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옥류관에 대한 신격화, 그러니까 옥류관 냉면에 대한 ‘냉면 토테미즘’을 애써 에둘러 규탄했더니 면스플레이너들 중 일부가 몹시 화를 내는 모양이었다. “서울의 평양냉면이 평양의 ‘전통’과 원형’을 더 잘 보존한 것”이라던가, “평양의 평양냉면이 수령님 교시에 의해 더 많이 바뀌었다”던가 하는 항의가 돌아왔다. “나는 원래 옥류관이 그런 스타일인 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넌 정상회담 하니까 이제 알았느냐! 냉면도 모르네!”라는 류도. 2차 면스플레인이었다.
“고깃집 후식 냉면이나 먹는 것들이 그 순수성을 뭘 안다고…”라며 아예 ‘덜 떨어진 X소리’ 취급하는 일도 있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고깃집 후식 냉면’을 좋아하며 즐기던 이들까지 다 들고 일어나 평양냉면 전문점 앞에 줄을 늘어서며 인생 처음으로 냉면을 먹어보고(또는 먹어보지도 않고) 서울의 평양냉면과 면스플레인 전체를 깎아내리는 모양새까지 왔다. 다수가 그렇게 몰아가니 뭇 ‘냉면요정’들과 면스플레이너들이 화가 날 만도 하다.
졸문이 문제이고, 오독은 문제가 아니다. 평양냉면을 통째로 싸잡아 비웃은 셈으로 비화되었으니 미안하다. 그 마음 알 것 같다. 나 역시 냉면요정이 되기 전, 냉면을 얼마 먹지 않아 흔한 ‘냉면꼰대’에 불과했을 때까지만 해도 거침없는 면스플레이너였다.
남들을 죄다 엉터리라 치부하는 ‘훈장질’을 하며 ‘평양냉면의 전통을 잘 알고 드시는 고매하고 미각 발달한 나님’을 높이려는 유치한 마음을 품고 산 바 있다. 그야말로 덜 떨어진 흑역사다. 남이사 비빔냉면을 먹든 식초를 치든 신경 쓸 틈 없이 내 냉면이나 바쁘게 마시게 되면서는 냉면 훈장질에도 무관심해졌다. 네네, 마음대로들 드세요. 나는 나 먹기가 바쁘다.
그런데 좀 묻자. 평양냉면, 또는 냉면의 원형, 아니면 정통-뭐라고 불러도 좋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고종이 겨울 밤 친구 삼던 그 냉면이면 족한가? 식품공학의 쾌거를 이룬 ‘아지노모토’가 대대적으로 마케팅을 하며 냉면 육수에 도움 된다고 했던 일제시대의 그 배달 냉면이면 될까? 아니면 한국전쟁 발발로 피난 온 할머니 할아버지 기억 속의 그 평양냉면이어야 충분할까?
입장과 방점에 따라 주장과 해석이 다를 것이다. 나는 이에 대해 답을 내지 않으려 한다. 스스로 붙들 수 있는 근거가 없어서다. 누군가의 과장되고 왜곡됐을 수 있는 기억이고, 어느 기자인가의 주장과 해석이 들어간 신문기사 쪼가리이고, 곰팡내 나는 책 몇 권을 100% 믿고 정의하기엔 역사는 너무나 팩트이고 항상 변화하는 유기체다. 음식의 변화 앞에서 원형과 정통이란 누구도 정답과 오답을 가를 수 없는 문제다. 남북교류가 실현되면 그때 가서 공신력 있는 음식문화사학자들이 뜻을 모아 규정해줄 문제로 여긴다.
다만 한국전쟁 발발 직전의 평양냉면이라면 이제까지 70여 년간 서울의 우리 곁에서 매우 값진 일을 해줬다고 하겠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평양냉면은 실향민 가족을 둔 집안의 내력 입맛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가 북에 둔 고향산천과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아이콘이 냉면이었던 것이다.
요즘에야 냉면집마다 20~30대 검은 머리들이 절반은 섞여 있지만, 그때만 해도 검은 머리를 하고 발을 들이기가 어색할 정도로 어르신들이 동향 친구들과 모이는 사랑방 같은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2000년대까지도 이어졌다. 그래서 몇 되지 않는 노포 냉면집들만으로 평양냉면 공급이 충분했고, 지금도 오후 뜸한 시간에 도심 냉면집을 가면 여전한 풍경이기도 하다.
면스플레인 이전의 ‘냉부심’은 그래서 “우리 집안은 북에서 와서…”라는 자기 소개와 “우리 할아버지가 냉면 드시는 방법은 말이지…”라는 설명으로부터 출발하기도 했다. 내가 아는 이북계 집안의 그 어떤 자제도 냉면 모르는 사람들을 그처럼 업신여기지 않았다. 점잖은 냉면 가풍이다.
흑역사 속의 나 같은 어설픈 냉면꼰대들이 등장하고 면스플레인이 옹호와 지탄으로 파를 나누던 때는 가수 존 박이 평양냉면의 아이콘이 되고 2세대로 통칭되는 정인면옥, 능라 등의 냉면집들이 차례로 등장하며 냉면이 힙스터의 원정 음식으로 새삼스러운 관심을 받았던 때와 시기를 같이한다. 2010년대 초반의 일이다. ‘냉면은 이래야 한다’는 강박의 잔치였다.
아무튼 그 잔치는 붐으로 이어졌고, 그 붐이 지속된 덕분에 최근에 이르러선 평양냉면 전문점이 서울 곳곳에 풍부하게 공급되고 있다. 곳곳마다 개성도 내세우고 다양화되는 것이 참 보기 좋고, 무엇보다도 언제 어디서나 냉면 먹기가 편리해졌다.
