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할부금융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업계에 지각 변동이 일고 있다. 자동차 할부금융은 전체 할부금융 중 90%에 달할 정도로 시장 파이가 커졌다. 그동안 시장을 싹쓸이하다시피해온 캐피탈 업계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새상품으로 무장한 은행 보험 카드사들이 속속 가세하면서 업계 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또 상호저축은행법 시행령 개정으로 대형 저축은행도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어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금융사들이 너도나도 자동차할부금융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저금리 시대에 좋은 ‘먹거리’이기 때문. 금융사로는 최초로 자동차 금융에 진출한 신한은행의 경우, 3년만에 1조 3500억 원에 달하는 매출을 기록하는 등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캐피탈업계 금리 경쟁에서 밀려
반면 영업 활동의 절반 이상을 자동차 할부금융에 의존하고 있는 캐피탈업계는 초상집 분위기다. 이는 캐피탈업사가 은행에 비해 자금조달에 불리한 구조 때문이다. 은행 및 보험사의 평균 조달금리는 2% 중반, 캐피탈사의 조달금리는 평균 3% 중반이다. 금리 경쟁에서 밀리다보니 캐피탈사의 수익률은 2년 연속 하락하고 있다. 영업자산 증가율도 지난 2011년 10.2%에서 2012년 7.9%, 2013년 4.5%로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현대캐피탈의 경우, 현대차 할부금융 점유율이 3년만에 12% 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이렇게 되자 다급해진 현대차그룹이 삼성을 상대로 금융당국에 판매 금지 조치를 요구하는 일도 벌어졌다. 지금까지 삼성과 현대차가 특정 현안을 놓고 싸운 일은 드물었다. 전말은 이렇다.
수년전까지만 해도 현대차와 기아차를 사는 고객 대부분은 현대캐피탈과 할부 계약을 맺었다. 2010년 삼성카드가 기발한 상품을 내놓자 사정이 달라졌다. 삼성카드로 결제하면 가맹점 수수료 2% 중 절반을 제휴 캐피털사를 통해 고객에 돌려준 것. 이 상품으로 삼성카드는 대박이 났다.
졸지에 고객을 빼앗긴 현대캐피탈은 삼성카드가 내놓은 ‘복합금융상품’이 시장 교란이라며 금융당국에 판매금지를 요청했다. 현대캐피탈 주장의 요지는 ▲삼성카드의 할인 여력은 현대차가 지급하는 가맹점 수수료에서 나오는 만큼 현대차의 돈으로 엉뚱한 기업이 할인해주는 황당한 행태다 ▲여신전문기관인 카드사가 대손비용 없이 중계 수수료만 챙기는 것으로 이는 시장 교란행위에 해당한다삼성카드를 비롯, 제휴 캐피털사들의 주장은 다르다. 이들은 “현대캐피탈이 지금까지 자동차 할부금융시장을 독점해온 것은 현대차그룹의 계열사 ‘일감몰아주기’ 때문이며 고객 입장에서는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불공정한 거래다. 반면 카드사의 복합할인상품은 할인 혜택을 줄 수 있어 고객에 오히려 유리한 상품”이라고 주장한다.
소비자 선택 폭은 넓어져 유리
금융당국은 이 문제를 일단 토론회에 붙이겠다는 생각이지만 현대캐피탈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무엇보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보험사 카드사의 할부금융상품으로 선택의 폭이 넓어져 유리하다. 실제로 금융사들의 자동차 금융상품은 2~3년전부터 다양해졌다.
신한은행의 경우, 2010년 `신한MyCar 대출`을 선보인 후 2012년 중고차 구입 고객을 대상으로 한 `신한MyCar 중고차대출`을 출시했다. 또 타 금융회사에서 고금리 자동차 할부금융을 이용하는 고객이 저금리로 갈아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신한MyCar 대환대출`(2013년) 상품을 내놓은 한편 개인택시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마이카 택시행복대출`도 내놓았다. 올해 들어선 화물자동차 차주를 위한 `화물자동차 대출`을 선보이는 등 다우리은행과 국민은행도 각각 ‘우리V오토론’과 ‘KB 와이즈 오토론’을 출시했으며 부산은행도 올 3월 ‘BS차드림 오토론’ 시리즈를 내놓고 본격적인 영업활동에 들어간 상태다.
보험업계 자동차 할부금융 선두주자는 삼성화재다. 삼성화재는 지난해 `애니카 자동차대출`을 출시하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애니카 자동차대출은 서울보증보험의 보증서를 끼고 돈을 빌려주는 `오토론(auto loan)`과 유사한 상품이다. 금리는 최저 5%, 대출한도는 최대 5000만 원이며 중개수수료나 인지세 등 추가 비용은 없다. 하지만 신차나 차량등록일 2년 이내의 차량까지만 대출이 가능하고 은행권보다 다소 대출금리가 높은 점(신차 기준)은 단점이다. 그러나 기존에 자동차 보험을 취급하고 있어 고객에 대한 접근성은 유리한 편이다.
카드사 중에서는 삼성카드가 가장 먼저 자동차할부금융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어 신한카드가 시장에 진출했고 롯데카드는 오는 7월부터 재진출한다. 카드사들의 잇단 자동차 금융 진출은 카드업에 대한 규제 강화로 수익성이 악화된데 따른 대안 모색 성격이 크다.롯데카드는 현재 전산망 구축과 상품 런칭까지 마친 상태로, 수도권을 중심으로 종합 CA(Car Agency)들과의 제휴선을 확대하고 있다.
롯데카드 관계자는 “롯데카드 할부금융은 일반 승용차보다 트럭이나 중장비 등 상용차 부문에 주력할 계획이다. 틈새시장 전략으로 롯데쇼핑과 하이마트 등 유통 부문과 연계해 할부금융 상품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쟁 밀린 캐피탈업계 해외로 눈돌려
이처럼 은행 보험 카드사들의 잇단 공세에 기존 캐피탈업계는 해외로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 현대캐피탈 경우, 미국 중국 유럽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 9개국에 진출한 상태이며 현지인의 눈높이에 맞는 특화된 금융상품을 개발해 제공해 안정적인 실적을 거두고 있다. 현대캐피탈은 해외자산이 2008년 5조 3000억 원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23조 9000억 원으로 4배 이상 급증했다. 영업이익은 2008년 55억 원에서 지난해 4118억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