 열면서부터다. 국내 방산업체 가운데 전 세계에 탄약을 공급하는 풍산을 제외하고 미국에 진출한 업체는 한화가 처음이다.
한화는 미국 현지에 마케팅 거점을 두고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미국의 한 해 국방비는 2016년 기준 6110억 달러로 전 세계 국방비 36%를 차지하는 1위 시장이다. 이 가운데 워싱턴DC는 세계 방산 관계자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지역으로 꼽힌다.
그 밖에 신 대표는 미국 수출 필수 조건으로 꼽히는 현지 생산기반을 갖추기 위해 미국의 방산업체 인수와 합작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증권사 연구원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집중하는 항공엔진·부품이 미국 지사를 통해 납품되는 등 성과가 나오면 앞서 K-9 자주포 수출 등으로 거둔 실적 이상을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구원투수 나선 김지찬 LIG넥스원 대표
LIG넥스원은 정밀유도무기, 감시정찰, 지휘통제·통신 등 육해공 전 분야에서 첨단무기체계를 연구·개발·양산하는 종합방위산업체다. 2006년부터 노후화된 호크 미사일을 대체하기 위해 ‘천궁’(중거리 방공무기) 체계 개발을 시작해 양산을 진행 중이다. 천궁은 수직발사시스템을 갖춰 발사 지점을 숨길 수 있다. 호크 미사일에 비해 대 전자전 능력이 크게 향상됐고 다수의 표적과 동시에 교전이 가능하다.
올해부터 전력화가 진행될 예정인 ‘대포병탐지레이더-II’도 LIG넥스원이 개발했다. 이 레이더는 날아오는 포탄을 탐지하고 역추적해 적 화포 위치를 아군 포병부대에 전파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 밖에 로봇·무인화·사이버전 등 미래 전장과 관련된 핵심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LIG넥스원은 지난 3월 대표이사를 교체했다. 전임 대표이사였던 권희원 대표가 물러나고 김지찬 부사장이 대표로 승진했다. 2016년 말부터 LIG넥스원 경영을 맡았던 권 전 대표는 건강상 문제로 회사 경영활동을 자문하는 역할을 맡기로 하고 물러났지만, 업계 일각에선 실적 부진을 이유로 꼽기도 한다.
실제 LIG넥스원은 2008년 국내 방산업계 최대 매출을 올리는가 하면, 최초로 육·해·공 전 분야의 무기체계에 대한 통합 솔루션을 구축하는 등 업계 최고 위치에 올랐었지만 지난해 실적이 크게 악화됐다. 2017년 연결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줄었다. 매출은 1조 7613억 원을 기록해 2016년과 비교해 5.3% 줄었고, 영업이익은 43억 원으로 95.1% 줄었다.
김 대표가 새 수장에 올랐지만 부담이 클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동안의 실적 부진에 더해 앞으로의 전망도 어둡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실제 LIG넥스원은 올해 초 방위사업청에게서 장거리 레이더사업 중단을 통보받았고, 지난 4월엔 핵·미사일 조기에 탐지·추적·격파하는 작전개념인 ‘킬체인’의 눈이자 핵심 전력인 정찰위성 개발 협상이 결렬됐다. 협상권은 KAI(한국항공우주산업)가 넘겨받았다.
김 대표는 LIG넥스원 주력 사업인 정밀타격부문 유도무기 양산을 중심으로 해외시장 공략에 집중할 전망이다. LIG넥스원 매출에서 정밀유도무기(PGM)가 차지하는 비율은 74.8%에 이른다. 그 밖에 중동이나 아시아를 대상으로 중거리 지대공미사일(M-SAM)과 현궁, 전술함대지유도탄, 대포병탐지레이더-II 등의 무기양산을 본격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LIG넥스원은 중동, 중남미, 아시아 지역을 전략시장으로 정하고 수출길을 개척하고 있다.
LIG넥스원 관계자는 “수출 비중이 2016년 6.1%에서 올해 1분기 18.8%로 3배 이상 증가하면서 내수시장 부진을 어느 정도 만회했다”며 “최근 주요 수입 국가들의 관심이 늘고 있다. 앞으로도 해외 시장에 집중해 성과를 거두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방위산업 현장에서만 30년 넘게 일한 베테랑이다. LIG넥스원의 전신인 금성정밀공업에 1987년 입사해 사업관리, 전략기획 등의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유도무기와 감시정찰, 지휘통제통신, 항공 등 첨단 무기 개발과 양산 현장을 거쳤다. 특히 김 대표는 방산업계뿐 아니라 군 기관에서도 조언을 구할 정도로 역량을 인정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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