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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왱알앵알] 애국의 시대, 국뽕의 시대

남북정상회담을 보며 애국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해석 주목

2018.04.30(Mon) 15:12:22

[비즈한국] 기성세대에게 ‘애국’이란 경건하고, 장엄하며, 숭고하다. 때에 따라서는 자기희생도 감내해야 한다. 우리 사회를 이루는 보편적 가치이자, 소속감을 부여하는 시민적 미덕이다.

 

애국하지 않는다는 말은 불경하고 반사회적이며 때로는 죄악과도 같다.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교육 혹은 세뇌 받은 결과다. 그것은 모두의 뇌리 속에 국민학교 교정의 이승복 어린이 동상처럼 언제나 우뚝 서 있다.

 

반공 이데올로기 시대, 애국은 마치 온 나라를 감싸는 보호막과도 같았다. 북한을 적대시하고 공산주의를 배격하는 것이 애국이다. 정부 정책을 반대하지 않고, 파업을 하지 않고, 집회 결사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애국하는 국민의 기본 소양이다. 유독 애국심이 없는 이들은 잡혀가거나 고문당하거나 혹은 행방불명됐다.

 

애국은 그 누구도 반대할 수 없다. 애국이 지금까지 정치 선전 구호로 사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주 시민의 반대편에 애국 시민이 있고, 아예 애국을 당명에 채택한 정당도 있다. 애국은 어느덧 보수 세력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요즘 세대는 애국이란 말 대신 ‘국뽕’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국뽕은 국가와 히로뽕(필로폰의 일본식 표현)이 결합된 단어다. 국뽕은 맹목적인 애국심을 희화화하고 조롱하기 위해 태어난 신조어다. 하지만 이제는 점차 애국을 대체하는 단어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단어의 용법이나 의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름 그대로 마약에 가깝다. 본질적인 행복이 아님을 알면서도 매우 기분이 좋고 중독성이 강하다. 스포츠 경기에서 우리 선수가 우수한 성적을 거두거나, 한류 문화가 전 세계에 확산될 때, 우리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을 때, 요즘 세대는 ‘국뽕 한 사발’을 들이켜게 해줄 주모를 찾는다.

 

국뽕은 막걸리다. 거하게 마시면 당장은 기분 좋지만 마실수록 취한다. 그래 봐야 마약이고 술이란 이야기다. 그 이면에는 과도함을 경계하는 의미도 함께 가진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정상회담과 만찬 후 환송 공연을 보고 있다. 사진=한국공동사진기자단

 

지난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 한반도의 평화와 협력 그리고 나아가 통일을 논의하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모든 과정이 생생하게 생중계됐고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은 진한 감동과 오랜 여운을 느꼈다.

 

비단 우리만 느끼지 않았다. 전 세계가 찬사와 경외심을 표시했다. 일일이 국가를 거론하기조차 벅차다. 특히 중국과 대만, 인도와 파키스탄과 같이 민족의 갈라짐을 겪은 나라에서는 이제라도 한국을 본받아야 한다는 보도까지 쏟아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 것은 평화를 노래했던 비틀스의 존 레논의 아내인 오노 요코의 트윗이다. 그는 남편이 우주에서 크게 펄쩍 뛰며 기뻐하는 모습을 봤다는 트윗을 남겼다. 전 세계를 넘어 천국에서도 축하를 받은 셈이다. 이쯤 되면 주모는 과로로 인해 실신상태가 된다.

 

하지만 모두가 남북정상회담을 기쁜 마음으로 지켜본 것은 아닌 듯하다. 그간 유독 애국을 강조한 일부 정치 집단이 대표적이다. 그들이 가진 관점에서 성공적인 남북정상회담은 불편할 수밖에 없는 행사다.

 

반공 이데올로기 시절 애국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이들에게 북한과의 화해 협력은 애국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따라서 어느 정도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단순히 지방선거를 앞두고 배가 아파서는 아니라고 믿는다.

 

국뽕은 과거 우리가 가졌던 비뚤어진 애국에 대한 경계심의 표현이자 반공주의, 전체주의, 집단주의, 민족주의, 국수주의를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의 애국에 관한 새로운 해석이다. 비록 그 말이 다소 조악하더라도, 의미는 대체 불가능할 정도로 절묘하다.

 

국뽕에 대한 응용 표현 한 가지 더. 그날은 우리 모두가 마음껏 국뽕에 취해도 좋은 날이었다. 마음속에 국뽕이 차올라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인 순간이 밤늦게까지 쉬지 않고 연출됐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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