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뒤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90년 10월 3일, 서독과 동독은 하나의 국가로 통일됐다. 세계의 마지막 분단국가인 한국은 독일 통일의 과정을 어떻게든 참고할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27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으로 통일의 분위기가 달아오르는 지금 ‘비즈한국’은 창간 4주년을 맞아 독일 통일의 과정과 교훈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
[독일 통일 결정적 장면3] 남북한과 달랐던 동·서독
① 동·서독과 남북한을 가른 결정적 차이, 내전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에 의해 군정이 실시된 것은 독일과 한국이 동일하다. 한국은 미국과 소련 두 나라에 의해 군정이 실시됐지만, 독일은 미국·영국·프랑스·소련 4개국에 의해 군정이 실시됐다. 미국·영국·프랑스가 점령했던 곳은 서독, 소련이 점령했던 곳은 동독이 됐다. 이런 이유로 동독은 영토·인구가 서독의 4분의 1에서 3분의 1 수준이었다. 1990년 통일 당시 서독의 영토는 35만 6000㎢, 인구는 6260만 명이었고, 동독의 영토는 10만 8000㎢, 인구 1640만 명이었다.
특이한 것은 동독 내 베를린의 분리였다. 단순히 영토를 4등분했다면 베를린은 동독 영토가 됐겠지만, 미국·영국·프랑스는 베를린 분할을 요구했다. 그러나 소련은 1947년 ‘베를린은 모두 동독 땅’이라며 서베를린 진출입을 막았다. 1948년 6월 24일부터 1949년 5월 12일까지 이뤄진 ‘베를린 봉쇄’다. 베를린 봉쇄 기간은 한반도에서 미국·소련군이 철수하기 시작해 완전히 철수한 시기와 묘하게 겹친다.
미국은 수송기를 동원해 매일 1000회 이상 서베를린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했다. 서베를린 시민에게 필요한 물자보다 충분한 물자를 공급해 비축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당시 능력으로 미국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소련은 승전국끼리의 합의를 깨고 동독을 세웠다. 그러자 미국·영국·프랑스는 나머지 지역에 서독을 세웠다.
독일은 동·서독으로 나뉜 뒤에도 1961년 8월 베를린장벽이 들어설 때까지 삼엄한 경계가 없었다. 동독인들이 동베를린으로 와서 몰래 서베를린으로 넘어가는 일이 잦아지자 소련은 베를린장벽을 세웠다. 이후 1969년 9월 선거에서 승리한 서독 정부가 신동방정책을 펴면서 본격적인 동서독 교류가 시작됐다.
이를 통해 서독인은 동독에 연간 30일, 동독인은 서독에 연간 45일 동안 머무를 수 있게 됐다. 또한 1971년부터 동·서독 간 우편물 배달과 전화 통화가 전면 허용됐다. 1972년부터는 양측 방송 송출이 허용돼 동독 주민도 서독 TV 방송을 볼 수 있었고, 동·서독 언론사가 서로 특파원을 주재시킬 수 있게 됐다.
동·서독이 한반도와 달리 상호 교류가 가능했던 이유는 한반도와 달리 내전을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일은 동족끼리의 특별한 적대 관계없이, 제한적이지만 비교적 자유로운 교류를 병행하며 체제 경쟁을 벌였다. 반면 한반도는 한국전쟁 이후 적대적 관계로 70년을 보내며 이질적인 정체성을 가진 국가가 됐다.
② 남북한 통일을 가로막는 것들: 최저임금, 건강보험, 의무교육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 정부는 ‘평화·번영·통일’의 단계를 내세웠다. 해석하면 평화와 번영이 전제되지 않으면 통일은 실질적으로 이루기 어렵다는 뜻이다. 만약 지금 베를린장벽 붕괴 같은 일이 한반도에 벌어져 남북한 주민이 국경 없이 자유롭게 이동을 한다면 경제적으로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것이 최저임금이다. 개성공단 가동 당시 북한 노동자의 임금은 월 100달러(약 10만 8000원)수준이었다. 이들이 만약 대한민국의 법정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노동자가 된다면 북한의 모든 경제활동 인구가 남한에 와서 일자리를 구하려 할 것이다. 그 결과 남한 사회의 절반 이상은 실업자가 되고, 역으로 북한에서는 최저임금을 감당하지 못해 경제가 붕괴될 것이다.
