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무술로 우울증을 치료하는 곳이 있다. CTOC(Challenge To Change)라는 사회적기업이다. 궁금증이 일었다. 무술을 통한 ‘멘털케어’라면 타격의 쾌감으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원리일까? 장은하 CTOC 대표(31) 인터뷰에 앞서 직접 체험해보기로 했다.
서울 성동구 서울숲 부근 작은 체육관이었다. 짧은 머리에 큰 키, 우락부락한 팔뚝을 가진 체육관 원장이 활짝 웃으며 기자를 맞이했다. 체육관 내부는 10평 남짓한 공간에 매트가 깔려 있었고 한쪽 벽면은 전체가 거울이었다. 샌드백이나 기타 타격할 수 있는 운동 보조기구는 매트 바깥으로 치워진 상태였다. 잘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매트 위에 수련 중인 두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 앳된 얼굴이었다. “운동 과정에 참여하는 건 좋지만 수련생과 접촉하지 말아달라”는 당부가 있었기에 말을 걸진 못했다. 남자는 20대 중반에 미국 아이비리그 명문대로 유명한 스탠포드를 나왔고, 여자는 그보다 어리며 고위공무원 자녀라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됐다.
“CTOC에는 아이비리그, 서울대 등 국내 최고 엘리트와 그 부모들한테 가장 많이 문의가 옵니다. 집안 환경이 그런 사람은 정신적 압박감을 많이 느끼는 데다, 해외생활을 하면서 무술이나 운동으로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 익숙해져서 거부감이 없는 것 같아요.”
장은하 대표의 말이다. 그 역시 소위 ‘엄친딸’이다. 명문으로 꼽히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와 국내 굴지의 통신 대기업에 입사했다. 한때는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주의였다. 20대 후반에 연봉이 7000만 원에 달했지만 회사 생활 5년 만에 몸과 마음이 망가졌다. 무기력이 온몸을 감싸고 지하철 계단을 오른 뒤 쓰러지기 일쑤였다.
“정신과부터 세라피까지 안 해본 게 없어요. 병원에 가면 바로 환자 취급을 하고 약 처방해주니까 더 자존감이 떨어졌고요. 당시 신체나이가 58세로 나왔어요. 정신은 내 맘대로 안 되니 몸이라도 건강해지자는 생각에 운동을 시작했죠. 몸이 좋아지니까 자연스레 정신도 맑아지고 사회생활이 풀렸어요. 그러고나니 저와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2016년 7월, 그동안 모은 돈을 쏟아 체육관을 차렸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우울증 환자 600만 명, 그러나 정신과 전문의는 고작 3000여 명. 우울증 환자가 질 좋은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게 국내 실정이다. 장 대표는 이 사회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하고 싶었다.
“몸에 최대한 힘을 빼고 느리게 움직이세요.”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수련 중인 두 사람 사이에 낀 기자에게 원장이 말했다. 중국 무술인 태극권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무릎을 살짝 굽히고 팔을 들어 올려 가상의 항아리를 끌어안았다. 10분쯤 지났을까. 이마에 맺힌 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다. 함께 수업을 듣는 두 남녀는 미동도 없었다.
느리게 자세를 바꿔가며 호흡에 집중했다. 정지 동작 6개를 끝내고 나니 1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5분여 쉬는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타격의 시간이 왔다. 벽에 달린 샌드백을 온 힘을 다해 때릴 기회는 오지 않았다. 대신 타격을 흡수하는 글러브를 끼고 남자 수련생 손맛을 봤다. 남자 수련생은 가만히 선 채로 손등으로 가볍고 빠르게 글러브를 쳤다. 착착 감기는 소리가 경쾌했다. 이 남자 수련생은 초등학생 때 혼자 미국으로 건너가 유학생활을 견뎠다. 후유증으로 남은 그 기억을 씻어내고 싶어 운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이번엔 여자 수련생 차례였다. 손등이 글러브를 닿기 전에 멈칫거렸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세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손을 끝까지 뻗지 못했다. 이를 지켜보던 원장은 “무술을 하다 보면 그 사람 심리가 드러난다”며 “사람을 어려워하고 무언가 억눌린 경험이 있는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멈칫하는 경우가 많다. 저걸 극복하면 삶도 바뀐다. 우리는 회원 한 명 한 명을 자세히 관찰해 이런 부분을 짚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한 시간이 더 지나 수업이 끝났다. 격렬하게 움직이지 않았지만 숨이 차고 온몸은 땀범벅이었다. 힘을 빼고 호흡에 집중한 것만으로 생긴 결과였다. 두 시간 동안 온몸에 힘을 뺀 상태를 유지하다 보니 평소 힘을 쥐어 짜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몸이 경직되니 신경이 곤두섰다.
장 대표는 “무술을 통해 행동반응 검사를 하면 수련자 내면의 성향이 신체적 반응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단시간에 파악할 수 있다”며 “심박수를 70% 이상 끌어올리는 유산소 운동, 특히 두뇌를 복잡하게 써야 하는 운동이 우울증 극복에 된다는 해외 논문이 있다. 권투가 대표적이지만 권투뿐 아니라 운동으로 정신 건강을 챙긴다는 개념은 해외에서는 아주 흔하면서도 권장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CTOC는 웨이트 트레이닝, 복싱, 무에타이, 주짓수, 레슬링, 태극권, 요가 등 12가지 종목 수업을 준비해뒀다. 개인 성향과 흥미를 파악해 맞춤 운동을 제시한다. 전문 상담사를 두고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정신과 병원과 협력해 필요한 경우 약물치료를 연계하는 역할도 한다.
현재 회원은 50여 명. 정부 지자체나 군부대 강연도 나간다. 효과가 입소문을 타다 보니 지방에서 문의하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장 대표는 “매출을 정확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올해는 월 1억 원을 목표로 잡고 있다”고 밝혔다.
사업을 진행할수록 장 대표는 최상의 서비스를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제공하고 싶은 욕심이 크다. 서울시 정신건강증진센터 등 정부 기관과 협력해 취약계층 대상으로 무료 프로그램을 진행해봤지만 모집이 쉽지 않았다. 생계를 유지하기 바쁘고 마음에 여유가 없는 사람이 제 발로 센터를 찾는 일은 드물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온라인 콘텐츠를 만드는 중이다.
“아직 부족하죠. CTOC를 찾는 사람은 절박한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정신과 치료나 기존 방법을 다 시도해보고 나서 와요. 모두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우리와 안 맞는 고객들도 있어요. 다른 상담기관과 연계해 다른 방법을 찾아주고 있지만 아직 완벽하지 않아서 안타까워요. 일반 병원 치료처럼 약물로 처방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 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큰 울타리를 만들고 싶어요.”
장 대표가 가장 안타까운 건 정신질환이 터부시되는 국내 환경이다. 그는 “한국은 유일하게 OECD 국가 중 정신질환 코드를 갖고 있으면 120여 개 직업의 자격을 발탁하는 나라”라며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정신질환이 생길 수 있다. 이때 환자가 아니라 당당히 돈을 내고 서비스를 제공 받는 고객이 되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눈시울을 붉히던 장 대표는 “국내에는 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큰 울타리가 만들어져 있지 않다. CTOC는 울타리 가운데 핀 꽃이 되기보다 큰 울타리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기업이 되고 싶다”고 했다.
박현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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