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국방부가 대북확성기 납품비리 의혹을 받는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비리 의혹이 불거진 지 2년여 만이다. 다만 소송은 비리 업체가 부당하게 챙긴 금액을 환수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관측되면서, 낭비된 혈세를 온전히 되찾지 못하는 ‘반쪽짜리’ 소송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방부는 ‘4·27 판문점 선언’ 이행의 첫 단계로 지난 1일부터 대북확성기를 철거 중이다. 경기도 파주시 민간인통제구역 내 설치된 대북확성기를 시작으로 그동안 운용하던 확성기를 모두 철거한다. 완전 철거까지는 10여 일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철거된 확성기는 사업을 추진하고 작전을 운용한 국군 심리전단에 당분간 보관될 예정이다.
# 국방부, 대북확성기 비리 업체 상대로 소송 제기한다
철거 작업과 별개로 국방부는 대북확성기 납품 비리 의혹과 관련해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 4월 30일 ‘비즈한국’과의 통화에서 “(대북확성기 납품 비리 의혹을 받는 업체를 상대로) 국방부에서 별도의 소송을 하기로 했다. 관련 부서들이 협조해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국방부의 다른 관계자도 지난 1일 통화에서 “3월 중순부터 법리 검토 등에 착수했다. 조만간 세부 내용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국방부는 아직까지 소송의 구체적인 내용과 일정은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북확성기 비리 의혹이 최근 대부분 사실로 확인된 만큼, 국방부가 자체적으로 강력 대응에 나섰다는 게 군 안팎의 분석이다. 그동안 국방부는 대북확성기 비리 사건에 별다른 조치나 대응을 하지 않았다. 입찰 비리 의혹은 사업 초기 단계인 2016년 4월 제기됐지만, 이에 대한 군 검찰, 감사원, 민간 검찰 등의 수사와 조사 등이 2년여 동안 차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실제 국방부는 그동안 ‘비즈한국’ 취재과정에서 “외부 기관에서 사실 확인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답변 외에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국방부가 비리 의혹을 받는 업체를 상대로 제기할 소송은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이 확실하다는 게 군 안팎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는 업체가 비리를 통해 부당하게 챙긴 돈을 국방부가 다시 돌려받는 소송으로, 일종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이다.
그동안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등은 군납비리 사건이 사실로 확인되면 통상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대북확성기 납품비리 사건도 특혜와 국고손실, ‘군피아’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전형적인 군납비리 사건으로 분류된다. 대북확성기 계약 특수조건 12조에도 “업체가 부당이득을 취한 것이 적발될 경우 부당이득금과 그에 상당하는 가산금을 환수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 성능미달 의혹 빠져 ‘반쪽짜리 소송’ 지적도
반면 이번 국방부의 소송이 ‘반쪽짜리’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만으로는 낭비된 혈세를 온전히 되찾지 못한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군 안팎에선 “국방부가 실수를 가리기 위해 편법을 쓴다”는 강도 높은 지적도 나온다.
군 검찰, 감사원, 서울중앙지검 수사와 조사 내용을 모두 종합하면, 특혜를 받고 선정된 업체 대표와 브로커, 현역 군인 등이 공모해 가격을 부풀렸고 이들이 이 과정에서 챙긴 돈은 총 사업비 180억여 원의 절반에 가까운 약 80억 원에 달한다. 부당이득금 환수 청구 소송은 이 80억 원만을 대상으로 한다.
문제는 나머지 100억여 원이다. 이 금액은 모두 확성기 제작, 도입 등 ‘장비 값’으로 투입됐는데, 납품된 확성기 성능이 군이 요구한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어서다.
이 의혹은 감사원 감사에서도 일부 사실로 드러났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2일 ‘비즈한국’과의 통화에서 “감사원 결과 보고서를 보면, 국방부 전략조정평가과는 2017년 2월, 5월, 8월 세 차례에 걸쳐 기동형 확성기를 대상으로 성능 평가를 했다. 총 19번의 성능 평가에서 2번만 통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국방부가 100억여 원을 들여 ‘불량품’을 샀고, 이를 알면서도 ‘판문점 선언’에 따라 철거하기 직전까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국방부는 계약조건에 따른 정식 절차도 건너뛰고 곧바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준비 중이다. ‘대북확성기 제조·설치 계약 특수조건 제13조’에 따르면 물품 하자보수기간은 2년이며 하자보수 또는 대체납품 요구에도 불구하고 하자보증이 이뤄지지 않으면 계약을 해제하고 계약금을 모두 되찾을 수 있다.
대북확성기 납품은 2016년 11월 말에 이뤄졌다. 보수기간은 2018년 11월 말(납품일로부터 2년)까지다. 소송 없이도 하자보수 절차 등을 통해 낭비된 혈세 모두 되찾을 수 있지만 이 절차는 국방부 검토 대상에 오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성능미달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공개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반면 앞서의 이철희 의원실 관계자는 “국방부는 대북확성기 성능요구서(ROC) 자체가 모호하며, 성능미달로 단정하기 어려워 검토 중이라는 구두 보고를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에서 받았다”고 말했다.
대북확성기 납품비리 사건은 국민권익위원회에서도 다뤄질 전망이다. 2016년부터 이 사업에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왔던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은 지난 1일 권익위에 국방부 국군심리전단장 육군대령과 국방부 법무관리관을 상대로 부패행위 신고서를 접수했다. 내용은 ‘성능미달 대북확성기에 대한 하자처리 미이행으로 인한 국고손실 방치’다.
김 소장은 “대북확성기 사업은 특정업체 등이 80억 원 이상의 부당한 이익을 챙겨 막대한 국고가 손실됐고, 납품된 이동형 확성기는 성능요구조건도 충족하지 못하는 등의 문제점이 확인됐다”며 “(국방부가) 성능요구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확성기에 대해 하자처리 절차 진행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이미 발생된 국가의 손해를 만회해야 할 당연한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북확성기 사업은 박근혜 정부 역점 사업으로, 북한 전방부대에 대한 심리작전을 강화하기 위해 고정형 확성기 24대와 기동형 확성기 16대를 도입했다. 계약금액은 180억여 원. 사업을 대규모로 확대 추진하는 과정에서 브로커가 개입해 성능이 떨어지는 업체 제품이 선정되는 등 비리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군 검찰 수사 이후 경리담당 부사관 한 명이 벌금형을 선고받는 데 그쳐 국회의 요청으로 감사원 감사가 이뤄졌고, 감사 결과에서 사업전반에서 비리가 있었던 사실이 드러나 감사원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방위사업수사부에 고발했다.
문상현 기자
moon@bizhankook.com[핫클릭]
·
남북정상회담 해외 네티즌 반응, '남북 다 못 믿는다'고 한 나라는?
·
사드 부지 '공시지가' 둘러싼 국토부와 성주군의 엇갈리는 시선
·
국방부, 대북확성기 비리 알고도 침묵 정황 자료 단독입수
·
군 출신 전직 국회의원 연루 의혹…끝 모를 대북확성기 방산비리
·
[단독] 안민석 의원 "박근혜 당선 직후 최순실 일가에 1200억 원 입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