또한 북한 국민 2500만여 명이 대한민국 건강보험 제도를 적용받아야 하는데, 예산이 늘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수급자가 50% 늘어나면 건강보험 혜택은 30% 이상 줄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한 국민이 모두 대한민국 출산·육아·교육제도의 혜택을 받거나, 기초생활수급자 지원 또는 65세 이상에게 주어지는 기초연금 혜택을 받아야 한다면 한국 정부는 몇 개월 내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게 될지도 모른다.
독일 통일 당시 서독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2만 558달러(2220만 원), 동독은 9703달러(1038만 원)였다. 서독이 동독보다 2.11배 높았다. 인구는 서독 6260만 명, 동독 1640만 명으로, 서독이 3.8배 많았다. 5형제 중 4명의 형제가 소득이 절반인 동생 한 명을 부양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 경우 4형제가 각자 월급의 10%만 떼어 막내에게 주면 막내도 비슷한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2017년 한국의 1인당 GDP는 2만 9891달러(3228만 원), 북한은 583달러(63만 원)다. 북한의 국민소득은 추정치로 발표기관마다 달라 비교 자체가 불가하지만 한국의 40분의 1보다도 낮다. 인구는 남한 5174만 명, 북한 2561만 명으로 남한이 북한의 약 2배다. 3형제 중 2명의 형제가 소득이 거의 없는 동생 한 명을 부양해야 하는 셈이다. 이 경우 두 형제는 소득의 30%를 떼어 막내에게 주어야 모든 형제가 비슷한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남북이 적대적 관계를 종료하더라도 독일처럼 하나의 국가가 되기 위해선 ‘번영’의 단계, 즉 북한이 남한과 비슷한 수준의 소득수준까지 경제가 성장해야 한다.
③ 김정은이 생각한다는 베트남식 개방이란?
삼성전자는 1995년 이후 지금까지 베트남에 총 55억 달러(5조 9400억 원)를 투자해 휴대폰 생산 1·2공장, 가전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기는 12억 3000만 달러(1조 3284억 원)를 투자해 휴대폰 부품 생산공장을 운영 중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10억 달러(1조 800억 원)를 투자해 휴대폰 디스플레이 모듈 생산공장을 2020년 완공할 예정이다. 2016년 베트남 수출액 1759억 달러(189조 9720억 원) 중 삼성의 기여도는 21%에 이른다.
LG전자도 2017년까지 5억 1000만 달러(5508억 원), 2023년까지 9억 9000만 달러(1조 692억 원)의 2단계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삼성전자에 법인세 4년 면제, 12년째까지 5%, 이후 10%로 세제 지원을 제공했다. 또한 박닌성 휴대폰 1공장과 타이응우옌성 2공장을 잇는 고속도로를 건설해주고, 수출세와 토지가격 우대를 제공했다. 삼성전자의 베트남 휴대폰 생산공장에는 약 10만 명의 베트남 직원이 고용돼 있다.
2008년 연 1000달러(108만 원)를 돌파한 베트남의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2500달러(270만 원)를 넘어섰다. 10년 사이 2.5배가량 소득수준이 성장한 셈이다.
베트남이 삼성전자의 생산기지가 된 이유는 비교적 가까운 데다 시차가 거의 없어 한국 본사와 업무하는 데 용이하고, 인건비가 저렴하다는 점이 작용했다. 무엇보다 공산당 1당 독재다 보니 노사분규를 국가가 막아 준다는 점이 기업으로선 매력적으로 볼 수 있다.
한국 기업이 베트남을 선택한 것과 동일한 이유를 북한이 제공할 수 있다. 더구나 육로로 이동 가능하며 언어가 통하기 때문에 업무 효율성이 높아, 대기업의 대규모 생산공장이 아닌 중소기업의 소규모 공장도 운영 가능하다. 또한 이러한 이점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중국 등의 기업들에게도 매력적인 조건이다. 즉, 북한 전역을 개성공단화하면 북한의 소득수준을 빠른 속도로 끌어올릴 수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모델을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베트남 사례에서 보듯, 개발도상국이 국민소득 1000달러(108만 원)를 두 배로 늘리는 데는 1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 북한이 한국의 국민소득을 따라잡으려면 수십 년이 걸릴 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는 북한이 독자적인 최저임금, 교육제도, 건강보험, 연금제도를 운영하는 수밖에 없다.
모든 법체계가 동일하게 적용되는 ‘1국’이 아니라 미국, 중국, 유럽, 일본처럼 현재 한국인이 자유롭게 비자 없이 90일 동안 머무를 수 있는 ‘여행자유국가’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평화·번영’까지가 한국인의 머릿속에 그려온 ‘통일’일 수도 있다. 1국 통합으로서의 통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딜지 모른다.
우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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