그런데 서울의 평양냉면을 원형으로 정의하며 박물관 전시품처럼 숭앙하는 것 또한 불합리한 일이다. 어떻게 음식이 안 변하니? 분단 이후 70년이 흘렀다. 그 사이 일소가 사라졌고, 발전된 축산기술이 여러 번 도입됐다. 꼴을 베고 여물을 끓여 먹이던 소가 이제는 규격화된 곡물사료를 먹고 근육 속에 촘촘한 지방을 쳐 나간다.
메밀 경작 면적은 축소되어 이제 냉면집에서 다 같이 사용할 정도로 충분한 한국산 메밀이 나오지도 않는다. 평양냉면 전문점 중 국내산 메밀을 쓰는 곳은 매우 제한된 수다. 중국(과 몽골)이나 미국에서 메밀을 들여오는 실정이다. (아, 제발 수입산은 질이 나쁘다는 얘기는 이제 좀 그만하자) 중요한 부재료인 무 역시 시절이 바뀌는 동안에 널리 재배되는 품종이 변화했고, 달걀도 이제는 첨단의 ‘공장’에서 생산된다.
재료가 달라졌는데, 그 맛이 같을 수가 없다. 서울이 평양냉면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주장은 일종의 집착이다. 게다가 서울 안 평양냉면집들끼리도 저마다 확고한 개성이 있다. 같은 것은 그 형식에 불과하다. 허나 재료가 바뀐 만큼 미세한 레시피 조정은 불가피했을 일이다.
옥류관을 대표로 하는 평양의 평양냉면이 가진 형식이 어떤 이유에선가 파격적으로 변화했다는 데엔 이의가 없다. 그 와중에 또, 평양의 다른 냉면집들 역시 ‘수령님의 레시피’를 어떤 식으로든 내재화한 조금씩 다른 냉면을 만든다는 이야기도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서울의 냉면은 전통을 계승한 진짜 평양냉면이고, 평양의 냉면은 전통을 벗어난 가짜 평양냉면인가? 평양의 평양냉면 맛이 남측의 기억, 또는 망상과 완연히 달라진 것을 원형과 정통의 파괴라고 선언해야 할까? 그러면 속이 시원할까?
‘옥류관 냉면이 진짜’라는 것이 무리수인 만큼 ‘서울의 평양냉면이 진짜’라는 것도 무리수다. 전통, 진짜에 대한 강박과 모난 우월감이 면스플레인이라는 괴물을 낳았다는 걸 잊었나. 옥류관을 통해, 좀 단순화해서 말하긴 했지만 면스플레이너들에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더 이상 갇혀 있지 말라는 것이었다.
육수에 조미료 좀 넣었다고 ‘빼액’, 간장 좀 들어갔다고 ‘질색팔색’, 면 좀 자른다고 무시, 순면이 아니라고 불평. 아, 심지어 젓가락 갖고도 시비를 건다던데 이거 그만하자는 거다. 그래 봐야 메밀 면에 고기 육수, 어떤 변형이 주어져도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는 없는 명확한 ‘냉면’이다. 서울이나 평양이나 평양냉면은 시절에 맞춰 바뀌었고, 앞으로도 바뀌어나갈 것이다. 어떤 변화의 폭을 수용하지 못하게 될 때 사람은 노욕을 품게 되고 꼰대가 되어 세상과 겉돌게 된다.
언어가 역사성을 갖듯이, 음식도 역사성을 띤다. 진짜란 없다. 유순하게 바라볼 일이다. 강산이 일곱 번 변했는데, 냉면도 변하게 내버려 두자. 비록 출발은 평양이었을지언정 이제는 서울의 식문화로 완전히 편입된 ‘서울냉면’들이 우리 속에서 변모해오며 가진 다양성과 자연스러운 변화, 독창적 변형들에 주목하고 소중히 인정했으면 한다.
무엇보다도 옥류관의 붉은 면과 ‘다대기’를 보며, 비록 동공에 지진은 날지라도 그들이 가진 평양냉면에 대한 자부심도 존중해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세계를 무대로 한 농담을 짤 때 평양냉면을 소재 삼은 것부터가 자부심의 표현이다.
평양 사람들이 아끼는 평양냉면이 그렇다는데, 순순하게 좀 받아들여 주면 안 될까. 그들이 겪은 변화를 부정하고 원망하고 힐난해봐야 지나간 냉면은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인정과 이해. 그것이 평양의 낯선 평양냉면을 소외시키지 않는 법이고, 분단된 그들의 과거를 현재에서 만나 친해지는 방법이다.
‘냉면요정’ 이해림은? 패션 잡지 피처 에디터로 오래 일하다 탐식 적성을 살려 전업했다. 2015년부터 전업 푸드 라이터로 ‘한국일보’ 등 각종 매체에 글을 싣고 있다. 몇 권의 책을 준비 중이며, ‘수요미식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도 먹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고 있으며, 크고 작은 음식 관련 행사, 콘텐츠 기획과 강연도 부지런히 하고 있다. 퇴근 후에는 먹으면서 먹는 얘기하는 먹보들과의 술자리를 즐긴다.
이해림 푸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이해림 탐식다반사]
남북정상회담이 끝낸 또 하나의 전쟁 '평양냉면스플레인'
· [이해림 탐식다반사]
종이 먼지와 기름때 골목의 '만나손칼국수'
· [이해림 탐식다반사]
'그냥 하던 대로 꾸역꾸역' 종점숯불갈비
· [이해림 탐식다반사]
'한 입에 10만 원' 국산 양식 철갑상어 캐비아의 호방함
· [이해림 탐식다반사]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김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